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온라인 상태가 된다. 눈을 떠 휴대폰을 열자마자 지구 반대편까지 0.1초 만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온라인에서 빠르게 연결된다. 잠을 깬답시고 휴대폰을 들었다가 그 상태로 굳어 휴대폰과 손이 붙어버린다. 이를 닦거나 샤워를 하면서도 유튜브를 틀어놓고 식사를 하면서 넷플릭스를 본다. 쉬는 날이기라도 하면 스크린타임이 열 시간을 웃돌 때도 있다. 눈 뜨고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온라인 상태로 있는 것이다. 물론 온라인의 장점도 분명 많지만 이 정도의 불균형은 조금 심하다. 실제의 세상을 발밑에 두고 살아가는 우리는 오프라인에 좀 더 머물러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에 머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관찰'이다. 관찰은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봄'이라는 뜻인데 뜻부터 온라인에서보다 오프라인에서 더욱 적절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간혹 관찰의 부재로 가까이 있는 것들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다 문득 그것을 알아차리면 깜짝 놀라고 새로워한다.
며칠 전 친구 집에 놀러 갔었다. 거실에 앉아 수다를 떠는데 거실 끝에 지구본이 떡하니 있길래 떠보듯 물었다. "집에 혹시 지구본이 있어?"라고 하니 "글쎄... 있을걸? 있나?"라며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저렇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앉은자리에서 뒤를 돌아 살짝 위를 보라 했더니 친구도 곧 지구본을 발견했다. 친구는 놀라며 동시에 머쓱해했다. 그러고는 퀴즈를 계속 내보았다. 너의 방 바로 옆에 붙어있는 액자엔 뭐가 그려져 있는지, TV 옆 바둑판 위에는 뭐가 올려져 있는지, 거실 조명과 시계 사이에 뭐가 붙어있는지. 친구는 거의 맞히지 못했다. 평생을 살아온 집의 거실인 데다가 문제로 냈던 물건들은 그 자리에 있었던 지 꽤 오래되어 보였다. 그럼에도 친구는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친구는 보통 거실에서 TV를 보거나 심지어 TV를 켜놓고 휴대폰을 하는 일도 많다고 했다. 관심이 큰 화면 아니면 작은 화면에만 집중되어 있으니 당연히 그 익숙한 본인 집 거실의 요소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 집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집 바깥에서 놓친 것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얼마 전엔 자주 가던 공원을 산책하며 처음으로 새소리를 들었다. 이번에는 듣고만 만 것이 아니라 새가 어딨는지 찾아보고 새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새 한 마리의 소리는 금세 여러 마리의 소리로 변했고, 그 소리들이 점점 다양해져 각각 다른 종류의 새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 공원에서 새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전무했지만 들으려 하지 않았을 뿐 새들은 내내 지저귀고 있었음을 이젠 안다. 이전엔 아마 걸을 때도 잠깐 앉아 쉴 때도 이 오프라인 상태의 공원에서 내내 휴대폰과 함께 온라인 상태였을 것이다.
관찰은 적절한 로그아웃 수단이다. 무언가를 관찰하며 관심을 갖는 순간 우리는 작은 스크린을 벗어나며 온전히 로그아웃될 수밖에 없다. 관찰하는 과정을 넘어 사색에 잠기거나 새로운 영감들을 얻기까지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유의미한 로그아웃이 될 것이다. 이미 가장 친숙한 공간에서도 놓친 것이 너무나 많을 테니 아주 멀리 떠날 필요도 없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우리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관찰을 시작할 수 있다.
휴대폰이 없던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멍하니 누운 상태로 방 천장을 관찰하곤 했다. 방 천장을 내려오다 보면 벽지 무늬를 관찰하고 그러다가 시선은 책상을 타고 오르고, 책장을 거치고, 방문을 거치기도 했다. 이런 과거가 꽤나 생경하지만 사실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만 내내 쳐다보는 모습이 오히려 더 낯설고 이상한 일임을 요즘의 나는 깨닫는다. 휴대폰으로 아침부터 정신은 깨지 않고, 눈은 건조하며, 두통은 심해진다. 하지만 휴대폰을 내려놓고 우선 ‘관찰’을 시작하면 정신은 점점 들고 시야는 선명해지며 두통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오프라인에 더 자주 머물러야 한다. 우리는 본디 '오프라인'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