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람들이 더 병을 잘 안다고. 나 역시 몸뚱어리 하나 나름 잘 부지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살지만 조금만 아파도 세상의 온갖 병을 찾아보곤 한다. 아마 이 몸마저 자꾸 앓고 나면 내세울 게 없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아픈 적이 잘 없어 아픔을 유난히 낯설게 여기는 지도 모르겠다.
올해 들어 잔병치레가 많았는데 얼마 전 목과 쇄골이 맞닿는 부분이 갑자기 부어올랐다. 정상적인 오른쪽에 비해 왼쪽이 확연히 부어있었고 누르면 아프기도 했다. 흔히 겪는 인후통처럼 뭔가를 삼킬 때 목의 위쪽이 아픈 게 아니라 목 아래쪽 어딘가 미스터리한 데가 아픈 것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당장 휴대폰을 들어 증상을 검색했다. 역시나 선배님들이 미리 잘 만들어놓은 연관 검색어를 따라 깊이 들어가니 눈이 팽글팽글 돌았다. 각종 이미지와 글들, 유튜브에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알려주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는 이미 어느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나 덕분에 친구는 목의 혹에서 시작되는 모든 질병들의 리스트를 귀에 피나도록 들을 수 있었다. 제발 지체하지 말고 얼른 병원에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가뜩이나 병원이 많지 않은 동네인데다 가보는 병원마다 급증한 코로나 환자로 인산인해였다. 가는 곳마다 줄이 길게 서있어 그냥 발길을 돌렸다. 큰 수확 없이 돌아와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그전의 비극을 다시 쓰려는 나를 보며 친구가 동네 작은 내과라도 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어렸을 때도 몇 번 가봤던 내과였는데 의사선생님이 어느새 인상 푸근한 할아버지가 되셔서는 나를 맞이하셨다. 모아놓았던 하소연이 튀어나왔다. 얘기를 들으시더니 열이나 기침은 없는지, 최근에 스트레스 받는 건 없는지 등을 차분하게 물으셨다. 자꾸 목부분을 만지며 누르면 아프다고 했더니 '아이고, 그러면서 자꾸 누르지 말고' 하며 나를 저지하셨다. 곧 진단이 내려졌다. 의사로서 특별한 소견이 없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딱히 문제없어 보인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푹 쉬어라. 목 자꾸 만지지 마라. 접수비만 내고 가셔라.
진료실을 나가며 그럼 진짜 별문제 없는 거냐 다시금 물었더니 "괜찮고, 좀 더 대담하게. 그렇게 지내세요"라고 웃는 얼굴로 대답하셨다. 진료실을 열자마자 보인 친구는 잔뜩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다 들렸던 것이다. 아무렴, 아픈 사람 목소리가 이렇게 쩌렁쩌렁할 수가 있을까 싶긴 했다. 나가는 길에 거울을 잠시 보니 대단히 부었을 거라 생각했던 목이 멀쩡해 보였다. 손으로 다시금 만져보니 양쪽이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생각하다가 아차 싶어 손을 후딱 뗐다. 병원을 나와 꾹 참고 있던 웃음을 빵 터뜨렸다. 비웃음과 안도감이 범벅된 웃음이었다. 병원에 와서 좀 더 대담해지라는 진단만 받아본 건 처음이라 낯설고 쑥스러웠다. 집에 가는 길 내내 '좀 더 대담하게' 지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질환을 내 앞에 모아두던 비극의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인터넷에서는 보통 '가볍게 넘기세요'보다는 '병원에 방문하세요' '정밀 검사를 받으세요'라는 말이 훨씬 많았고, 목이 아프다는 증상 하나만 검색해도 그것과 관련된 수십 가지 병들이 나열되었다. 퀄리티 좋은 이미지들과 진짜인지 카더라인지 모를 말들은 나를 자꾸 상상하게 했다. 심지어 너무 상세한 설명 덕에 어떤 병에 대해선 확신할 정도였다. 마치 점괘 풀이가 디테일해질수록 맹신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일은 비단 건강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인터넷의 정확한 정보들과 함께 과장된 정보, 허위 정보들이 섞여 화면 밖으로 넘실대고, 긍정적인 정보 못지않게 부정적인 정보가 특히 날아와 꽂힌다. 뭔가에 도전하기 전에 실패 사례 먼저 찾아보기 참 쉬운 시대이며, '현실 조언'이라는 제목을 달아 누군가를 포기하게 하기도 하고, 어떤 지역에 대해 자극적인 이미지를 공유하며 공포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검색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더 잘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찾기보다는 위축되고 좌절하며 심지어 '미리 찾아보길 잘했다'며 도전하지 않았음에 안심하기도 한다.
궁금한 것이나 어떤 걱정이 있을 때 바로 손쉽게 검색해 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시대의 큰 장점이다. 하지만 그 걱정들을 외려 부풀리고, 불필요한 정보까지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프로 불편러나 프로 걱정러가 화두에 자꾸 오르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굳이 알 필요 없던 온라인상의 걱정 요소와 불편 요소들을 무의식적으로 자꾸 머릿속에 반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나는 대담해지라는 진단 후에 한동안 대담하게 지내다 이내 임파선염 진단을 받았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좀 더 대담해지라던 의사선생님의 육성을 잊을 수 없다. 인터넷상의 정보만으로 잔뜩 쫄아가지고 안심하지 못하던 어린 양에게 다정한 말투로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며 전해주시던 말은, 뻔하고 똑같은 인터넷상의 글에 비해 정말 희귀하고 특별한 진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