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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야 채울 곳이 생긴다

by 로그아웃아일랜드


일상을 빽빽하게 채워야 한단다.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없어야 한단다. 살면서 스트레스나 걱정 없는 사람은 없단다. 남들도 다 그렇게 고생스럽게 산다기에, 그래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과부하 상태가 된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잠에 들기 전 머리부터 발끝까지 빵빵해진 기분을 느꼈다. 마치 바늘로 톡 찌르면 터질 것 같은 풍선이 된 것 같은, 잘못 넘어지면 그대로 와장창 깨질 것 같은 내용물이 꽉 찬 병이 된 것 같은 기분 말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꽉 막힌 듯한 불쾌감에도 해소하기보다는 일단 내일이 되길 기다려보았다. 한숨 자면 괜찮겠지. 자연스레 나아지겠지. 그러나 다음 날이 되어도 큰 변화는 없었다. 몸과 마음이 무겁게 뒤뚱거리는 느낌이었다.



만약 우리의 몸이 유리병과 같다면 이 병은 과연 무엇으로 채워져있을까. 긍정적인 마음가짐, 희망, 기쁨과 같은 좋은 내용물도 있겠지만 불안과 스트레스, 걱정거리들과 같은 부정적인 내용물 역시 있을 수 있다. 내용물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병의 마개 끝까지 꽉 차있다면 그 병은, 아니 그 몸은 어떤 상태인 걸까?



병을 헹굴 때도 물이 꽉 차있으면 헹구기 어렵다. 어느 정도 빈 공간이 있어야 병을 흔들었을 때 내용물이 씻겨나간다. 공간도 그렇다. 공간이 꽉 차있으면 물건 정리가 훨씬 어렵다. 여유 공간이 있어야 물건을 옮겨가며 정리를 할 수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에너지더라도 꽉 차있는 것보단 조금 덜 차있는 것, 약간의 빈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 꽉 차있는 것보다 낫다. 그래야 우리의 마음속을 정리하기 쉽고 여태 가져보지 못한 것을 빈자리에 채워보는 계기까지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는 엄마와 함께 장을 보고 난 후 냉장고를 열어 음식들을 정리했다. 자리가 넉넉지 않아 억지로 구겨 넣는데 뒤에서 엄마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자리가 없는데 어떡해?"라고 변명하니 엄마는 "자리가 없으면 자리를 만들어야지. 비워야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각각 절반쯤 들어있는 김치를 한 통에 몰고, 거의 다 먹은 반찬통은 꺼내버리고, 바닥에 자작하게만 남은 음료는 과감히 물에 흘려보냈다. 몇 번 부지런히 움직였더니 절대 없던 공간이 뿅 하고 나타났다. 만들 수 없을 것 같던 여유는 적극성으로 생겨났다. 그렇다면 우리의 속을 비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 경우, 지난날을 주기적으로 곱씹어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삶을 살아가며 겪어온 것들이 몸과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이 쌓였었는지 정확히 헤아리기 어렵다. 냉장고의 내용물을 확인하듯, 오늘의 나를 만든 나의 경험들을 곱씹는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의 내 마음가짐은 무엇에서 비롯되었을까?' '최근 들어 짜증이 늘었는데 어떤 사건 이후로 이렇게 된 걸까?' '내가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방식은 무엇이었더라?'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답을 찾아보는 것은 자기 확신을 만든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던 생각과 감정이 확신을 통해 단단한 몇 가닥으로 남는다. 그것이 곧 정리고, 비우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비워진 나의 공간에는 마침내 무언가 새롭게 들어찰 수 있게 된다. '먹을 게 냉장고에 가득한데 뭐 하러 장을 봐'라는 말이 나올 때 우리 집은 며칠간 같은 반찬 같은 국만 먹는다. 냉장고가 좀 비면 모처럼 장을 보러 가서 '이런 것도 사볼까'가 된다. 그래서 새로운 요리를 시도해 보고 맛이 있을 때도 있지만 정말 별로일 때도 있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 모두 경험이 된다. 냉장고가 비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도 비워보아야 가능성과 도전들이 생겨난다.



머리끝까지 뭔가 꽉 들어찬 기운에 몸과 마음이 자꾸 늘어지고 해답을 찾는 시도조차 버거울 때 우리는 정신을 번뜩 차려야 한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무엇이 내 속에 차 있는 건지, 이런 생각이 언제부터 어떻게 내 안에 있었던 건지, 무엇을 따라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마개를 열어 빈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비운 다음에야 채울 공간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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