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잘나가는 동기 피드를 보며 밤잠 설치는 이유
오늘도 8시간의 편의점 교대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자취방의 공기는 유난히 서늘했다. 유니폼 조끼를 벗어 던지자마자 몰려오는 것은 안도감이 아니라 지독한 허기였다. 배가 고픈 건지, 마음이 고픈 건지도 모른 채 나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켰다. 어두운 방안, 액정의 푸른 빛이 내 얼굴을 창백하게 비췄다. 그리고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보고야 말았다.
대학 동기인 민주의 피드였다. 3년 전, 우리는 신촌 스터디 카페 구석자리에서 삼각김밥을 나눠 먹으며 승무원 면접을 준비하던 전우였다. 영어 회화 스크립트를 서로 교정해주며 "우리 꼭 하늘에서 만나자"고 손을 맞잡았던 사이.
하지만 운명은 잔인하게 갈렸다. 나는 수차례 최종 면접에서 차가운 고배를 마셨고, 민주는 3년 만에 중동의 한 유명 외항사에 당당히 합격했다.
민주의 피드 속 세상은 내가 발 딛고 있는 이곳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어제는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갓 구운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었고, 오늘은 두바이의 화려한 루프탑 수영장에서 비키니를 입고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짙은 레드 립에 유니폼을 갖춰 입고 비행기 도어 앞에서 환하게 웃는 민주의 얼굴은,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수수한 취준생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인생의 승리자'라는 궤도에 올라타 있었다.
"진짜 좋겠다... 너무 부럽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질투 섞인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손가락을 튕겨 좋아요, 하트를 눌러주는 것뿐이었다. 그 하트가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줄 알면서도.
화면을 내릴수록 내 방의 초라함은 점점 더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민주가 유니폼 소매를 걷어붙이고 기내 서비스를 준비할 때, 나는 편의점 앞치마를 고쳐 매며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 삼각김밥을 고르고 있었다. 민주가 런던의 야경을 배경으로 와인 잔을 기울일 때, 나는 좁은 자취방 창밖으로 보이는 옆집 벽면을 보며 믹스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민주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혐오였다.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지 못하고, 스마트폰 불빛 아래에서 내 불행을 전시하고 있는 나의 옹졸함. 민주의 피드가 새로고침될 때마다 내 삶의 가치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인정중독은 이제 나를 넘어, 타인의 화려한 일상까지 내 불행의 연료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결국 나는 떨리는 손으로 민주의 계정을 '숨기기' 했다. 보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될까 싶었지만, 어둠 속에서 번지는 자격지심은 독버섯처럼 마음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내 꿈은 언제쯤 이륙할 수 있을까. 도착지도 알 수 없는 난기류 속에 갇힌 기분으로,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인정이라는 달콤한 보상을 받지 못한 나의 오늘이, 누군가의 화려한 오늘에 치여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우리는 타인이 공들여 편집하고 보정한 인생의 가장 화려한 장면(하이라이트)을 보며, 나의 가감 없는 날것의 일상과 비교하곤 합니다. 친구의 합격이 나의 실패를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꽃이 피는 계절이 다를 뿐이죠.
타인의 피드를 보며 가슴이 조여온다면, 지금은 화면을 끄고 당신의 지친 다리를 먼저 토닥여주세요. 당신의 인생이라는 비행도 아직 취소된 것이 아니라, 더 멋진 이륙을 위해 잠시 활주로에서 대기 중인 것뿐이니까요.
최근 질투심 때문에 마음이 괴로워져서 차마 '좋아요'를 누르지 못하고 지나친 게시물이 있나요? (그 마음을 비난하지 마세요. 다만, 그 게시물이 당신의 가치를 결정할 권한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지금 당신의 상황에서 '남들은 모르지만 나만 아는 나의 작은 성취' 한 가지를 찾아보세요. (예 : 지친 몸으로 오늘 하루를 성실히 버텨낸 것, 포기하지 않고 내일의 면접을 준비하는 것)
누군가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평범한 하루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세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오늘을 버텨낸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잘해내고 있습니다. 남들의 박수 소리보다, 지금 당신의 지친 마음을 먼저 안아주는 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