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의 진짜 의미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그저 비유적인 표현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12개월 차 연년생 자매를 양육하며 나는 이 문장이 얼마나 처절하고도 생생한 현실인지를 매일 몸으로 깨닫고 있다.
연년생을 데리고 집 밖을 나서는 일은 일종의 거창한 작전과 같다. 짐은 산더미 같고, 유모차는 핸들링이 무색할 만큼 무겁다. 한 아이가 징징거리면 다른 아이가 전염된 듯 따라 짜증내고,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의 눈치를 살핀다. '인정중독'이 있던 나에게 공공장소에서의 소란은 나의 무능함을 증명하는 성적표처럼 느껴져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런 나를 무너뜨린 건 비난이 아니라 뜻밖의 다정함들이었다.
제주도 여행 중이었다. 큰맘 먹고 들어간 흑돼지 집.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지만, 나는 고기를 맛볼 여유조차 없었다. 배고프다 칭얼대는 아이에게 고기를 작게 잘라 먹이려고 점원에게 가위를 요청하려던 찰나였다.
"여기 아기용 고기는 미리 잘라 놨습니다."
점원분이 내미신 접시에는 아이가 먹기 좋은 크기로 정성껏 잘린 고기가 담겨 있었다.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나의 수고를 미리 알아채고 앞서가 준 그 배려. 주문한 계란찜이 나올 때는 아기용 조미김까지 슬쩍 챙겨주시는 센스에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그분은 단순히 고기를 잘라준 것이 아니라, 고립되어 있던 나의 육아 현장에 기꺼이 뛰어들어 따뜻한 손을 보태주신 것이었다. 사소해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않은, 찬란한 한 줄기 빛이 분명했다.
그날의 제주 흑돼지는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였다. 고기 맛보다 더 진하게 남은 건 이름 모를 점원분이 건넨 다정함의 온도였다.
돌아보면 나의 육아는 이름 모를 '마을 분'들이 건넨 다정한 배려의 조각들로 이어져 왔다.
한번은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에 탑승하려는데, 야속하게도 앞바퀴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 틈에 꽉 끼어버린 적이 있었다. 당황한 내가 어쩔 줄 몰라 쩔쩔매던 그 짧은 찰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유모차를 번쩍 들어 올려준 것이다. 낯선 이들이 순식간에 만들어낸 그 온기 덕분에 나는 무사히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이의 옹알이에 "아이구, 예뻐라"라며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건네주시던 옆집 할머니, 나들이 중에 아이가 장난을 치다 실수로 옷을 건드려도 "허허, 괜찮아요. 애들은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라며 너그럽게 웃어주시던 아주머니까지.
마지막으로 가장 고맙고 감사한, 내 육아라는 거대한 세계를 매일같이 지탱해 주는 가장 가까운 마을 주민이 있다. 바로 어린이집 선생님이다.
내가 아이를 맡기고 돌아서는 뒷모습에 "어머니, 걱정마세요!"라고 내게 안심을 시켜주시는 분. 간밤에 아이가 설잠을 자서 피곤하진 않았는지, 아침은 잘 먹었는지 세심하게 살펴주며 나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분들이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이의 작은 성장을 키즈노트에 정성껏 적어 보내주실 때면, 나는 이 험난한 육아를 혼자 하고 있지 않다는 안도감에 목이 메곤 한다.
선생님들은 단순히 아이를 '보육'하는 분들이 아니라, 엄마인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마음의 빗장을 함께 걸어 잠가주는 가장 든든한 공동 양육자다.
그들은 모두 나의 이름 모를 '마을'이었다. 내가 완벽한 엄마가 되지 못해 무거운 마음으로 헤매고 있을 때, 우리 사회의 틈새에서 불쑥 손을 내밀어준 그분들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갈 용기를 얻었다.
물론 가끔은 차가운 시선을 마주할 때도 있다. 아이들의 소음을 불쾌해하거나, 좁은 통로를 지나는 유모차를 짐스러운 듯 바라보는 눈길들. 그럴 때면 나는 움츠러든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간절히 바란다. 우리 사회가 아이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만 더 너그러워지기를. 아이의 울음소리가 '소음'이 아니라 '생명력'으로 들리는 세상이 되기를 말이다.
아이들은 마을의 온기를 먹고 자란다. 낯선 이의 미소 한 번에 아이는 세상을 안전한 곳으로 믿게 되고, 그 친절을 배운 아이는 자라서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을이 되어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이름 모를 마을 분들 덕분에 하루를 무사히 마친다. 내가 다 갚을 수 없는 그 무수한 다정함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 무수한 다정함 덕분에 나는 오늘도 무너지지 않고 '엄마'라는 자리를 지켜낸다. 우리가 함께 품어 키운 이 아이들이 훗날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기꺼이 따뜻한 마을이 되어줄 수 있도록, 이 아이들의 자라나는 시간을 조금만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