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라고요?

by 지안

이사 온 집은 유난히 햇살이 길게 머물렀다. 어느 평화로운 오전, 이제 막 낮잠에 든 6개월 된 첫째의 숨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를 개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수건의 감촉에 취해 잠시 평화를 만끽하던 찰나, 정적을 깨고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OO 산부인과'. 갑자기 웬 전화? 왠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했다.


"여보세요? 산모님, 기형아 검사 결과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다름이 아니라… 태아가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으로 나와서요."


수화기 너머 간호사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가느다란 떨림이 내 심장을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분명 맘카페에서 이런 결과가 나와도 정밀검사를 거치면 대부분 정상이라는 글을 수없이 봤었다. 그래서일까, 입으로는 "아, 네. 알겠습니다. 방문할게요"라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다시 쥐어든 수건의 모서리는 도저히 맞춰지지 않았다.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슬퍼서라기보다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놀랐고, 아이에게 미안해서였다.


11주가 되도록 네가 온 줄도 모르고 삼켰던 소화제, 타이레놀, 그리고 사랑니 발치 후 먹었던 진통제들…. 내 무지함이 너를 아프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자책감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가슴을 후벼팠다.


결국 다시 찾은 병원. 의사는 16주까지 기다려 양수검사를 하거나, 지금 바로 피를 뽑아 확인하는 NIPT(비침습적 태아 기형아 검사)를 제안했다. 하루라도 빨리 너의 안부를 확인하고 싶어 곧장 채혈실로 향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2주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 5개월 된 첫째를 돌보느라 정신없이 치이다 보면 잠시 잊을 때도 있었지만, 문득 찾아오는 공포는 숨이 막힐 듯했다.


다행히 결과는 ‘저위험군’이었고 정밀 초음파에서도 아이는 아주 건강했다. 하지만 한 번 금이 간 엄마의 마음은 쉽게 붙지 않았다. 나는 출산 전날까지도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을 그림자처럼 매단 채 살았다.


그리고 마침내, 둘째를 만나는 날이 왔다. 경력직의 여유였을까. 둘째의 분만은 첫째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빨랐다. '무통 주사'의 은혜는 그야말로 천국 같았고, 진행은 속전속결이었다. 물론 분만대 위에서 온 힘을 쥐어짜야 했던 마지막 사투만큼은 예외 없이 고통스러웠지만, 고생 끝에 들려온 울음소리는 그 모든 근심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응애! 응애!"


3.3kg의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둘째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아기를 내 배 위에 올린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갓 태어난 핏덩이인 녀석이 튼튼한 다리에 힘을 빡 주더니 내 배 위를 꼬물꼬물 기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후처치를 하던 담당의 선생님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허탈하게 웃으셨다. "어머, 너 어디 가니? 벌써 기어 올라가네! 다리 힘 좀 봐라!"


다운증후군이면 어쩌나, 약 때문에 잘못됐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밤잠 설치던 엄마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녀석은 압도적인 '건강미'를 뽐내며 자신의 생명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 배 위를 꾹꾹 누르는 그 작은 발의 묵직한 힘.


나는 눈물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를 안아 들었다. 너는 이렇게나 강한 아이였는데, 엄마는 너를 믿지 못하고 흔들리기만 했구나. 미안함은 이내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예고 없이 찾아와 엄마를 들었다 놓았다 하더니, 이제는 내 배 위를 당당히 점령한 이 작은 생명.


그렇게 나의 '진짜' 연년생 육아 전쟁은, 녀석의 힘찬 발길질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씩씩하게 개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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