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 같은 소화불량은 없다

by 지안

두 줄이었다. 그것도 너무나 선명한.


테스트기 속의 빨간 선 두 줄은 마치 "나 여기 오래전부터 있었어!"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당당했다. 떨리는 손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들은 진단은 더 기가 막혔다.

"축하합니다. 11주네요."


4주도, 5주도 아닌 11주. 내 몸속에 새로운 생명이 자리를 잡고 무려 석 달 가까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가. 머릿속이 하얘졌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이사 오기 전, 예전 집에서의 일이었다. 그때 우리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피임을 하지 않았고, 그 무모함의 결과는 이삿짐 정리의 피로가 가시기도 전에 '확정판결'처럼 날아왔다.


지난 몇 주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사 후유증인 줄로만 알았던 지독한 울렁거림과 무력감. 남편이 "어디가 어떻게 안 좋아?"라고 물었을 때, 나는 분명 내 입으로 말했다.


"이상하게.. 입덧하는 느낌이야."


그게 복선인 줄도 모르고 나는 소화제를 들이켰다. 생리를 안 하는 게 이상하다 의심하면서도 "임신일 리가 없어"라며 그 가능성을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머리가 아프면 타이레놀을 먹었고, 첫째를 낳고 미뤄뒀던 사랑니를 뽑은 뒤에는 처방받은 진통제까지 챙겨 먹었다.


이제 겨우 생후 5개월 된 첫째를 안고 "엄마가 몸이 좀 안 좋네"라며 미안해했는데, 진짜 미안해야 할 대상이 한 명 더 있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났다. 아니, 사실 웃음보다는 비명이, 그리고 눈물이 먼저 터졌다.


"나 어떡해? 첫째가 이제 겨우 5개월인데... 나 진짜 어떡해!"


남편 앞에서 아이처럼 꺼꺼 대며 엉엉 울었다. 이건 축복이라기보다 정해진 운명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이제 막 한 아이의 엄마로 적응해 보려는데, 다시 원점이라니. 아니, 1+1이 아니라 200배는 더 힘들어질 육아의 파도가 눈앞에 선명했다.


그 좌절의 정점에서 초음파 화면을 마주했다. 화면 속 아이는 제법 사람의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녀석은 우리가 자신을 '날벼락'이라 부르며 절망하고 있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사리 같은 팔다리를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그 활기찬 움직임을 보는 순간, 남편의 얼굴에도 복잡한 그림자가 스쳤다. "아니겠지"라며 부정했던 시간 동안 엄마는 약을 삼켰고, 아빠는 이삿짐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 소란스러운 틈바구니에서 아이는 혼자 꿋꿋하게 팔다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팔딱거리는 심장 소리와 쉼 없이 움직이는 작은 팔다리. 그 생동감 앞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병원을 나왔고, 이렇게 말했다.

"아기한테 미안하네."


그건 나 역시 하고 싶은 말이었다. 5개월 된 언니를 돌보느라 네가 온 줄도 몰랐던 미안함, 너를 '좌절'이라 명명했던 미안함, 그리고 그 모든 무관심 속에서도 이렇게나 기특하게 자라준 것에 대한 고마움.


나는 문득 태명이라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띠니까... 용용이로 하자. 꽤 귀엽잖아." 절망과 허탈함이 뒤섞인 채 내뱉은 내 무심한 작명에 남편은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야?"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렇게 나의 연년생 육아는 예고도 없이, 아니 아주 무례하고도 강렬하게 시작되었다. 5개월이라는 시차를 두고 뒤늦게 도착한 초대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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