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용용이가 태어난 지 어느덧 3개월이 흘렀다. 집안은 매일 두 아이의 울음소리와 갓 구운 빵 같은 아기 냄새, 그리고 만성적인 수면 부족으로 채워졌다. 그 소란스러운 일상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해준 유일한 보루는 첫째의 '완벽한 분리수면'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수면 교육을 잘 따라와 준 첫째는 저녁 8시만 되면 제 방 침대에서 스스로 잠들었고, 덕분에 나는 잠시나마 숨을 돌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15개월이 된 어느 날부터, 견고했던 그 밤의 평화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엄마! 으아아앙 엄마아!"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첫째의 울음소리는 예전과 결이 달랐다. 졸려서 투정 부리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에 쫓기는 듯 절박하고 공포 섞인 비명이었다. 아이는 3개월 전 나타난 동생이라는 존재, 그리고 엄마를 빼앗겼다는 상실감에 15개월 무렵 찾아오는 '재접근기'의 폭풍을 한꺼번에 맞이하고 있었다.
낮 동안에도 아이는 내 다리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엄마 껌딱지'가 되었다. 화장실 문만 닫아도 세상이 무너지는 듯 울었고, 잠자리에 들 때면 내 옷자락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다시 수면 교육을 강행해야 할까? 울다 지쳐 잠들게 두어야 할까? 하지만 어둠 속에서 나를 찾는 아이의 젖은 눈동자를 본 순간, 도저히 방문을 닫고 나올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잠든 아이 곁에서 휴대폰 메모장을 켰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리고 '인정중독' 엄마로서 완벽한 독립을 강요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문장들을 적어 내려갔다.
[나의 다짐 : 수면 교육보다 중요한 것]
나는 오늘부로 수면 교육을 중단하기로 했다.
아이가 느끼는 공포, 외로움, 공허함에 먼저 공감할 것.
동생의 존재가 아이에게 거대한 스트레스로 다가올 가능성을 인정할 것.
부모가 항상 옆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끝까지 안심시킬 것.
진정한 독립은 차가운 분리가 아니라, 깊은 유대감에서 시작된다.
아이의 의존성을 파악하고 든든한 버팀목이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줄 것. 안전하고 안정된 울타리가 되어줄 것.
메모를 마치고 울다 지쳐 잠든 첫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15개월. '언니'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기엔 너무나 작고 보드라운 아기였다. 나는 아이를 독립적인 개체로 키우고 싶다는 명목하에, 어쩌면 아이의 불안을 외면하며 '말 잘 듣는 아이'로 길들이고 싶어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수면 교육을 중단했다. 아이가 원할 때까지 곁에 누워 등을 토닥였고, "엄마는 늘 여기있어."라고 속삭여주었다. 효율적인 육아 스케줄표는 엉망이 되었고 수면 시간은 더 줄어들었지만, 신기하게도 내 마음은 더 편안해졌다.
독립적인 아이는 부모가 억지로 밀어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부모라는 안정된 베이스캠프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음을 믿을 때, 아이는 비로소 세상을 향해 당당히 첫발을 내디딜 수 있다는 것을 15개월 딸아이는 온몸으로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엄마는 네가 멀어지려 할 때 네 편이 되어 응원해줄거고, 다시 다가올 때는 '언제든 환영이야.' 네가 더 멀리, 더 건강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엄마가 충분히 안아줄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