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에는 TV가 없다. 대신 3x5 사이즈의 커다란 책장 두 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누군가는 거실의 로망을 포기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 가족에게 거실은 가장 활발한 상상력의 놀이터다. 아이들은 심심하면 책장에서 책을 꺼내 오고, 잠들기 전 30분에서 1시간은 그림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책육아를 하며 가장 놀라운 점은 아이들의 감정과 언어가 자라나는 속도였다. 그림책 속 슬픈 장면을 마주할 때, 아이들은 단순히 "슬퍼"라고 말하지 않는다. “엄마, 꼬마 트리가 외로울 것 같아.", "너무 불쌍해"라며 인물의 감정에 깊이 몰입해 울먹거린다. 책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언어의 확장 과정은 더 경이롭다. 어느 날은 인형을 찾으며 "없어졌어"라고 하더니, 며칠 뒤엔 "엄마, 인형이 사라졌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르면 "장난감을 잃어버렸어"라며 상황에 맞는 적절한 단어를 골라 쓴다. 같은 상황을 설명하는 수많은 어휘를 책 속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실생활에 적용하는 아이들을 보며 책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새삼 깨닫는다.
종종 책을 집에 많이 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부모님들을 만난다. 나는 주저 없이 강추하고 싶다. 책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아이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선물하고 평생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 근육'을 키워주는 가장 저렴하고도 확실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환경을 꾸미는 팁도 생겼다. 활동적인 아이라면 책을 놀잇감처럼 여기도록 바닥에 자연스럽게 깔아주는 것이 좋고, 정적인 아이라면 아늑한 조명 아래 자기만의 독서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정답은 없지만, 중요한 건 책이 공부가 아닌 놀이이자 휴식으로 느껴지게 하는 환경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사실 나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림책 속 짧은 문장들이 육아에 지친 내 마음을 어루만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언어가 자랄 때 나의 인내심도 함께 자라고, 아이들의 세계가 넓어질 때 나의 편견도 조금씩 허물어진다. '연년생 자매와 함께 자라는 중'이라는 나의 고백처럼, 우리 세 모녀는 매일 밤 그림책을 읽으며 함께 성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