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면, 꼭 해야 할 일을 제외하고 마법 같은 몇 시간의 여유가 허락된다. 평소라면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부족한 잠을 청했겠지만, 그날은 마음이 맞는 첫째 친구 엄마와 함께 남대문 시장으로 향했다. 육아라는 긴 터널 속에 찾아온 짧고 소중한 일상의 틈이었다.
남대문 시장은 활기로 가득했다. 예전 20대 때의 나였다면 이곳을 그저 덥고 시끄러운 곳이라며 지나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되어 다시 찾은 시장은 전혀 달랐다. 거칠지만 정겨운 상인들의 목소리,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활기찬 에너지는 이제 소음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게 하는 음악처럼 들렸다.
아이 옷을 고르며 실랑이를 벌여 흥정하고, 예쁜 옷을 저렴하게 득템할 때의 쾌감은 그 어떤 쇼핑몰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생생한 낭만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배꼽시계가 울렸고, 우리가 향한 곳은 좁은 통로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먹는 칼국수 골목이었다. 어깨를 맞대고 앉아야 하는 그 좁고 북적이는 공간이 이제는 불편함이 아닌 사람 사는 냄새로 다가왔다.
눈앞에 놓인 가성비 만점의 칼국수, 고봉밥, 그리고 구수한 된장국. 특히 그 집 된장국은 한입 떠 넣는 순간 영혼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평소 아이들 밥 챙기느라 서서 먹거나 남은 음식을 대충 때우기 일쑤였던 내게, 투박한 국그릇에 담긴 그 진한 맛은 어떤 고급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보다 깊은 위로였다.
시장을 빠져나오며 길거리 붕어빵 하나를 나눠 먹으며 하하호호 웃고, 향긋한 커피 한 잔을 손에 쥐었을 때 느꼈던 그 짧은 여유. 무엇보다 고마운 건 그 시간을 함께 나누어준 '언니'였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묶여 서로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위로가 있었다. 일상의 틈을 함께 메워준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든든하게 다가왔다.
육아에만 몰두하다 보면 마음의 공기가 탁해지기 마련이다. 그날의 시장 나들이는 나에게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정서적 환기의 시간이었다.
뜨끈한 칼국수 국물과 언니와의 수다로 마음속 해묵은 감정들을 털어내고 신선한 활기를 채우고 나니,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힘차게 마주할 에너지가 샘솟았다. 이 짧고 강렬한 환기의 경험 덕분에 나는 오늘도 육아라는 일상을 다시 기운차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