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습관이 빚어내는 기적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지 않다.
아니, 완벽은커녕 철저한 미완성의 존재로 세상에 온다. 밥을 먹는 것, 잠을 자는 것, 장난감을 쥐는 것, 심지어 깨끗하게 씻는 것까지.
어느 하나 내 손을 거치지 않고는 완성되는 일이 없었다. 두 아이를 연달아 키우며 나의 하루는 온통 아이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일로 꽉 채워져 있었다. 내가 없으면 하루도 굴러가지 않던 그 시절, 나는 때론 지치면서도 나의 완전한 통제 아래 있는 아이들을 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만 3세, 2세가 되면서 우리 집 일상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려 퍼지는 마법의 주문, "내가 할래!"가 시작된 것이다.
변화는 가장 먼저 밥상 위에서 찾아왔다. 예전 같으면 내가 숟가락으로 입에 쏙쏙 넣어주어 15분이면 깔끔하게 끝났을 식사 시간. 하지만 이제 아이들은 기어이 제 손으로 젓가락을 쥐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서툰 젓가락질로 밥알은 식탁 아래로 후드득 떨어지고, 국물은 턱을 타고 줄줄 흘러내린다. 속이 터질 것 같다. 당장 내 손을 뻗어 단숨에 먹여주고, 얼른 치운 뒤 쉬고 싶은 충동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아이는 포기하지않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관문 앞에서도 사투는 벌어진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신발을 신어야 하는데, 아이는 굳이 찍찍이가 달린 운동화를 직접 신겠다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발을 억지로 욱여넣다 보니 뒤꿈치는 구겨지고, 그마저도 좌우가 바뀐 짝짝이다. 10초면 신겨주고 나갈 수 있는데, 아이의 서툰 발놀림을 지켜보느라 현관에서만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바지를 거꾸로 입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 지퍼를 올리지 못해 끙끙대는 뒷모습을 볼 때면 내 안의 효율성이 자꾸만 나를 부추긴다.
하지만 나는 간신히 뻗으려던 손을 거두고, 등 뒤로 두 손을 깍지 낀 채 그 서툰 몸짓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이들은 지금 'ㅅㄱ'의 힘을 증명해 내고 있다는 것을.
여기서 'ㅅㄱ'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습관이다. 아이가 부모의 도움 없이 온전히 제 몫을 해내기까지는 반드시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어른에겐 10초면 끝날 일이 아이에겐 10분의 탐색전이다. 그리고 그 느릿한 시간 속에서 매일 밥알을 흘리고 신발을 거꾸로 신으며 반복하는 숱한 시도들이 차곡차곡 쌓여, 마침내 아이만의 단단한 '습관'을 만들어낸다.
내 손을 거쳐야만 완성되던 미완성의 아기들이, 어느새 스스로 밥을 떠먹고 양말을 챙겨 신을 줄 아는 독립된 사람으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그 눈부신 진화의 과정에는 부모가 기꺼이 내어준 기다림의 시간이 거름처럼 깔려 있다.
비록 식탁 밑은 밥풀 지뢰밭이 되고, 신발은 짝짝이일지라도, 스스로 해냈을 때 아이의 얼굴에 번지는 그 환희에 찬 미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경이롭다.
나는 이제 참견하고 싶은 입을 꾹 다물고, 대신주는 손을 뒤로 감추기로 했다. 서툴더라도 아이의 몸에 깃들 시간과 습관의 위대한 힘을 온전히 믿어주는 엄마가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