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인사만 하면 친구가 된다

by 지안의 방

등원길에 처음 마주친 건 우연이었다.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골목에서, 두 살 많은 언니와 그 언니의 엄마를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아이들은 서로를 힐끗 쳐다보고, 그게 끝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또 마주쳤다. 이번엔 첫째가 먼저 손을 흔들었다.

"안녕!"


언니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등하원길에 그 언니를 만날 때마다 아이의 인사는 점점 커졌다. 손 흔들기에서 활짝 웃기로, 웃기에서 뛰어가 안기기로.


나는 그 옆에 서서, 얼떨떨했다. 이름도 모르던 사이에서 이렇게까지 빨리 가까워질 수 있는 건가.


어느 날 하원길, 그 언니를 만난 첫째가 대뜸 말했다.

"언니, 우리 집에 놀러 올래?"


나는 속으로 당황했다. 아이 엄마와 나는 아직 목례 정도만 나누는 사이었는데, 아이는 거침없이 자기 집의 문을 열어버렸다. 상대 엄마와 눈이 마주쳤고, 서로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가 던진 그 한마디 덕분에 우리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게 됐다.


결국 며칠 뒤 하원 후 정말 놀러 왔다. 아이들은 만나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고, 거실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인형놀이도 하고, 자기들만의 세계를 뚝딱 만들어냈다.


어른들은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 수많은 단계를 거친다. 적당한 거리를 재고, 타이밍을 보고,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그런데 아이는 그냥 말했다. "우리 집에 놀러 올래?" 그 한마디에 담긴 건, 계산이 아니라 순수한 호의였다. 같이 놀고 싶다는 마음, 그게 전부였다.



겨울, 첫눈이 내리던 아침이었다. 등원을 서두르는데 첫째가 창밖을 보며 소리쳤다.

"엄마! 눈이다! 오늘 그 언니 만나면 같이 눈사람 만들자!"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 운 좋게 그 언니를 만났다. 첫째는 뛰어가며 외쳤다.

"언니! 눈 오리 만들자!"


둘은 장갑도 제대로 끼지 않은 채 눈밭에 쪼그려 앉았다. 작은 손으로 눈을 뭉치고, 비뚤어진 눈오리를 만들며, 까르르 웃었다. 둘째도 뒤뚱뒤뚱 다가가 언니들 옆에 앉더니, 눈을 마구 헤집었다. 눈오리는 점점 이상한 형태가 되어갔지만, 아이들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함께 만들고 있다는 것. 같은 눈을 만지고, 같은 차가움에 손을 호호 불며, 같은 순간을 나누고 있다는 것.


빨갛게 언 손을 호호 불어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첫째가 말했다.


"엄마, 오늘 진짜 재밌었어."

나도 그랬다. 아이가 만들어 준 풍경이, 내 겨울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새학기 첫 날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첫째가 말했다.

"엄마, 내가 새로 온 친구 손 잡아줬어. 그리고 같이 놀자고 했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나는 코끝이 찡해졌다. 처음 온 아이의 두려움을 알아채고,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마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한 행동.


아이들은 규칙을 배우기 전에, 마음을 먼저 쓴다. '새로 온 친구는 외로울 수 있다'는 걸 교과서에서 배운 게 아니라, 그냥 느낀 것이다. 그래서 손을 잡아준 것이다. 그 작은 손이 건넨 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여기에 너의 자리가 있어" 라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아이들을 재우며 나는 늘 같은 바람을 품는다.


이 마음이 오래가면 좋겠다. 등원길에 마주친 언니에게 먼저 손을 흔들 수 있는 용기, "우리 집에 놀러 올래?"라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마음, 눈이 오면 함께 눈오리를 만들자고 뛰어나가는 설렘, 처음 온 친구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함. 이것들이 자라면서 사라지지 않기를.


물론 알고 있다. 아이들도 언젠가 눈치를 배우게 될 것이다. 말을 골라 하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 어색해지고, 관계에 피로를 느끼는 날이 올 것이다. 그건 자라는 것의 일부이니까.


그래도 나는 믿고 싶다.

등원길에 "안녕!"이라고 외치던 그 순간이, 새 친구의 손을 꼭 잡아주던 그 온기가, 마음 어딘가에 씨앗처럼 남아 있을 거라고. 어른이 되어 세상이 조금 차갑게 느껴지는 날, 그 씨앗이 불쑥 싹을 틔워, 다시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게 해줄 거라고.


아이들이 매일 아침 등원길에서 배우는 건, 길을 걷는 법이 아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어른인 내가 다시 배워야 할 것이기도 하다.


오늘도 첫째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말한다. "엄마, 빨리 가자! 오늘 그 언니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이름만 아는, 어느 집인지도 잘 모르는 그 언니를 설레며 기다리는 마음.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이 아이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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