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우정이라 쓰고 왕따라고 읽는다.

by 이로하

그 애를 다시 마주친 건 고등학교 때 다니던 화실 근처의 육교 위에서였다.


나는 어렸을 때 하얗고 체구가 너무 작아서 주변에 도와주거나 보호해 준다는 친구들이 더러 생겼었다.

그래서인지 입학 첫날, 전학 첫날부터 그걸 시샘하는 여자애들이 나를 따돌리기 일쑤였다.

난 그러면 그냥 아무 말 못 하고 훌쩍대며 울던, 할 줄 아는 게 그게 다였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있던 그 일은 좀 달랐다.

시작, 전개, 동기가 다 있는 사건이었다.


같이 어울리던 친구를 애들이 따돌리는 걸 목격하고

“괴롭히지 마”라 무리의 우두머리같이 행동하던 친구에게 한마디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다음 주는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었는데,

주말 동안 나는 그 무리 애들이 무슨 계획을 세웠었는지

전혀 모른 채로 나는 마냥 들뜬 마음으로 가방에 수학여행 짐을 열심히 싸서 등교를 했다.


갑자기 아이들이 다 나를 모른척하기 시작한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 아이 한 명이 다가와

“오늘부터 너 왕따 시키기로 했어. 너 xx(무리 우두머리 아이) 무시하고 기분 나쁜 말 했잖아.”라고 말했다.


지금의 담대해진 성격에는 그런 상황에선 수학여행을 안 가버리면 그만인데, 하필 어릴 때 나는 너무나 소심하고, 선생한테 그걸 말할 용기도 없던 아이여서 울음을 목뒤로 꾸역꾸역 넘기며 불안한 마음을 안고 버스에 올라탔다.


애들의 괴롭힘은 그날밤 숙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만 빼놓고 밥을 먹으러 가고, 선생님이 전해주는 지침이나 안내를 나한테만 전달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때부터 눈치로 아이들 행동을 보며 스케줄을 이어나갔다.

수학여행이 어떻게 굴러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잠든 내 머리에 치약을 잔뜩 짰고, 아이들이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눈치챈 내가 잠에서 깨자 갑자기 그 아이는 입은 웃은 채로, 눈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미안해” 하면서 자기가 짠 내 머리 위의 치약을 벅벅 닦아댔다.

난 아직까지도 그 징그러운 기시감 가득한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 흉한 꼴을 하고 집에 돌아간 나는 엄마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게 되었고, 엄마는 학교와 그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해 이 사실을 말했다.


예상했겠지만 당연히 그 후에 괴롭힘은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감싸주었던 그 친구는 나중에 무리에 속해서 아이들과 합세해 함께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아마 힘에 굴복한 거겠지.


괴롭히는 동안에 아이들은 셀 수도 없는 방법들로 나를 절망시켰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인생에서 부모도, 선생도, 그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진 일들은 엄마한테 절대 두 번 다시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괜찮은 척 연기하며 그냥 학교를 다녔다.


학교라는 곳이 보호 패드가 없이 아이들을 링 위로 밀어 넣는 곳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그 어린 나이에 너머 일찍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괴롭힘이 시작된 건 그 학년 말 시기였어서,

다행히 몇 개월 후에는 학년을 올라갔고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과 같이 반이 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소위 날라리라고 불렸던 노는 아이들 속에 섞여서 숨어 말없는 아이로 지냈다.

노는 아이들과는 어울리지는 않되, 그 속에 나를 숨겨서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나한테 보호가림막을 치듯이 말이다.


내 머리에 치약을 바르고 미안하다 웃던, 그 우두머리 행세하던 아이를 마주하게 된 건 고등학교 고학년,

노을이 붉게 지는 늦은 오후, 육교 위에서였다.

원수도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일이 있은 후 약 6년이 흘러 보게 된 그 아이는 그때처럼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양쪽 입이 찢어지도록 징그럽게도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내 표정은 자연스레 차갑게 굳어있었다. 어린 마음에 쿨한척하려, 그 반갑지 않은 인사를 받아 나도 인사를 했다.


“보고 싶었어”

뭐가 보고 싶었다는 거지.

네가 괴롭혔던 아이가 어떻게 잘 살아있는 건지 궁금했니, 아니면

그 잘못을 반성하면서 미안한 마음에 내가 잘 지내고는 있는지 그리웠다는 거니.


나는 그 많은 생각들을 차마 뱉어내지 못했다.

다행히 청소년의 나는 그 애보다 크게, 건강하게 성장해 있었다. 그런 걸로 순간은 조금 덜 억울했다.

서로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고 헤어졌고 그때 한 대화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더 글로리"라는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보면서

단지 악을 응징해서 속 시원한 것이 아닌

주인공을 괴롭히는 장면에서 분노 정도가 아니라 내 살갗처럼 아파하고 치를 떨며,

연진이가 복수당하는 장면에서 속이 시원한 나머지 내가 그런 걸 하지 못해 한탄스러워서 엉엉 울던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그 애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인생에는 카르마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네가 날 그렇게 어둠에 몰아내려고 했었지만,

나는 많은 고비를 겪고 지금 남들한테 친절한 어른으로 살아가려고 매일 노력해.

그러니까, 너도 네가 저지른 짓에 대해서 벌 받는 날이 오면

그때는 꼭 업보라 생각하고 억울해하지 말고 달게 받아.

너에게 아이가 있다면 나 같은 일은 겪지 않도록 기도하고 바라면서 살아.

그리고 나는 너를 용서했으니, 죽기 전에 너는 너 자신을 꼭 용서하길 바라.


이렇게 나는 너를 이기고 살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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