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되어서 훨훨.
방학 때 엄마의 손을 잡고 할머니 집을 가면
문을 열 때부터 추어탕 냄새로 가득했다.
삶은 미꾸라지를 채에 손으로 일일이 으깨어 진살을 걸러내고
시래기를 푹 고와 제피가루를 넣어 먹던
할머니의 경상도식 추어탕을 엄마는 유독 그렇게 좋아했다.
할머니는 서울로 시집가서 자주 보지 못하는 당신의 딸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방학 때마다 우리는 맞이하며 그렇게 추어탕을 끓였다.
연세가 좀 젊으실 때는 새벽마다 등산을 하시고,
그 시대에는 약수가 몸에 좋다고 알려져 있던지라
그 무거운 물통을 매일 지고 한가득 물을 길어오셨다.
그러다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뇌졸중이었고, 상태가 많이 호전 될 때쯤
병세는 중풍으로 이어져 몇 년을 고생하시면서 계속 치료를 받으셨다.
사촌 동생끼리 때리고 싸울 때 빼고는 할머니가 한 번도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던지라,
난 아직도 할머니가 화를 참고 살다가 속병이 나서 풍이 왔다고 믿는 편이다.
그렇게 항상 온화하고 사랑이 많던 우리 할머니.
어느 날,
할머니가 파킨슨 진단을 받았다고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날부터 한 10년간 할머니는 서서히 무뎌져 갔다.
거동이 불편해지고, 씹을 수가 없고, 할머니가 하는 말을 우리는 못 알아듣게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던 구옥 빌라에 살았던 할머니를
매일 업고 옮기며 통원 치료할 수 없는 수준이 되자, 할머니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요양병원에서 거동이 가능하지만 치매가 있는 할머니들 사이에서
정신은 온전하지만 거동만 불편한 우리 할머니의 정신은 매일이 지옥 같았을 거다.
나이 드신 후로는 그렇게 아프기만 하시다가
하늘로 간 우리 할머니를 보내던 그날,
장지에 흰나비들이 와서 하늘하늘 나풀거리며 우리 곁을 날아다녔다.
엄마와 이모들은 그걸 보고 더 울기 시작했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많이 했던 말씀이
“죽으면 나비로 태어나 훨훨 날아다닐래.” 였다고.
지금도 길을 걷다가 나비들이 보이거나
내가 있는 근처에서 날다가 쉬는 걸 보면
할머니가 날 지켜주는 것만 같아서 반갑다.
자유롭게 살고 있으려나, 우리 할머니.
항상 보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언젠가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