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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Sep 26. 2018

어느 머글의 고백

책 < The Tales of BEEDLE THE BARD> 개정판

  『음유시인 비들 이야기』는 ‘론 문자로 된 원본을 헤르미온느(Hermione. 저자 J.K.Rowlling이 의도한 정확한 발음은 허미오니 [her-my-oh-nee]) 그레인저가 번역하고 알버스 덤블도어 교수가 해설한 이야기 모음집’이라고 한다. 어디까지 확장될지 모르는《해리 포터》시리즈의 곁가지로, 호그와트 마법학교 도서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출 도서『퀴디치의 역사』, 모든 마법사 가정에서 한 권씩은 소장하고 있는 책 『신비한 동물사전』과 함께 매혹적인 마법 세계의 일환이다. 가상인 듯 가상 아닌 가상 같은 해리포터 월드는, 그 세계에 빠진 사람들에겐 현실보다 더 리얼하고 강력한 지배력을 갖고 있다. 이 책이 전래동화의 모양새를 갖추고 머글 세계에 침투한 배경엔 '해리포터'라는 리얼한 마법 세계의 힘이 작용한다.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저자 조앤 롤링이 쓴 서문을 보면, 그녀가 구축해놓은 또 하나의 마법이 어떤 식으로 세상에 자리 잡았는지 알 수 있다.


  『음유시인 비들 이야기』는 마법사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 모음집입니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수 세기 동안 마법사 부모들이 자녀들이 잠들기 전에 머리맡에서 읽어 준 인기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그 결과 머글 아이들이 「신데렐라」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 친숙하듯이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학생들 대부분은 「마법사와 깡충깡충 냄비」나 「엄청난 행운의 샘」 같은 이야기에 아주 친숙합니다.   

  비들 이야기는 여러모로 우리 머글의 동화와 비슷합니다. 이를테면 대게 선은 보상을 받고 악은 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한 가지 있습니다. 머글의 동화에서는 주인공이 겪는 시련의 원인에 종종 마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악한 마녀가 사과에 독을 넣거나 수백 년 동안 공주가 깊은 잠에 빠지게 하거나 왕자를 야수로 바꾸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반면 『음유시인 비들 이야기』에는 마법을 부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글과 마찬가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끙끙거리는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대대로 마법사 부모들은 비들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어린 자녀들에게 삶의 이런 가슴 아픈 현실을 넌지시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마법은 문제의 해결책이기도 하지만 원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비들 이야기 삽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에서 덤블도어가 헤르미온느에게 남긴 이 책의 수익금은 아이들의 공공시설 수용을 끝내기 위한 비영리적 활동 재단 '루모스(LUMOS)'에 기증된다. 물론 머글 아이들을 위한 자선 단체다. 자신이 창조한 마법 세계로 벌어들인 수익을 좋은 일에 쓰는 롤링의 아름다운 실천에 동참하고 싶으면 이 책을 사서 읽으면 된다.


  솔직히 해리 포터에 흠뻑 빠지지 못한 어른 머글인 나에게 이 책은 좀 어색한 면이 있다. 어릴 때 읽은 전래동화를 30년도 더 지나 다시 읽는 기분이랄까. 해리포터 시리즈 책을 읽다 중도 포기하고, 영화는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까지 보다가 그만뒀다. '해리 포터'라는 이름이 들어간 영화만 보면 예외 없이 숙면에 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세계는 나와 안 맞는다 싶어 더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 시리즈가 10년만 일찍 나왔다면 나도 해리포터 덕후가 됐을지 모른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탓인지 내 마법적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힌 것인지, 해리 포터는 친해지고 싶지만 곁을 내주지 않는 친구처럼, 호감만 간직한 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가 나에게 개인적인 마법을 쓰지 않는 한, 아마 난 평생 그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마법의 세계는 궁금하긴 해도 이상하게 당기지는 않는다. 들춰보다 만 책을 몇 년 전 조카에게 넘겼는데, 2002년 생인 그 아이 역시 별로 해리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하다. 더 어린 조카는 예닐곱 살 때 영화를 보여줬더니 무서워했다. 10대가 된 지금 다시 보여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미 김이 빠졌다고 할까. 헤르미온느가 론 리즐리와 결혼했다는 것까지 아는 마당에 새삼 이 시리즈를 복기하고 싶진 않지만, 가끔 이렇게 불쑥 접하는 마법의 세계는 신선하다. 참, 대단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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