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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Sep 16. 2018

견디라는 말 따윈

책 <오직 두 사람> 김영하 소설, 문학동네, 2017

  김영하 작가는 나에게 소위 '믿고 읽는 작가'였다. 그런 것 치고 한동안 그의 책을 펼친 게 뜸했다. 글보다 TV에서 보는 얼굴이 더 눈에 익었다. 그게 싫진 않았지만, 책으로 손을 뻗는 걸 더디게 했다. 참 이상하다, 작가의 미디어 노출 빈도와 책 읽기는 보통 정비례하지 않나. 나의 청개구리 기질이 은연중에 그의 책을 소홀히(?) 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작년에 나온 책 『오직 두 사람』을 이제야 읽었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잃으며 살아간다. 여기,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그 이후'의 삶이 있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그 이후의 삶'에 밑줄 그었을 때 낙관적이고 희망에 들뜬다면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난 감당하고 견뎌내야 할 그 무엇이 막연하게나마 떠오른다. 아마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기억과 예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소설 속 주인공들이 잃은 것과는 많이 다르다. 아버지를 잃고, 아이를 잃고, 사랑을 잃고, 시간을 잃은 허구의 인물들은 내가 잃은 것을 돌아볼 틈을 주지 않는다. 그들이 잃은 것과 내가 잃은 것은 다르지만, 상실감 이후 우리의 삶은 매한가지다.



 


  표제작 「오직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 좀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들었다. 각별히 가까운 부녀 관계는 남다른 아름다움이 아니라 안타까운 정황으로 느껴져 답답했다. 은연중에 인생을 잠식해온 아버지 때문에 딸은 정신적 불구처럼 보인다. 두 사람은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둘만의 소통 체계를 가진 희귀 언어 사용자다. 희귀 언어를 쓰는 단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사라지면, 나머지 한 사람은 언어의 독방에 갇히게 된다. 딸은 (혐오한 적도 있던) 아버지의 임종을 보며 상상할 수 없는 허전함과 고립을 느낀다. 가족들마저 외면한 아버지와의 친밀함, 그리고 그 이상의 '무엇'이 혼자 남은 딸을 언어의 독방에 갇힌 희귀 언어 사용자로 만든다. 그녀는 자신이 자초한 이 무구한 고독을 별 불만 없이 받아들인다. 좀 쓸쓸한 생을 예상하면서.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 앞에서는 누구나 혼자 남은 희귀 언어 사용자가 될 수 있다. 고독, 쓸쓸함이야 말로 남은 사람들 생의 옵션 아닌가. 어차피 선택지도 없는 옵션이긴 하지만.

      

  2014년 겨울에 발표한 「아이를 찾습니다」를 기점으로 작가는 그 전과 후의 삶과 소설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 해 4월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때문이다. 작가는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 엄존하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마트에서 세 돌이 지난 아들을 잃어버린 부부는 지옥에서 살면서 아이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11년이 흐르고, 그 사이 아내는 잠복해있던 조현병이 발병해 제정신이 아니다. 가세는 기울고 어쩔 수 없는 절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희망 사이를 오가던 중 기적적으로 아이를 찾는다. 유일한 희망이 실현됐지만 부부 앞에 입을 벌리고 있는 건 또 다른 지옥이다. 이미 커버린 아이는 유전적으론 자식이 맞지만 이미 부부의 아이가 아니다. 오히려 유괴해 키워준 엄마를 그리워하며 적응 못하더니 사고까지 쳐 친엄마를 죽게 한다. 부부는 이 불행이 자의적으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며, 그들에게 남은 생의 옵션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직 견디는 수밖에.   


  이 단편집에 나오는, 오직 견디는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면서 '견뎌라'라는 말을 되도록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다들 견디고 있다. 사는 게 곧 견디는 것이니, 굳이 말로 해서 그 말마저 견디고 감수하게 하고 싶지 않다. 슬픔을 감당하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이 오히려 힘을 빼는 것처럼, 사력을 다해 견디는 사람에게는 절대 견디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듣고 싶지 않다. 견디라는 말 따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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