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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Sep 30. 2018

미친 단발머리를 만난다면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꿈에 나올까 무서운 단발머리 미치광이지만 그에겐 묘한 아우라가 있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의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 Javier Bardem)는 남자 어른의 단발머리가 살짝 아둔하고 순박해 보인다는 선입견을 단박에 깨뜨렸다. 외모 못지않게 말투와 행동, 인생관까지 세트로 엽기적인 이 남자는 세상의 우연과 그 우연이 남긴 허무를 유혈이 낭자한 화면으로 보여준다. 세상은 요지경이 아니라, 그저 우연이 남발하는 피바다일 뿐이라고 그 큰 눈으로 표정 없이 말하는 것 같다.  


  시체가 즐비한 마약거래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르웰린 모스(조쉬 블로린 Josh Brolin)는 200만 달러가 든 돈가방을 가지고 튄다. 돈의 원래 수취인이어야 했던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 Javier Bardem)는 그의 뒤를 쫓으며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벌인다. 그 둘을 늙은 보안관 에드 톰 벨이 추격한다.


안톤 시거


  르웰린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퇴역 군인이다. 돈가방을 발견한 건 우연이지만, 인생역전을 꿈꾸며 자신의 의지와 지혜로 이 위험한 행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아내를 처가에 피신시키고, 추격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며 갖은 애를 쓴다. 목숨을 담보로 벌이는 도망과 추격은 심장을 죄어오지만, 그의 죽음은 놀라울 정도로 허무하다. 이렇게 죽을 거면 무시무시한 살인마를 피해 도망친 그 지난한 여정은 무엇이었나 싶을 정도다.


  안톤 시거는 소시오패스처럼 감정과 표정이 없는 남자다. 돈을 추적하며 그가 벌이는 살인 행각은 무미건조하고 덤덤해서 더 소름 끼친다. 필연적인(?) 살인뿐만 아니라 우연한 살인도 동전을 던져서 죽일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에게 생사를 비롯한 세상사는 그저 우연일 뿐이다. 그 역시 피를 말리며 르웰린을 추격하지만 끝에 허무하게 교통사고를 당한다. 과정이 힘들었다고 결과가 장대해야 하는 건 이야기 속 법칙이지, 우연이 지배하는 현실을 무자비하게 묘사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최후도 찌질하고 단순하다.


르웰린 모스


  어쩌면 이 영화의 타이틀 롤일지도 모르는 노인 에드는 늙은이다운 지혜와 노련함을 언뜻 보이지만, 결국 둘 중 누구도 잡지 못한다. 보안관이란 그의 직업은 3대째 내려오는 가업 비슷한 직책이다. 젊은 시절엔 총 없이도 지킬 수 있었던 세상의 평화와 질서는, 은퇴를 코 앞에 둔 지금 꿈도 꿀 수 없다. 젊은 보안관을 대하는 말투엔 연륜이 묻어나지만, 스스로 고백하듯 너무 변한 세상이 버겁다. 노인에게 세상은 쉼 없이 변하는 거대한 소용돌이다. 미친 살인마를 추격하는 일은 무섭고 힘에 부친다. 예상할 수도 없이 튀어나오는 시체와 범행 현장에선 그의 경험과 연륜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아슬아슬하게 안톤 시거에게 접근하지만 끝내 놓친다. 오히려 시거에게 살해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누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나. 변화하는 세상의 잘못인가 적응 못한 노인이 한심한 건가. 적응을 하려 한다면, 이 가늠할 수 없는 살인마의 행각에 베테랑 보안관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에드 톰 벨


  노인의 나이테에 새겨진 지혜엔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과 논리가 있다. 인과응보, 결자해지, 사필귀정 같은 말은 노인들이 특히 신봉하는 삶의 원리를 담고 있다. 정의와 올바름은 노인이 끝까지 사수해야 한다고 믿는 최후의 보루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악이 자행하는 파괴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광범위하다. 이유라도 있다면 해결할 여지라도 있는데, 악은 순수할 정도로 우연의 남발로 드러난다. 이유 없이 죽은 사람들의 허무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저 운이 없었고 운명이었다는 것 밖엔. 노력하고 발버둥 치다가도 총 한방에 쓰러지고, 동전의 뒤가 나와 목숨을 부지하기도 한다. 거액의 돈을 우연히 줍고, 피 흘리는 남자에게 낡은 셔츠를 500달러에 팔기도 하고, 모텔방에서 영문도 모른 채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죽음과 삶 뒤엔 어떤 논리와 필연도 존재하지 않는다.


  노인의 지혜로 대변되는 세상의 정의와 논리는 사라졌다. 이 영화는 허무할 정도로 우연에 의해 목숨이 부지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세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살인자도 예외는 아니다. 잔인함 뒤에 따라오는 허무함은 무기력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세상이라면 굳이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좋은 일을 한들, 우연한 사고로 훅 가거나 미친 살인마를 만나 종 치는 게 인생이라면 굳이 선하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악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그 자체의 악함과 더불어 인과 관계없이 닥칠 수 있는 사고라는 점 때문이다. 세상을 오래 살았든 적게 살았든 우연이 묵인한 불행과 사고 앞에선 우리 모두 설 땅이 없는 노인이 될 수밖에 없다. 만일 인생에서 미치광이 단발머리를 만난다면,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게 없을 듯싶다. 그가 내미는 동전을 받아 들고 던지는 수밖에. 지독히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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