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이스 Oct 01. 2018

기적이 필요없길 바라며

영화 <Miracles from Heaven> (2016)

  인도네시아를 강타한 쓰나미와 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아마 사상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뉴스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혹하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지옥을 경험하고, 누군가의 입에선 끊임없이 기적을 갈구하는 기도가 흘러나올 것이다. 삶과 죽음 사이엔 아무것도 없다. 기적을 바라는 기도 밖에. 더 이상 어찌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인간은 뜨거운 마음을 온전히 드러낸다. 기적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는 마음의 온도 차이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알 수 없는 그 힘은 누구도 설명할 수 없다.   



애나와 엄마 크리스티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건, 그 자체가 기적이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기적을 갈구하게 만든다.  

  건강하고 예쁜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음식을 못 삼키며 배가 부풀어 오른다. 장폐색은 음식을 소화 흡수시키지 못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가족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만 병은 점점 악화된다. 아이의 병이 혹시 부모의 죄로 인한 죗값일지 모른다는 이웃의 말에 가족은 또 한 번 상처받는다. 급기야 엄마는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너코 박사와 엄마


  유명한 소아과 의사 한 번 만나보겠다고 텍사스에서 보스턴까지 무작정 날아간 엄마는 좌절한다. 예약하지 않은 의사는 코빼기 조차 볼 수 없다. 물론 그전에 수차례 예약을 시도했지만, 대기하라는 말만 듣자 애가 타서 나선 것이다. 좌절한 모녀는 식당에서 친절한 웨이트리스를 만나 위로받는다. 그리고 다음 날 기적적으로 의사를 만날 기회를 갖는다. 너코 박사는 아픈 아이들을 위한 최적의 의사다. 그의 따뜻하고 친절한 매너에 고통받는 아이들은 웃음 짓고 부모는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의사의 배려만으로 병이 낫진 않는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고생하는 엄마, 병원비 마련에 허덕이는 아빠, 가족의 고통에 침울한 자매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집은 삭막해진다. 아이는 점점 더 커지는 고통에 차라리 죽어 하나님 곁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더 이상 병원에선 할 게 없어 퇴원한다. 이제 기적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  


애나의 가족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침울한 아이는 언니를 따라 죽은 고목에 올라간다. 예전에 자주 올라가서 놀던 나무다. 발을 헛디딘 아이가 텅 빈 고목 안으로 떨어진다. 9미터 높이에서 떨어진 아이는 생사를 알 수 없고, 구조를 요청한 가족들은 그저 고목을 끌어안은 채 간절히 기도한다.


  아이는 살아났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지만 외상 하나 없이 멀쩡하다. 뿐만 아니라 부풀어 오르던 배가 들어가더니 불치병이었던 장폐색까지 낫는다. 말 그대로 기적이다. 나중에 아이는 나무 안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 하나님을 봤다고 말한다.  


애나와 엄마가 보스턴에서 만난 웨이트리스 안젤라


  이 이야기는 실화다. 크리스티 빔은 딸 애나가 보여준 하나님의 기적을 교회에 나가 간증한다. 애나의 병이 위중하지 않으면서 쇼하는 거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애나와 같은 소아 병실에 있었던 아이의 아빠가 증언한다. 애나는 심각한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게 사실이고, 자신의 딸은 죽었지만 애나 덕분에 천국에 갔을거라 믿는다고 한다. 크리스티는 애나가 살아난 것도 기적이지만, 실은 우리 일상 곳곳에 기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좌절한 모녀를 위로해준 보스턴 식당 웨이트리스의 친절함, 불가능했던 너코 박사와의 약속을 잡아준 병원 리셉션 직원의 수고, 한도 초과의 카드에도 불구하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게 해 준 항공사 직원의 배려까지. 알게 모르게 애나와 가족을 도운 사람들 자체가 기적이었다고 한다. 설명할 길 없는 기적이 이렇게 가깝고 다정하게 일상에서 구현된다는 사실을 이 엄마는 몸소 체험한 것 같다.


고통받는 딸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엄마


  기적을 체험하고 깨닫는 것은 경이롭고 신비한 영광이지만, 인간의 이상적인 삶은 기적을 바라지 않는 삶일 것이다. 아니 바랄 필요가 없는 삶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있는 매 순간이 기적이라는 걸 자각하는 삶이거나. 지금 기적이 간절한 그곳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실현되길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친 단발머리를 만난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