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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May 04. 2018

혁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책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 브라이언 크리스천, 톰 그리피스

일상의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생각의 혁명!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


우리가 집을 산다고 가정해 보자. 예산과 입지는 정해져 있고, 한 달 정도 발품을 팔며 집을 보러 다닐 계획이다. 이미 둘러본 집은 다른 사람이 잽싸게 채간다면, 언제쯤 둘러보길 멈추고 이 집이다, 하고 결정해야 할까. 한 달 내내 보다 마지막 집을 택하겠다는 어리석은 대답은 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맨 마지막 집이 최상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마음에 쏙 드는 결혼 상대자를 만나기 위해 보통 사람들은 18~40세 까지 배우자를 찾아 헤매는 인생의 모험을 한다. 한 번 스쳐 지나간 상대는 다시 만날 수 없다면, 몇 살 때 만난 상대를 인생의 반려자로 점찍는 게 이상적인 선택일까. 소개팅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만날 수 있는 상대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진다. 이건 진리다.


집이건 연인이건 직관으로 해결하는 게 그나마 낫다고 할지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더 나은 대안이 나타날 거란 기대로 놓쳐버린 많은 것들을 미련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런 후회를 최소화하고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택지 앞에서 고르는 '둘러보기'와 이것이다 하고 결정하는 '뛰어들기' 사이의 균형은 이미 답이 나와 있다.



가장 좋은 집을 구할 확률을 최대로 높이고 싶다면, 집을 구하는 데 드는 시간의 37%, 즉 1개월을 둘러본다면 11일 때까지는 막연하게 둘러보다가, 12일째 되는 날부턴 눈에 불을 켜고 언제든 계약할 각오로 봐야 한다. 그동안 봤던 집들과 비교하여 조금이라도 나은 집이 나타나면 미련 없이 계약금을 투척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앞으로 더 둘러봐야 더 나은 집이 나타나기보다는 기존에 봤던 집만 못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배우자를 찾는 일도 마찬가지다. 평생 몇 명의 이성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탐색이 이루어질 18~40세의 37% 구간에 해당하는 26~27세가 됐을 때, 지금까지 만난 이성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잡아야 한다. 혹시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날까 싶어 그(그녀)를 놓치고 기다리는 짓은 과학적으로 볼 때 미련한 짓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일종의 수학 문제다. '37% 법칙'은 이런 일상의 문제들을 풀기 위한 일련의 단계들로, 컴퓨터과학자들이 '알고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상에서 '배우자 구하기'와 동일한 구조의 문제들에 둘러싸여 산다. 동네를 몇 바퀴 돌아야 주차공간을 찾게 될까, 새로운 사업에 얼마의 운을 쏟아부어야 수익을 얻게 될까 같은 '최적 멈춤'의 문제 말이다.

'알고리즘 설계'는 사람들이 매일 마주치는 도전 과제들의 더 나은 해결책을 찾는 것을 말한다. 최적 멈춤은 살펴볼 때가 언제이고 뛰어들 때가 언제인지 알려준다. 탐색/이용 트레이드오프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과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일 사이에 균형을 찾는 방법을 알려준다. 정렬 이론은 사무실을 어떻게 정리하는 게 맞는지 알려준다. 캐싱 이론은 옷장을 채우는 법을 알려준다. 일정 계획 이론은 시간을 배분하는 법을 알려준다.  삶이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엄밀한 수치 분석이나 쉬운 답을 기대할 수 없을 때에도, 더 단순화한 형태들에 맞추어진 직관과 개념을 이용하면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고 일을 진척시킬 방법이 나온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알고리즘 이론이 담긴 600페이지가 넘는 책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가 '일상의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생각의 혁명'이라는 부제와 달리, 혁명은커녕 이해하는 것조차 버겁다는 것이다. 집 구하기나 배우자 고르기 같은 예에서 탐색 구간의 정교한 계산을 통해 입증한 37%가 '최적 멈춤'의 시점이라는 것까지는 이해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안갯속을 헤매는 것처럼 몽롱하다. 목차만 보면 아주 쉽고 그럴싸해 보인다.


가장 최신의 것 VS 가장 좋은 것_탐색/이용

질서를 찾다_정렬하기

잊어라_캐싱

중요한 것부터 하라_일정 계획

미래예측_베이즈 규칙

....        


이 책을 차분히 정독하면 내 삶에 알고리즘 설계가 적용되어 마법처럼 최상의 질서와 효율이 일상을 지배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 무지하고 무식한 나의 뇌는 소화불량에 걸린 것처럼 핵핵댄다. 그래서 과감하게 중간에 읽기를 포기했다. 그냥 지금까지 살던 대로 무질서와 혼란과 막무가내인 직관만 믿고 꿋꿋하게 살아갈 것이다. 어차피 집을 구할 것도 아니고, 배우자를 찾아 나설 것도 아니니까.


웬만해선 이런 중도 포기는 안 하는데, 컴퓨터과학자가 쓴 철학과 유머가 담긴 글자들을 소화 못 시키는 무식함 때문에 책을 덮어야 해서 씁쓸하다. 그래도 읽은 값은 해야겠기에, 마지막으로 알고리즘 설계를 적용해 몇 페이지까지 읽고 덮어야 합리적인 포기인지 '최적 멈춤'을 실행했다. 중간에 어렵고 지루한 구간이 있더라도, 뒤에 더 흥미롭고 쉬운 내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 때문에 꾸역꾸역 읽는 낭비(?)를 방지한 최상의 선택을 한 것이다. 이 책은 614페이지인데, 본문이 483 페이지고 나머지는 참고문헌 목록 페이지다. 본문 483페이지의 37% 지점인 178페이지 까지 읽은 후 과감하게 덮었다. 이 책의 저자들이 나의 행태를 보면 입에 거품을 물 수도 있다. '최적 멈춤'을 그딴 식으로 적용하다니,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그들이 알려준 것을 내 일상의 한 부분에 응용했으니 어쩌면 기특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알고리즘'이 '알레르기'로 보이기 전에 멈추어서 다행이다. 미련과 갈등 사이에 언제 멈춰야 후회가 가장 덜한 합리적인 선택인지 알게 돼서 기쁘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모든 결정과 포기의 순간엔 마법 같은 숫자 37% 떠올리며 나름 합리적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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