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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Nov 01. 2018

부비트랩을 터뜨린 순간 사랑이 만개한다!

영화 <The Big Sick> (2017)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로맨틱 코미디가 슬프게 느껴지고, 남들 다 웃을 때 냉랭한 기분이 들 때가. 얼마 전에 본 웃픈 사랑 이야기는 깔끔한 해피엔딩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구석을 답답하게 한다.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 실화가 아름다운 오락거리이자 이야기로 가치 있다는 반증일 텐데, 사실 이런 이야기가 더 이상 영화 소재가 안 되어야 괜찮은 세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주인공 배우의 실화라 그런지, 본명으로 등장하는 쿠마일 난지아니는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면서 우버 택시기사로 일하는 파키스탄 이민 1.5세대다. 개그 레퍼토리는 모국 파키스탄을 살짝 비꼬는 듯한 자학 모드지만 심각하지 않아 가볍게 웃긴다. 쿠마일은 클럽에 손님으로 온 대학원생 에밀리와 사랑에 빠지는데, 애써 가벼운 관계인 척 시종일관 농담만 하며 쿨하게 즐긴다. 에밀리 역시 감정에 충실한 연애를 지향하지만, 파키스탄 남자에게 끌린 건 일시적인 거라 단정 짓고 싶어 하는 게 역력히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대로 둘은 진지하게 사랑에 빠진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쿠마일 난지아니


  관계가 지속되면 꿈은 깨지고 현실이 눈뜬다. 이혼한 적이 있다고 덤덤하게 밝히는 에밀리 때문에 쿠마일은 충격받지만 잘 넘어간다. 혼자 감내해야 하는 일은 이 파키스탄 남자에겐 비교적 쉽다. 문제는 둘의 관계에서 파장되는 세상과의 대면이다. 태어난 나라가 다르고, 인종과 피부색과 (형식뿐인) 종교의 다름은 사랑으로 극복하기엔 너무나 치명적인 일상의 부비트랩이 된다.


에밀리 고든


  남자 친구 부모님께 인사하고 싶다는 에밀리의 말은 쿠마일에게 치명타가 된다. 자유분방하고 합리적인 백인 여자가 남자의 부모님을 만나겠다는 건 결혼까지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둘의 관계는 그만큼 무르익었고 서로에 대한 감정은 촘촘하다. 쿠마일도 이걸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 (백인 여자와의) 결혼은 연애의 자연스러운 종착점이 아닌, 가족의 배경에 버티고 있는 파키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한 도전이다. 그의 부모는 미국으로 이민 와 아들에게 변호사가 되라고 충고하며 결혼은 부모가 정해준 파키스탄 여자와 하라고 종용하는 전형적인 무슬림이다. 쿠마일은 부모를 속이며 하루 다섯 번의 무슬림 기도를 제치는 것처럼, 사랑도 어물쩡 넘어가려 하지만 쉽지 않다. 기도는 혼자 하지만 사랑은 상대와 함께 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맞선녀를 끊임없이 초대하는 쿠마일의 어머니


  그동안 부모의 강요로 쿠마일이 맞선 본 파키스탄 여자들의 사진을 본 에밀리는 자신이 어떤 나라 출신의 남자와 연애하는지 절감하며 난리 친다. 혼자 결혼을 꿈꾼 백인 여자의 상처는 이별로 이어진다. 실연한 쿠마일의 스탠드업 코미디는 더 자학적인 모드로 변한다. 그에게 '파키스탄'이란 나라는 지루한 1인극에서 내내 읊어댈 만큼 뼛속과 내장까지 스며든 자양분이지만, 동시에 몽땅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성가시고 진한 피이기도 하다.


파키스탄 전통을 중시하는 쿠마일의 아버지


  에밀리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코마 상태에 빠지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쿠마일은 의도치 않게 그녀의 부모와 14일 동안 마주하며 병상을 지킨다. 파키스탄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힘들어하는 쿠마일에게 미국 중년부부는 또 다른 도전이 된다. 에밀리 아빠는 딸의 유색인종 전 남자 친구에게 대뜸 911 테러에 대해 어떤 입장이냐고 묻는다. 사악한 백인 우월주의자도 아니고, 배울만큼 배운 교양과 선의를 갖춘 백인 남자가 악의 없는 태도로 (그러나 다분히 폭력적인) 한 질문에 쿠마일은 심상하게 테러는 비극적인 일이라고 대꾸한다. 딸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 해도 에밀리 부모가 쿠마일에게 보여준 태도는 자식의 결혼을 좌지우지하려는 고지식한 파키스탄인 부모 못지않게 억압적인 정신적 테러로 보인다.


에밀리의 부모님


  한편 에밀리 엄마는 쿠마일을 딸의 남자 친구로 탐탁지 않아하면서도 그가 클럽에서 받는, 테러 단체로 돌아가라는 무례한 손님의 공격엔 발끈하며 대항한다. 예의 바르지만 차갑고, 편견과 차별엔 기를 쓰고 대항하는 미국인의 이중적인 모습이 매우 현실적이다. 누구나 자신은 차별주의자가 아닌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지만, 막상 닥치면 신념을 따르기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남이 저지르는 무례는 용서하지 않는다. 모른 척하는 순간 자신도 동급으로 매도된다 여기는 듯 필사적으로 대항한다.


  에밀리가 혼수상태에 있는 동안, 쿠마일과 에밀리 부모는 적당한 선을 유지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일상을 공유한다. 에밀리는 양쪽 모두에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 이들은 서로를 낯설어하면서도 내칠 수 없다. 그래도 선과 간격은 분명 존재한다. 에밀리가 깨어나자 쿠마일은 애써 자신의 노고를 감춘다. 그녀의 부모도 깎듯이 쿠마일에게 고마워하지만 이젠 더 볼 일 없다는 듯 행동한다. 에밀리 역시 헤어진 전 남친에게 미련 없다는 듯 군다. 참 현실적이다. 병상에서 기적을 맛본 네 사람이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심파가 아니라 다행이긴 하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에밀리


  쿠마일은 자꾸 여자를 들이미는 부모에게 정략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은 무슬림이 아니라고 밝힌다. 억지로 정해진 기도시간에 스마트폰 게임하며 시간 때웠다는 고백은, 그가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살고자 하는 미래를 위해 터뜨린 일상의 부비트랩 중 하나다. 에밀리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녀가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녀의 부모를 만나 미세한 차별과 편견에 맞서고 동시에 이해받지 않았다면 터뜨리지 못했을 용기다. 에밀리는 예전에 남친 집에서 대변을 못 보고 전전긍긍하다 선을 넘는 용기(?)를 발휘한다. 무지하지도 않은 성숙한 여자가 생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토록 험난한 자학을 해야 하는지 안타까우면서도, 그녀가 너무 이해된다. 에밀리가 터뜨린 이 일상의 부비트랩은 인종차별과 편견만큼 깊고 고루하고 치명적이다.  


편견을 극복해가는 연인


  쿠마일과 에밀리가 나중에 다시 만나 결혼한 것은, 세상 모든 남녀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일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그들이 다른 인종이라 해서 더 특별하게 보고 싶지 않다. 그것보다는 에밀리의 특이한 코마 상태를 끝내는데 연인이었던 쿠마일의 한 마디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더 높이 사고 싶다.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운 건, 편견을 극복해서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못 깨어날지도 모르는 헤어진 연인 곁을 지킨 한 남자의 고전적인 순정이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헤어진 여자 친구의 부모를 (여자 친구가 혼수상태인 상황에서) 14분도 아닌 14일 동안 견딘 남자의 인내심에 비하면 911 테러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은 대답할 가치도 없는 얄팍한 말장난처럼 느껴진다. 내가 그 나라에 소수인종으로 살고 있지 않아서 안이하게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미국에 사는 파키스탄인이라는 정체성보다, 남자 친구 집에서 화장실에 못 가는 여자의 부비트랩이 더 위험하게 보인다. 물론 에밀리는 시원하게 그 일상의 부비트랩을 터뜨리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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