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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Dec 20. 2018

생의 기적을 만드는 케미스트리 -그린북

영화 <그린 북 Green Book> 2018년

※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에서 본 영화입니다.


  1962년의 광활한 북아메리카 대륙은, 인종차별을 뛰어넘는 훈훈한 인간애와 우정의 연대기가 꿈틀대기에 적합한 곳이다. 그만큼 당시 미국엔 유색인종에 대한 부당하고 노골적인 차별이 만연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꽤 빈번하게 보아온 이런 배경이 참신하고 따뜻한 유머로 전환되는 드라마는 연말의 스산한 마음을 달궈주기에 충분하다.



  정과 의리는 넘치지만 다소 거칠고 허세가 심한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르테슨 Viggo Mortensen)는 식신 수준으로 먹고 마시며 인종차별도 거리낌 없이 하는, 단순 무식한 남자다. 그에 비해 우아한 기품과 교양을 겸비한 뮤지션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Mahershala Ali)는 카네기홀의 팬트 하우스에 사는 고고한 피아니스트다.  


카네기 홀에 사는 고고한 뮤지션 돈 셜리


  토니가 셜리에게 고용되기 위해 면접 보는 장면부터 두 사람의 교양과 사회적 지위의 격차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왕좌에 있는 듯 높은 의자에 앉아, 거칠고 무례하기까지 한 토니를 내려다보는 셜리의 시선은 깔끔하지만 차갑다. 당시 보편적이었던 흑인과 백인의 위치가 바뀐 이 통쾌한 전복은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고 발전할지 기대하게 한다. 흑인 하인과 백인 나으리의 신분을 뛰어넘는 위대한 우정 따윈 보게 될 일 없다는 상큼한 예고 시퀀스다.


거칠고 무식하지만 정 많은 가장 토니 발레롱가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남서부 지역의 연주 투어를 위해 셜리의 운전기사 겸 보디가드로 고용된 토니는 예의 그 무식과 무례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여행을 시작한다. 푸른색 캐딜락의 짐칸에 셜리의 트렁크를 실어주지 않는 것으로 시작해, 운전하는 내내 거리낌 없이 지껄이며 먹고 마시며 싼다. 그때까진 토니도 몰랐을 것이다. 그가 이 여행을 위해 받은 '그린 북(흑인이 머물 수 있는 숙박시설과 식당 등을 표시한 여행 가이드 책)'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백인 운전사와 그의 보스인 흑인 피아니스트


  다혈질 토니는 무식하지만 선량하고, 무례하지만 인간의 도리는 아는 남자다. 남부로 향할수록 자신의 보스 셜리가 대단한 아티스트라는 걸 깨닫고 그의 연주와 명성에 감탄하지만, 무대 밖에서 셜리가 받는 차별과 부당함에 마음 아파한다. 셜리가 고집하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무력으로 사수할 만큼 그는 보스에게 인간적인 우정과 충성을 보여준다. 한편, 셜리는 토니의 (튀긴 닭과 옥수수를 주로 먹는다는) 흑인에 대한 편견에 불쾌해하며 그의 무식에 학을 뗀다. 반면 혼자 누추한 흑인 전용 숙소에서 자괴감을 느끼고 술집에서 이유 없이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차별과 부당에 치를 떨면서도 자신의 교양 안에 머물 수밖에 없는 처지에 괴로워한다.


여행중인 두 남자


  취향도 성격도 다른 두 남자는 상대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셜리는 토니의 강권에 못 이겨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맨손으로 뜯으며 감탄한다. 토니는 셜리가 부르는 대로 받아 적으며 아내에게 (시에 가까운) 아름다운 편지를 보낸다. 자신에겐 없지만 꼭 필요했던 무언가를 그들은 은연중에 그렇게 주고받는다.


  토니가 셜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본능에 가깝다. 그의 아름다운 연주에 감탄하고 쓸쓸함에 공감한다. 셜리가 부당하게 당하면 같이 아파하며 싸운다. 그의 동성애마저도, 이해할 순 없지만 예술가들은 그럴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돈을 주는 보스니까 마지못해 덮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냥 거리낌 없이 단순하게 받아들인다. 그에 반해 셜리는 조금 복잡하다. 그는 '많이 배우고 예술을 하는 흑인'이라는 정체성을 현실에 안착시키기 위해 무던히 인내하고 노력한다. 무대 위에선 환호받아도 내려오면 백인과 같은 화장실을 못쓰고 심지어 식당도 못 가는 '흑인'이라는 사실에 고뇌하며 절규한다. 높은 학식과 교양은 자신을 흑인이 되지 못하게 하고, 피부색은 백인으로 살지도 못하게 한다고 외친다. 더군다나 동성애자인 그에겐 세상 모든 게 장벽이고 금기고 살얼음판이다. 그런 셜리에게 토니는 동정이 아닌 더 큰 호통으로 받아친다. 자신이야말로 가족들 벌어먹여 살리기에 숨이 찬 하층민 가정의 가장이라고. 누가 더 힘들고 빡세게 사는지 한번 따져보겠냐는 식으로 터뜨린다. 셜리다운 절규이고, 토니스러운 응수다.


셜리가 불러주는 대로 편지를 받아쓰는 토니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상식인 사회에서 흑인은 아무리 잘 나고 똑똑해도 억압받는 계층이다. 이런 현실 앞에 개인의 고뇌는 참혹할 정도로 비참하고 절망적이다. 셜리는 고속도로 길가에서 자신을 외계인 보듯 하는 흑인 노동자들의 시선에, 백인에게 차별받을 때보다 더 황망해한다. 당황한 건 토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단순하고 무식해도 그는 안다. 셜리가 공기처럼 감내하며 사는 칭송과 차별이 혼재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토니 역시 왜 흑인의 운전기사를 하냐는 백인들의 비아냥에 이골이 났다. 그들은 은연중에 곁에 있는 서로에게 영향받으며 차츰 변한다. 셜리는 그동안 억눌러왔던 자존심을 분출하며 식당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 호텔의 무대를 박차고 나온다. 토니는 임금을 못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무례한 차별에 저항하며 흑인 친구를 위해 싸운다.


백인들을 위해 연주하는 셜리의 악단


  아이러니하게도 셜리가 흑인 전용 술집에서 스타인웨이가 아닌 싸구려 피아노로 연주하는 곡은 클래식이다. 정작 백인들을 위한 공연장에선 뮤지컬 넘버나 가벼운 대중음악을 연주했었다. 그는 술집에서 흑인들의 환호를 받으며 자신이 갈고닦은 교양과 예술혼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앞에서는 음악의 장르나 피아노의 가격은 중요하지 않다. 청중의 피부색은 말할 것도 없고.


  무식한 토니가 셜리의 도움 없이 아내에게 편지다운 편지를 써가는 동안, 고고한 셜리는 의리 있고 따뜻한 남자로 변모한다. 그는 손수 운전해서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남편을 제자리에 돌려놓겠다고 한 토니 아내와의 약속을 지킨다. 눈보라를 뚫고 그들이 돌아온 길은, 전에 알던 익숙한 길이지만 다른 길일 것이다. 그들이 함께한 험난하지만 잊지 못할 8주는, 결과적으로 그들의 남은 생을 바꾸고 삶을 빛나게 하는 위대한 여정이 되었다.


토니와 그의 아내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가 아름다운 기적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하거나 양보한 게 아닌, 함께 함으로써 각자 지녔던 본성이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단순 무식한 백인은 친구를 위해 주먹을 날리고 총을 쏘고 밥을 굶었다. 그가 버린 것은 그동안 무지해서 생각 없이 자행했던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 그것 한 가지밖에 없다. 토니가 어떤 개념이 생겼거나 대단한 각성을 해서 인종차별에 반감을 갖게 된 건 아니라고 본다. 그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 친구의 처지에 공감하며 끌렸고, 그 친구는 우연히 교양 있고 명민한 흑인이었을 뿐이다. 완전무결한 흑인은 친구 때문에 솔직해지고 감춰뒀던 자존감을 끄집어냈으며, 자기가 고용한 운전사를 위해 운전까지 한다. 그 역시 고고한 만용을 버리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친구의 집을 찾아간다. 이들에겐 더 이상 '그린 북'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 어느 곳에 가더라도.


  서로를 다그치지도 종용하지도 않고, 단지 존재만으로 변화하고 삶을 전복시키는 우정이야말로 생의 기적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 인간을 향해 내뿜는 온기만큼 뜨겁고 빛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꼭 크리스마스가 아니더라도 생에 한 번쯤은 볼 만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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