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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an 02. 2019

그들만의 축제

영화 <MAMMA MIA2 : Here We Go Again!> 2018

추운 날씨 탓인지 뜨거운 햇살이 작렬하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지난여름을 뜨겁게 달군 「맘마미아 2」는 적당히 뜨겁고 안전한 선택이었다.  


"인생은 짧고 세상은 넓어. 멋진 추억을 만들고 싶어!"


1979년, 학교를 갓 졸업한 도나(릴리 제임스 Lily James)는 바라만 봐도 싱그러운 청춘이고, 인생은 그녀 앞에 뜨거운 태양빛이 쏟아지는 바다처럼 넘실댄다. 두려움 없는 청춘은 과감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갔고, 세월이 흘러 그녀가 없는 자리엔 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 Amanda Seyfried)가 있다.


소피


소피는 엄마 도나 (메릴 스트립 Meryl Streep)가 없는 섬에서 엄마의 인생이 담긴 호텔을 재개장하기 위해 분주하다. 엄마의 절친 타냐와 로지를 비롯해 세 아빠 샘, 해리, 빌을 리오픈 파티에 초대한다. 한 여름의 파티는 태풍 때문에 잠시 주춤할 뻔 하지만, 초대 손님들과 더불어 깜짝 등장한 소피의 할머니 루비(셰어)까지 가세하며 찬란하게 인생을 즐기라는 도나의 메시지는 여름밤을 뜨겁게 달군다.


소피 & 도나의 친구들 로지와 타냐


엄마 인생의 추억과 비밀을 들춰보며 그 뒤를 따르는 딸의 모습은 아름답고 약간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녀 또한 엄마가 되면서 자신의 엄마가 남긴 것을 깊게 반추한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우정을 자랑하는 친구들과 젊은 날을 뜨겁게 장식했던 남자들은 도나가 없는 세상에서 반목과 질투 없이 함께 원숙해 간다. 바다와 태양, 섬의 호텔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여름밤에 음악은 끊이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도나를 추억하며 즐긴다. 참 이상적이다. 도나처럼, 소피처럼 한 순간이라도 살 수만 있다면 원이 없겠다 싶을 정도다. 근데 딱 거기까지다.


도나의 남자들 해리, 빌, 샘


해피엔딩을 목표로 질주하는 이 영화엔 갈등이 거의 없다. 현재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건 태풍 정도인데, 그나마 하루 만에 사라진다. 소피의 남편 스카이는 사랑 때문에 뉴욕에서의 경력을 포기하고 섬으로 돌아온다. 도나의 남자들은 나이 먹어서도 젠틀하고 열정적인 꽃중년들이다. 과거 프리퀄도 별반 다르지 않다. 꿈과 희망에 부푼 젊은 도나에게 사랑의 시련은 생의 액세서리처럼 약간의 상처와 영원한 빛을 남긴다. 그녀가 짧은 시간에 만나고 거쳐간 멋지고 순수한 청년들은 큰 갈등 없이 그녀 인생 후반부를 장식한다. 도나가 샘에게 받은 상처조차 심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젊음은 빛나고 세상은 너무 환하다.


젊은 시절 도나와 타냐 & 로지


사실 이 영화는 딱 이런 분위기를 기대한 관객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걸 준다. 왜 이 뮤지컬 영화는 갈등 구조가 약하고, 스토리의 비약이 심하며, 격정적인 클라이맥스가 없는지, 춤은 왜 그 모양이냐고 따질 순 없다. 이 영화는 남의 잔치 구경하듯, 남들 노는 거 관망하는 기분으로 보면 딱이다. 도나의 인생관이 부럽고, 소피의 삶이 탐나도 우리는 매일 노래하고 춤만 추며 살 순 없다.


10년 전에, 그리고 그전에 뮤지컬로 무대에서 본 「맘마미아」는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ABBA의 음악이 주는 명쾌한 기분 전환에 온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흥겨웠다. 인생의 찬란한 추억과 비밀을 담은 속편 역시 경쾌하긴 하지만, 뭔가 작정하고 놀자판을 벌인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 단적으로 소피의 외할머니 루비가 등장하는 시퀀스는 이 영화의 배경이 한 여자의 인생이 담긴 섬이 아닌, 아바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인 콘서트장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셰어의 퍼포먼스는 예상 그대로 펼쳐진다.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맘마미아'라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콘서트 같은 화면에 환호했을 것이다. 비약이 심한 뮤지컬이라도 뭔가 뚜렷한 갈등 구조를 기대하고, 깊이 있는 과거지사를 원했던 내가 오히려 이 영화에 적합하지 않은 관객일 것이다.


소피의 외할머니 루비


신나고 찬란하지만 그들만의 축제는 한 번으로 족하다. 메릴 스트립이 짧고 굵게 등장해 감동을 들이부어도, 릴리 제임스가 빛나는 젊음으로 바닷가를 누벼도, 시도 때도 없이 노래하고 춤추며 세상은 넓으니 맘껏 즐기라고 설파하는 건 그만 듣고 싶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뻔히 아는 단순한 명제도 다시 확인하게 하는 게 뮤지컬이지만, 맘마미아가 퍼뜨리는 메시지는 작렬하는 태양만큼 밝고 강한 대신 금방 저물어 버린다. 엔딩 크레디트가 흐르고 아바의 음악이 끊긴 후 돌아보게 되는 현실의 썰렁함은 이 영화가 은연중에 얘기하는 또 하나의 인생이 아닐까. 진짜 인생은 그곳이 아닌 여기에 있다.  역시 겨울엔 뭘 해도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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