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이스 Jan 23. 2019

환상의 빛

책 <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드디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환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원작이 있는 영화는 책부터 봐야 마음이 편하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면 글자 위로 둥둥 떠다니는 영화 이미지 때문에 사고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일종의 부작용이다. 특히 인물 캐릭터는 배우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그 이외에는 어떤 인물도 떠올릴 수 없어서 갇혀버린 느낌마저 든다. 글자를 먼저 접하고 상상했던 이미지와 다른 건 용납할 수 있지만, 이미 사로잡힌 이미지에 글자가 매칭 되지 않으면 몹시 찝찝하다. 다른 분야엔 절대 발휘되지 않는 묘한 결벽증이다.  




이 책에는 「환상의 빛」을 비롯해 단편 네 편이 수록되어 있다. 하나같이 죽음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다. 표제작 '환상의 빛'엔 편지처럼 써 내려간 여인의 심정이 담겨있다. 수취인이 없어서 그런지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지만 좀처럼 격앙되지 않는 말투가 더없이 쓸쓸하다.


유미코는 소소기 바닷가 마을에서 재혼한 남편과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가끔 예전 오사카에서 첫 결혼 생활할 때를 골똘히 떠올리곤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자살한다.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다. 그가 밤에 집 밖으로 나가 철길을 걷다 전차에 치어 죽었다는 것만 지울 수 없는 팩트로 남아있다. 유미코는 사는 내내 풀리지 않은 의문을 가슴에 품고 산다. 남편은 왜 자살했을까? 신혼이었고 행복했다. 아들이 태어난 지 석 달 밖에 안됐고, 남편이 도박이나 불륜을 했던 것도 아니다. 직장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당신은 왜 그날 밤 치일 줄 뻔히 알면서도 한신 전차 철로 위를 터벅터벅 걸어갔을까요?


남편이 죽은 뒤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아내는 종종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진다. 아마 그녀의 생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반추해봐도 유미코는 남편이 자살한 만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저 재혼한 남편이 "사람은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 지는 법이야." 하는 말만 잠자코 들을 뿐이다.

내가 유미코라면 그렇다면 왜 하필 그때 혼이 빠져나갔을까, 그럴만한 일이 뭐가 있었을까 또 반추했을 것이다. 사실 끝은 없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세상사가 허무하면서도 기이할 뿐.


사람은 태어나는 건 우연이지만 죽는 건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어서일까, 탄생은 랜덤이고 그저 숙명이라고 여긴다. 반면 죽음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아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멸! 모든 생명체가 지닌 숙명이자 진리다.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하는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필연의 이벤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한번'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고 기념할 가치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 그저 사라질 뿐이다. 설명할 길 없는 죽음엔 많은 의문과 억측이 난무한다. 심지어 그 에너지가 남은 삶의 이유가 되는 인생도 있다. 죽은 이의 복수를 위해서,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벼르는 삶...


가까운 가족과 친구의 죽음이 남긴 충격과 회한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사는 내내 죽음의 기억을 끌어안고 죽음과 더불어 산다. 자신이 그 이벤트의 주인공이 될 때까지. 사람들은 죽음 자체를 슬퍼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 뒤에 따라오는 외로움과 상실감에 더 몸서리친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의 주인공들만 봐도, 죽음 자체에 무너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가까운 죽음이건 오래된 죽음이건 그들은 삶의 일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지인의 죽음과 자신의 생을 교묘히 섞는다. 외로움과 불안,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솔직히 가독성 좋은 이 책에서 되풀이되는 죽음의 의미가 뭔지 모르겠다. 단순히 소재 차원으로 사용한 것 같진 않은데, 내 사고가 얕아서인지 죽음의 의미가 별다르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너무나 일상적이다.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순간 우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B와 D사이의 모든 일이 사연이 되고 회한이 되고 기억이 된다. 모든 이야기는 이 끝과 저 끝 사이에 존재하므로 특별히 저 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환상의 빛은 나만 못 보는 건가. 끝까지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건가. 뭔가 아쉽고 개운하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