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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May 13. 2018

사랑한다는 말 대신

영화 <Call Me by Your Name> (2017)


첫사랑 영화의 고전이 될 만한 또 한 편의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 내 견해는 아니고 이 영화에 쏟아진 평이 그렇다.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전형적인 미남 배우 아미 해머가 나오지만 그다지 설레지 않았으니.


영화의 배경은 1983년 여름, 이탈리아 남부 크레마다. 대학교수 가족이 머무는 별장에 미국인 연구조교 올리버가 방문한다. 그는 굉장히 훤칠하고 잘 생긴 핸썸 가이다. 교수의 17세 아들 엘리오는 이 젊은 미국인에게 친절하지만, 묘한 신경전도 벌인다. 여기까지는 낯설지만 호감 가는 이방인을 대하는 10대 소년의 질투와 동경, 방황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영화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첫 만남

올리버는 완벽한 신체에 지성과 매너까지 갖춘 훈남이다. 이제 막 어른으로 탈바꿈하려는 엘리오는 여리여리한 몸에 호기심이 충만한 소년이다.

여름이라 그런지 두 남자의 신체 노출이 많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실제 자신이 살고 있는 크레마 마을에서 촬영하며 이런 말을 했다.

 "풍경은 캐릭터의 일부이므로 사실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름답고 뜨거운 여름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배경은 소년과 청년 사이를 내밀한 밀도로 조절하고 달구며 풀어헤친다.


둘의 충돌로 생긴 성적 긴장과 흥분은 자연스럽게 화면에 퍼진다.

먼저 커밍아웃한 건 엘리오다. 그는 올리버에게 끌리는 것을 감추지 않는다. 처음에 올리버는 엘리오의 마음을 거절한다. 소년이 상처 받길 원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간신히 잠재운 엘리오의 열정을 이번엔 올리버가 깨운다. 둘은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 한철, 아름다운 이탈리아 곳곳에서 서로를 탐닉한다. 여름이 지나면 올리버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엘리오도 꿈같던 기억만 간직할 것이다. 그래서 둘은 이 사랑에 더 솔직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서로에게 끌리는 엘리오와 올리버

사랑이 절정에 다다를 때,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상대를 향해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올리버는 엘리오를 보며 올리버라 하고, 엘리오는 올리버를 향해 엘리오라 부른다. 살짝 해괴해 보이는 이 행위는 무슨 의미일까. 너는 곧 나야. 그만큼 널 사랑해. 뭐 이런 뜻일까. 왠지 그건 아닐 거 같다. 어쨌든 그들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상대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애정을 나눈다.

어느 책에서 보니, 이름을 뜻하는 한자가 '어둠 속에서 입 밖으로 내어 부르는 소리'라 한다. 두 사람은 다른 이의 눈을 피해 밤마다 어둠 속에서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른다.


둘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두 사람

올리버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소년은 이별의 아픔으로 힘들어한다. 이때 소년의 아버지가 참 어른답게 조언해준다. 둘의 사랑을 눈치챘지만 모른 척했고, 아낌없이 나눈 감정과 경험은 인생을 지탱하는 좋은 추억이 될 거라 지그시 말한다.

존중과 배려를 몸소 보여준 이 아버지야 말로 영화에 나오는 그 어떤 남자보다도 매력적이다. 아들을 정신병자나 집안의 수치로 여길 수도 있던 시절이었는데, 그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는 말까지 한다. 남자와 성행위를 한 10대 아들에게, 빛나는 육체를 가진 시간 동안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니 솔직히 느끼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가 몇이나 될까.

올리버 역시 시간이 흐른 뒤 엘리오와 통화하며 좋은 부모님을 가진 네가 부럽다고 말한다. 


빛나는 소년 엘리오

이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건 황홀한 두 젊음의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진실한 위로와 배려 때문이다. 젊은이의 열정과 충동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게 동성끼리라도. 하지만 그걸 바라보고 뒷감당해야 하는 어른의 역할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함부로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이 더 적확할 것이다.

이 영화가 첫사랑 영화의 고전이 된다면, 소년의 아버지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소년과 청년이 아예 동성애자로 계속 살았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두 사람은 너무 새파랗고 뜨거운 열정에 한동안 끌렸던 것뿐이다. 이 영화가 퀴어영화나 게이 영화가 아닌 첫사랑 영화의 고전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미세하지만 명백한 차이를 이해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Call me by your name> 이 영화를 보면.


아름다운 남자 올리버

이 영화에서 놓쳐서는 안 될 소년의 호기심과 무모함의 메타포인 복숭아 시퀀스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아버지가 소년을 위로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백미라 생각한다.


"우리는 빨리 나아지기 위해 우리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데 익숙해.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벌써 무너져 버리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과 시작할 때마다 그들에게 보여줄 내가 더 이상은 없어져 버리게 돼.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어떠한 것도 느낄 수 없어지면 안 되잖니. 곧 나아질 거야. 하지만 어떤 것들은 평생 너를 붙잡아 둘 때도 있어. 기억하렴. 우리의 마음과 몸은 오직 한 번만 주어진다는 것을 말이야.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네 마음은 닳아버린단다. 그리고 우리의 몸은 언젠가 아무도 쳐다봐주지도 않을 때가 올 거란다. 지금 당장은 슬픔이 넘치고 고통스러울 거야. 하지만 그것들을 무시하지 말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그 슬픔들을 그대로 느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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