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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May 16. 2018

영화는 죄가 없지만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8)

편안한 마음으로 며칠에 걸쳐 본 영화가 있다. 밥 먹다 보고, 우유 마시다 보고, 아침에 일어나서 잠 깰 동안 보고. 그래서 끝까지 본 영화가 <지금 만나러 갑니다>이다. 손예진과 소지섭을 만났지만, 영화 속 '수아'와 '우진'을 만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띄엄띄엄 봤다는 건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흔들리게 하지 않은 이 영화, 뭐라 해야 할까.

그림같은 가족

원작 일본 영화를 13년 전, 영화관에서 봤다. 그때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좋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경쾌한 멜로디의 주제가 'hana(꽃)'가 너무 좋아 반복해서 듣던 기억이 난다. 굳이 한국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영화를 일본 원작과 비교하고 싶진 않다. 두 영화는 별개라 생각하고, 그래야 공평하다고 마음먹고 봤으니까. 그래도 마음이 허하다. 손예진은 다케우치 유코 못지않게 청순하고 감수성이 충만했다. 소지섭 또한 연기로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허탈하고 배신감마저 드는 것일까.


나의 삐딱한 상상력을 비약시켜 보면, 이 영화는 관객 취향을 저격하기보다 배우 취향을 따른 영화로 보인다. 실제로 그렇진 않았겠지만, 손예진이란 배우가 자신이 가장 예쁘게 나오고 감성적이면서 어렵지 않게 연기할 캐릭터로 '수아'라는 배역을 점찍는다. 그리고 저요~ 하고 손 들어 딴 낸 후 능숙하게 연기한다. 소지섭도 손예진의 파트너로 모자람 없이 그럴듯하게 '우진'을 연기한다. 우진의 직업은 소지섭을 고려해 수영강사(병 때문에 수영은 못하지만)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 밖의 배경은 두 배우를 돋보이게 할 미장센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가장 크게 두 배우의 취향을 저격한 건, 사랑과 운명에 대한 수아와 우진의 태도다. 둘은 시종일관 중학생처럼 수줍고 청순하게 서로를 바라본다. 애까지 낳은 30대 남녀가 내내 그러고 있다. 좀 답답하다 못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죽은 아내가 돌아온 이후에 펼쳐지는 과거지사는 순수한 만남과 청순한 사랑의 교과서처럼 전형적이다.

이보더 더 풋풋할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수아와 우진


이 영화가 판타지고 동화이고 감수성이 충만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건 안다. 그렇다 해도 손도 간신히 잡고, 몇 번 째인지 모를 키스를 첫 키스처럼 하는 30대 부부를 보는 게 마냥 설레진 않는다. 그들은 설레었을지 모르겠지만 난 아니었다. 애 있는 부부가 악다구니하며 사는 리얼한 생활 연기를 보고 싶은 건 아니다. 이 영화의 감성이 그런 게 아니라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제발 그 감성이 지켜지길 바라니까. 그러나 저들의 청순한 감성이 신파로 보이지는 않았으면 하는 조바심으로 영화를 보고 싶지도 않았다. 다행히 손예진과 소지섭은 감수성과 신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무난한 연기를 보여준다.


장마철에 왔다 다시 떠나는 엄마, 한 남자와 두 번 사랑에 빠지는 여자,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사는 남자. 설정 자체가 이 정도로 판타지면, 더 내밀한 묘사로 감수성을 폭발시켜야 하는데 이 영화는 멋지고 예쁜 배우들을 멋지고 예쁘게 보여주다 말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뒷부분의 반전도, 밋밋하고 미진한 본편에 대한 보충으로 부록처럼 들어간 듯한 느낌이다. 반전 자체가 나쁘진 않다. 운명을 알고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위대함(?)과 모성애에 눈시울이 뜨거울 뻔했다. 수아의 그 간절함이 좀 더 내밀했다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설득력 있게 흔들었다면 말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 왜 원작과 비슷한 2000년대 중반일까, 의아했다. 이왕 리메이크하는 거 현재를 배경으로 해도 될 텐데 굳이 애매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저의가 궁금했다. 아예 더 전으로 했으면 시대적인 감성팔이라도 했을 텐데. 혹시 감독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현재 2018년의 감성으로 보기엔 이 청순한 영화가 좀 낯 간지럽다는 것을. 제 아무리 손예진이 예쁘고 소지섭이 매력적이어도, 그들이 그려내는 판타지가 동화책 속에만 머무는 이야기 이상일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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