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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Feb 01. 2019

너는 내 운명

영화 <메건 리비 Megan Leavey> 2017년

이 영화에 딱 적당한 카피다. 너는 내 운명!  


조금 촌스럽고 진부하지만, 메건 입장에서도 그렇고 렉스 입장으로 봐도 그렇다. 여자 군인과 군견이 함께 한 그리 길지 않은 생의 몇 년은 이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메건 리비 Megan Leavey」는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미국 애국주의가 차고 넘치는 이야기지만, 개와 인간이 함께하는 가슴 뭉클한 장면 때문에 아름다운 영화로 기억된다.  



한 여자의 운명을 바꾼 건, 남자도 부모도 친구도 아닌 개 한 마리다. 메건 리비(케이트 마라 Kate Mara)는 친한 친구의 죽음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스무 살 청춘이다. 의욕도 꿈도 없이 대충 사는 것 같은 그녀는 지긋지긋한 엄마 집을 벗어나기 위해 충동적으로 해병대에 지원한다. 갈 데가 있어서라기 보다 남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무작정 집을 나온 그녀에게 우연히 해병이 눈에 띈 것이다. 손가방 하나 없이 입던 옷 그대로 맨몸으로 나온 리비는 석 달 동안의 지옥 훈련을 거쳐 입대한다.


군인이 된 리비는 군견 우리를 청소하다 수색견 렉스(Rex)를 만난다. 운명의 시작이다!


렉스는 유난히 사납지만, 리비는 알 수 없는 끌림으로 군견병으로 보직을 변경하고 렉스를 훈련시킨다. 그리고 얼마 후, 그와 함께 이라크에 파병된다. 전장에서 둘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임무를 수행한다. 렉스는 IED(급조폭발물)를 찾는 수색견이다. 리비의 지휘로 다량의 폭발물을 찾아낸 렉스는 아군의 사상을 방지한 공을 세워 영웅이 된다. 병장 렉스와 리비는 승승장구하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폭탄에 심각한 부상을 당한다. 제대한 리비는 다친 렉스를 입양하려 하는데, 공격적인 군견이라는 이유로 렉스는 전역을 거부당하고 군 수의사에게 입양 부적합 판정을 받는다.


리비와 렉스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이성적으론 렉스의 입양이 부적합하다는 걸 알면서도 리비는 렉스를 잊지 못한다. 그가 없는 나날을 고통 속에서 보내며 이상 행동까지 한다. 마치 열렬히 사랑했던 애인과 헤어진 사람처럼, 아이를 잃은 부모처럼 그녀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어쩔 줄 모른다. 아무리 개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의지했다 해도 저 정도로 못 잊을까 싶다.


리비는 렉스를 전역시켜 입양하겠다는 의지를 끊임없이 보이지만, 만에 하나 렉스가 길에서 장난감 총을 든 아이를 공격하면 누가 책임질 수 있겠냐며 군은 리비의 제안을 거부한다. 군견으로 훈련받은 렉스는 공격적인 행동을 할 개연성이 다분하다. 일반 가정에 입양시키는 것은 위험하고 부적절하다. 하지만 심각한 부상을 당한 렉스가 수색견의 임무를 하지 못하게 되면 전역 후 안락사할 가능성이 크다. 한때 전장의 영웅이었지만 쓸모를 다한 후엔 한낱 짐승에 불과한 렉스의 남은 생을 리비는 기꺼이 책임지고 돌봐주고 싶어 한다. 사명감이나 동정보다 생사를 함께 한 전우에 대한 강한 연대와 사랑이 그녀를 어떤 위험도 감수하게 만든 것이다.


리비는 국회의원을 찾아가 군견 입양을 청원하고, 대국민 서명 운동까지 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한다. 결국 리비의 바람대로 렉스는 전역 후 리비와 함께 살다 생을 마감한다.


이라크 전장(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민간인 마을)을 누비는 미군과 군견의 활약은 감동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심란하게 한다.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은 명분도 모호하고 어느 편이 승리했다 할 수 없는 무모한 소모전이라 생각한다.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미국 군인들의 맹목적 애국심과 용맹에 저항하는 이라크 민간인들의 모습은 아군 적군을 떠나 처참하다. 제3국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 경찰을 자처하며 다른 나라를 마구 헤집는 미국은 세계 경찰이 아니라 사소한 건수를 잡아 성질나는 대로 무력을 행사하는 양아치나 다름없어 보인다. 무고한 군인들이 사제 폭탄에 희생당하는 모습은 안타깝지만, 누가 먼저 자처한 일일까 생각해보면 감정이 싸늘해진다. 이 와중에 임무를 수행하는 렉스와 리비의 모습은 모든 걸 떠나 인간과 동물, 생명과 생명이 교감하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다.



리비는 렉스를 만나 운명의 부침을 겪는다. 군인이 된 건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그 이후의 시간은 렉스가 이끄는 대로 산다. 그와 떨어져 있었던 시간마저 리비는 렉스와 헤어지지 못한다. 렉스 또한 리비가 전역한 후 다른 병사와 훈련하지만 그녀를 잊지 못한다. 그가 몇 달 후 찾아온 리비를 한눈에 알아보고 달려가는 건,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위험한 전장에서 자신의 목줄을 놓지 않았던 그녀를 잊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렉스의 전역식은 미국의 저력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보인다. 군인들은 수많은 아군의 목숨을 구한 병장 렉스를 전쟁 영웅으로 대접하며 존경을 표한다. 영웅이 인간이냐 아니냐는 관건이 되지 않는다. 전쟁영화인 듯 전쟁영화 아닌 전쟁영화 같은 이 영화는 인간의 가장 어리석은 면을 보여주는 전쟁이라는 행위 속에 드러나는 가장 고귀한 사랑을 보여준다. 전쟁은 무모하지만 전쟁 속에 피어나는 사랑은 숭고하다. 개에 대한 마음도 (당연히)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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