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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Feb 09. 2019

안녕, 주정뱅이

책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소설집, 창작과 비평사, 2016년

술이 약해졌다. 뜬금없지만 요새 주량이 부쩍 줄었다고 느낀다.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맥주를 마셨는데, 후배는 위가 안 좋다면서도 나보다 서너 배쯤 더 마셨다. 같이 장단을 맞추지 못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나의 주량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어 있다. 원래 그다지 잘 마시지 못했지만 안 먹다 보니 점점 줄어든다. 이게 바람직한 일인 듯싶으면서도 좀 섭섭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술을 마실 수 있지만, 이제 진짜 술 생각이 안 난다. 한때는 일부러 자제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살면서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잊고 삭제해 버리는 게 많다. 술도 그중 하나다. 술에 의지하고 싶진 않지만, 이렇게 매몰차게 내 생활에서 아웃시켜 버릴 줄 몰랐다.    


『안녕 주정뱅이』는 유독 술을 좋아하는 작가가 쓴 단편을 모아 엮은 책이다. 몇 년 전에 권여선 작가의 인터뷰를 신문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술을 굉장히 좋아해 거의 매일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마신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은 술에 절어 사는 사람이 많다. 술을 탐하는 이유도 가지각색인 그들은 술을 물처럼 꿀처럼 달게 마시고, 몸에 집요하게 들이붓는다. 그들 모두 작가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싶다.  




봄밤


이혼 후 강제로 아이를 뺏긴 영경은 술로 세월을 견디다 결국 알코올 중독이 된다. 느즈막에 만난 남자와 살다 그가 병들자 같은 요양원에 입소해 지낸다. 의사도 못 말리는 중독 때문에 정기적으로 외출해 알코올을 들이붓고 올 망정, 그녀는 병든 남편 곁을 꿋꿋하게 지킨다.

어느 날, 술에 대한 갈증으로 외출한 영경은 일주일이나 모텔에 처박혀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시다 남편 임종도 못 지킨다. 그녀가 요양원에 돌아왔을 땐 남편 장례까지 마친 후다. 아무것도 없는 그녀가 아무것도 없는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끝장을 볼 것처럼 사는 모습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사랑하거나 애착이 생기면 상대에게 무언가를 주거나 바란다. 설사 줄 게 없어도 있다고 허세를 부리며 있는 척한다. 나의 빈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염되거나 들키는 게 싫기 때문이다. 무언가 지킬 게 있는 사람들은 그렇다. 아무것도 없이 '없음' 그 자체만 갖고 있는 사람은 투명하게 텅 빈 속을 감추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영경이 약한 몸에 폭력적일 정도로 들이붓는 술은 사실 더하는 게 아니라 비워내는 행위처럼 보인다. 마지막 남은 생명의 기를 그런 식으로 가속도를 붙여 신속하게 없애려는 몸부림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왜 그러나 싶기도 하지만, 남편 역시 병든 몸으로 서서히 소멸해 간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소멸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가 없는 세상에 홀로 남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영경의 음주는 이혼과 시댁에 빼앗긴 아이 때문에 시작됐다. 이미 망가진 몸으로 영경을 만난 수환 역시 그녀의 음주를 말리지 않는다. 그도 가족과 헤어진 후 영경 못지않게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살았다. 영경을 말려서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기보단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그들에게는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몇 년의 삶을 연장하는 것보다 수명이 단축되더라도 매 순간의 고통을 잊고 사는 자유와 방임이 더 절실하고 뜨거운 정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렇게 남은 생을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견디며 서로를 응시하는 게 그들이 택한 사랑의 방식일 것이다.



이모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화자는 남편의 이모라는 사람과 함께 보낸 몇 번의 만남을 회고한다. 췌장암에 걸린 시이모는 죽음을 기다리며 삶을 견디고 있다. 결혼도 안 하고, 평생 사고 치는 남동생 뒷바라지를 했다. 중년이 되어선 혼자 남은 노모와 사는데, 또 한 번 가족이 자신을 희생시킬 기미를 보이자 돈을 모아 50이 넘어 혼자 살겠다고 선언하고 집을 나간다. 작은 집을 얻어 혼자 사는 중년의 이모는 무례한 이웃에게 증오를 품다 대학 시절일까지 들춰내가며 냉소와 증오에 사로잡힌 자신의 생을 반추한다. 그녀도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가족에게 선택된 삶은 추한 증오가 되었다. 자식을 위해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노모는 이모의 증오를 부추기는 존재다. 아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이타적이었고 다른 자식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노모는 이모가 견뎌야 하는 추악한 현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모가 현재를 견디는 방법은, 검소하지만 정갈하게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시간을 자기 룰대로 채워가는 것이다. 그녀는 그 누구도 침범하거나 어쭙잖게 간섭하지 못하게, 예의를 갖춘 냉소를 품고 하루하루를 견딘다.    


두 번째 방문 때 나는 커피와 케이크, 맥주와 담배 같은 것을 잔뜩 사 가지고 갔다. 그녀는 그것들에 손도 대지 않았다가 내가 돌아갈 때 도로 가져가게 했다.
"네가 좋은 생각으로 사 온 건 안다. 하지만 나는 내 가난에 익숙하고 그게 싫지 않다. 우리 서로 만나는 동안만은 공평하고 정직해지도록 하자. 나는 네가 글을 쓴다는 것도 좋지만 내 피붙이가 아니라는 게 더 좋다. 피붙이라면 완전히 공평하고 정직해지기는 어렵지. 혹시라도 네가 내 집에 뭘 몰래 두고 가거나 최악의 경우 돈 같은 걸 놓고 간다면 내가 얼마나 잔혹한 사람인지 알게 될 거다. 네가 먹을 간식을 사 오는 건 괜찮아. 대신 다 먹고 가긴 해야겠지."

 

이모는 피붙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결혼식에도 못 가본 조카며느리에게만 곁을 준다. 얼마 안 되는 유산도 사고뭉치 남동생에게 못 가게 노모와 조카와 언니에게 골고루 배분한다. 유언을 남기지 않으면 제1 상속자가 될 노모가 그 돈을 어떻게 쓸지 알기에 미리 정해 놓은 것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냉정한 복수다. 자신이 평생 피붙이에게 간직한 증오를 깔끔하게 표출하고 간 여자는 이제 더 이상 증오스러운 삶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



카메라


여자 친구에게 선물할 카메라를 사던 날 거리에서 우연히 찍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사진 때문에 죽은 남동생을 회상하는 술자리는 쓸쓸한 정도가 아니라 기가 막힌다. 카메라 주인이었어야 할 여자에게 동생의 유품을 전해주며 사연을 읊조리는 누나의 심정은 술 없이 맨 정신으로 듣기 힘들다. 맹숭맹숭한 정신으로 동생의 죽음에 대한 사연과 카메라를 상대에게 전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이 자리의 술은 두 여자를 잠시 이어놓았다가 떨어뜨린다. 술이나 한 잔 하자는 말은, 어느 인생의 어디에 끼어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신통한 말이다. 그래서 가끔 심상치 않게 들리기도 한다. 내가 할 때도 있고 자주 듣기도 하는, 평범하지만 간혹 긴장하게 만드는 말이다.



실내화 한 켤레


오랜만에 만난 여고 동창들은 질펀한 하룻밤의 술자리에서 서로의 비밀과 살아온 내역을 들켜 버린다. 십수 년 만에 만난 이들은 두 번 다시 서로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술은 그런 힘을 갖고 있다. 둘러앉아 같이 마실 땐 십수 년을 순식간에 가로지르지만, 깨면 이번 생엔 다시 못 볼 것 같은 몰골을 서로에게 비춘다. 이 여자들은 만취한 그날 밤을 수치로 기억할까? 굳이 다시 만나지 않는다면 수치로 남진 않을 것이다. 그냥 술에 홀린 날일뿐.




술이 곳곳에 나와도 전혀 술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이 책은 좋은 책일까 나쁜 책일까. 그것보다는 나에겐 약간 울적하지만 재밌는 책으로 기억될 듯싶다. 술자리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속내와 진실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이 책은 그런 기시감이 곳곳에 배어있다. 생의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술을 마신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삶의 이면을 진실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난 술을 안 마시는지도 모르겠다. 술김에 풀어놓을 사연조차 없을 땐 아예 안 마시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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