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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Feb 10. 2019

세상에 죄 없는 엄마는 없다!

영화 <BEAUTIFUL DAYS> 2018년

엄마는 엄마라는 이유로 죄가 많은 사람이다. 궤변처럼 들리지만 엄마들은 자식 앞에서 죄인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지 스스로에게 형벌을 내린다. 못해주면 못해줘서 미안해하고, 잘해주면 더 잘해주지 못해 안절부절못한다. 어리석은 자식들은 엄마의 그런 모습을 못마땅해하면서도 당당하게 못되게 군다. 이 자발적 죄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숫자만큼 다양하고 개별적이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슬픔을 품고 있다. 엄마라서 미안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죄를 대물림하며 자식을 낳는다. 이 가혹한 원죄를 생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래서 가끔 신을 대신한다는 원치 않는 누명을 쓰기도 한다.




사슴 같은 눈망울을 지닌 여자는 중국에 거주하는 탈북여성이다. 나이 많은 조선족 남자에게 팔려가 가정을 꾸린 그녀는 아이를 낳고 죄인이 된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순간, 여자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것보다 무거운 죄책감과 무한한 사랑을 가슴에 품게 된다. 몇 년 후, 여자는 조선족 성매매 브로커에게 잡혀 가족을 떠난다. 아이를 두고 나오는 엄마는 이제 진짜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 조선족과 가정을 꾸린 탈북 여성


14년 후, 열아홉 살이 된 젠첸(장동윤)은 병들어 죽어가는 아버지(오광록)의 부탁으로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다. 술집에서 일하며 한국 남자와 살고 있는 엄마(이나영)를 본 젠첸은 원망과 분노에 휩싸인다. 그녀를 몰래 미행하다 들켜 자신을 젠첸이라고 밝히지만, 엄마의 무심하고 건조한 태도에 실망만 더한다. 이런 여자가 내 엄마라니, 젠첸의 쓰라린 속내가 화면 가득 메아리처럼 울리는 것 같다. 엄마와 짧은 재회 후, 중국으로 돌아온 젠첸은 가방 속에 엄마가 몰래 넣어 둔 노트를 보고 그녀의 놀랍고 가슴 아픈 과거를 알게 된다.


아버지에게 한국에 살고 있는 엄마에 대해 듣는 젠첸


젠첸은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사랑한다. 엄마의 동거남을 테러한 것은 엄마에 대한 연민과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만행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술집에서 일하는 엄마를 수치스러워하고 분노한다. 아이는 다 커서도 엄마가 필요하다. 아니, 엄마에게 죗값을 물으며 형을 집행하고 싶어 한다. 곁을 안 주고 불퉁거릴 망정, 먼저 엄마를 찾아가 떼를 쓰고 울분을 터뜨리는 것은 자식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이자 만용이다.


14년 만에 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 젠첸


엄마가 자식을 위해 한 짓은 그 어떤 죄보다 무겁고 처절하다. 세상에 아이러니가 어디 한두 개일까마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자식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자의 세월은 잔인하고 아득하다. 젠첸이 과거 아버지가 했던 것 그대로 엄마의 남자에게 가한 테러는 피에 새겨진 무서운 진실을 절감하게 하며, 엄마의 시간을 14년 전으로 되돌린다. 그것을 수습하는 엄마의 역할은 14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여자는 그때도 지금도 기꺼이 죄를 감당한다. 마치 자식을 위해 죄인이 될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이.


어린 젠첸에게 강아지를 주는 엄마


이 영화에서 보이는 엄마와 아들이 함께 한 나날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단지 짧고 강렬하다. 엄마는 세파에 닳고 닳은 남한 여자가 다 되어 죽어가는 전 남편 앞에 나타나 무덤덤하게 마지막 안부를 묻는다. 목숨 걸고 지킨 아들에게도 끝내 살갑게 대하지 못한다. 그런 여자가 집 나간 후 14년 동안 무슨 짓을 해서 벌었든 아들을 위해 꼬박꼬박 돈을 보내왔다는 사실은 엄마라는 죄인의 죗값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게 한다.


탈북 여성으로 엄마가 감당한 모진 시간


젠첸의 엄마는 끝내 젠첸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는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탈북 여성으로 중국에 살다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거쳐온 험난한 일들은 그녀의 몸과 마음을 모질게 뒤흔들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았다. 자식을 제 손으로 키우진 못했지만, 아이를 위해 끝까지 죄인이 될 기회를 저버리지 않은 여자는 다정하진 않아도 누군가에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엄마다. 

아버지가 죽은 후 젠첸이 엄마의 집에서 엄마가 새로 만든 가족에 스며들어 밥을 먹는 마지막 장면은 살갑진 않지만 끊어질 수 없는 엄마와 아들의 인연을 보여준다.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는 나날은 젠첸에겐 '아름다운 날들'일 것이다. 덤덤한 엄마는 장성한 아들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주며 그렇게 자신의 죗값을 달게 치르는 게 아닐까. 이 모자의 아름다운 날들이 지금부터일 거라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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