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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Feb 15. 2019

소시민이 이기적인 유전자를 지닌 이유

영화 <목격자> 2018년

  나도 겁이 많은 소시민이다. '나는'이 아니라 '나도'인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우리는 이타적으로 살고 싶어 하지만 매우 이기적이고 편협하다. 이타적으로 사는 것보다 이기적인 행동양식이 생존에 조금 더 유리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약한 개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당히 몸을 사리고 이기적으로 사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나는 옆집(으로 추정되는) 실내 흡연의 낌새를 감지할 때마다 내가 아는 온갖 욕을 해대며 분노를 표출하지만 어디까지나 속으로 한다.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에서 '집안에서 담배 피우는 몰지각한 XX, 폐나 썩어버려라~'라고 큰 소리 칠 용기는 없다. 두렵기 때문이다. 나의 분노가 불러일으킬지도 모를 또 다른 분노에 맞서느니, 간접흡연을 꾸역꾸역 견디며 이사 갈 날을 막연하게 꿈꾼다. 그렇다고 마냥 참는 것은 아니다. 공기청정기를 사용하고, 아파트 관리실에 여러 번 제보도 했다. 들으라는 듯 베란다 창문을 소리 나게 열고 닫으며 담배 냄새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도 한다. 듣는 당사자가 뜨끔하되 욱하지 않을 정도로 수위를 조절해서.    


살인 사건을 목격한 가장 상훈


  영화 「목격자」는 밤에 아파트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으로 시작한다. 보험회사 직원 상훈(이성민)은 술에 취해 자정 넘어 귀가한다. 얼핏 여자 비명소릴 들었지만 무심히 집으로 들어온다. 불도 안 켠 채 내려다본 베란다 창가 아래에선, 한 남자가 망치로 여자를 때려죽이고 있다. 마침 방에서 나온 아내 수진(진경)이 거실 불을 켜는 바람에 살인자 태호(곽시양)는 상훈의 집 베란다를 응시한다. 불 켜진 집 층수를 세는 살인자. 상훈은 서둘러 불을 끄지만 살인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을 잊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경찰 재엽(김상호)은 사건을 수사하지만 목격자가 없어 난감해한다. 아무리 새벽 두 시였다 해도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보고 들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주민들은 흉흉한 사건에 불안해하면서도 수사엔 극도로 거부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부녀회에선 아파트 값 떨어진다고 경찰 수사에 협조하지 말라는 공문까지 돌린다. 이건 이기적인 정도가 아니라 극단적인 몰지각한 행태다.


만일 내가 목격자라면?


  살인사건을 목격했고 범인이 내 얼굴을 알고 있다면? 별다른 대안이 없는 소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다. 무조건 빨리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찰을 100% 신뢰하지 않는다 해도, 혼자 전전긍긍한다고 내 신변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공권력을 믿어서가 아니라 혼자 알고 있는 게 제일 어리석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되었다면, 되도록 많은 사람과 공유해 위험을 분산시켜야 한다. 상식적으로 목격자가 한 명이라면 범인에게 처단될 가능성이 크지만, 목격자가 100명이라면 서로 연대하고 공조해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범인이 사이코패스라 100명을 다 처단하겠다고 덤벼도 확률적으로 살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살인자 태호


  상훈은 아내와 딸을 지키기 위해 살인 사건 목격자로 나서길 거부한다. 또 다른 목격자인 이웃 여자가 같이 경찰에 가서 얘기하자고 애원하지만 묵살한다. 그러다 그녀가 살인자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걸 본다. 극한의 공포에 떠는 상훈은 대낮에 아파트 단지를 누비고 다니는 살인자를 보면서도, 바로 옆에 있는 경찰에게 말하지 못한다. 그의 절박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자꾸 자충수를 두는 모습에 짜증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상훈의 가족


  상훈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만, 그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 자기 무덤을 파는 어리석음이다. 이미 자신의 얼굴과 가족 신상까지 다 아는 범인이, 단지 그가 목격자로 나서지 않는다고 온전히 둘 것 같은가. 누가 봐도 그는 머지않아 희생될 게 뻔하다. 그가 아무리 살인자를 보지 못했다 잡아떼도 죽는 건 시간문제다. 설사 범인이 이번엔 용케 그를 살려둔다 해도, 언제 어떻게 자신과 가족에게 칼날이 날아들지 모를 일이다. 평생 그놈이 언제 나타날까 불안해하며 살 수 있을까. 상훈은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참한 비밀을 품고 대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걸까.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재엽


상훈이 했어야 하는 일


  상훈은 살인을 목격한 그날 밤, 그 즉시 경찰에 신고했어야 한다. 범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 아파트 현관문을 잠그고 살인자의 침범에 대비하며 경찰을 기다렸어야 한다. 그랬다면 여자 희생자는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시 그날 범인이 달아났다 해도, 경찰에게 가족의 신변 안전을 요청하고 목격자 진술을 했어야 한다. 경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범인을 검거했다면, 그의 안전은 물론 또 다른 희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경찰이 범인을 빨리 검거하지 못한다 해도, 언제 나타날지 모를 범인을 기다리며 혼자 불안에 떠느니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가족과 집안에 칩거하면서라도 범인이 잡힐 때까지 기다렸어야 한다. 안일한 방법일지 모르지만, 대낮에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목격자를 죽이는 놈을 감당하겠다고 혼자 다니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현실적인 방법이다.


사건 현장에서 자신의 집을 올려다보는 상훈


  일상을 비집고 들어온 뜻밖의 사고로 평범한 삶을 빼앗긴 개인의 원초적 공포는 꽤 실감 난다. 아파트 주민들의 집단 이기주의 또한 현실적이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소시민을 대변하는 주인공인 목격자가 왜 상식 밖의 행동으로 진짜 평범한 다른 소시민을 분노하게 하는지 의문이 든다. 상훈의 행동은 궁지에 몰려 두려움에 떠는 개인이 하기엔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의외로 과감(?)하다. 경찰에게 말하고 보호받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경찰보다 범인을 더 믿는 듯보인다. 목격자로 나서지 않으면 범인이 살려줄 거라는 확신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묻고 싶다. 경찰이 목격자의 안전을 100% 보장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목격자가 되길 거부한다 해서 100%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운이 나빠 범인에게 노출된 이상, 혼자 사이코패스를 상대하는 것보다 다수의 경찰과 이웃의 도움을 받는 게 확률적으로 안전하다.


살인자와 맞서는 상훈의 아내 수진


  그가 가족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한 이기적인 행동은 결국 가족을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린다. 그 위험을 극복하게 한 건 그보다는 조금 덜 이기적인 아내와 주민들, 즉 불특정 다수의 목격자들이다. 아무리 사람을 죽이겠다고 날뛰는 사이코패스라도, 보는 눈이 많은 대낮 아파트 단지에선 칼을 휘두를 수 없다.


  이 영화의 주인공 상훈은 결코 소시민이 아니다. 이성민 배우의 연기는 뛰어났지만, 그는 일반적인 소시민이라 볼 수 없다. 진짜 소시민이라면 상훈처럼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무모하며 그렇게 어리석을 순 없다. 겁이 많고 소심할지언정, 소시민은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협조하고 타협할 줄 아는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소시민은 '살려 달라는' 외침을 외면해 공분을 사기도 하지만, 살인자를 혼자 감당하겠다는 만용으로 제 무덤을 파진 않는다. 그들이 지닌 '이기적인 유전자'는 때론 이타적으로 변모해 생존을 위해 더 확실하게 작동한다. 인간이 마냥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은 건, 살아남기 위해 유전자에 새겨진 거역할 수 없는 명령 때문이다. 주인공의 무모함은 그래서 더 안타깝고 살인자를 볼 때와는 다른 종류의 분노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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