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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Feb 21. 2019

현실 자매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년

  소소한 일상을 소소하지 않게 보여주는 게 영화의 목적이고 힘이라 생각한다. 삶을 소중하게 대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그려낸 네 자매 이야기는 선하고 아름답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평범한 일상이 생의 이벤트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세심한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다. 화면 속에서 울고 웃고 얘기하며 움직이는 자매들은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처럼 생생하지만, 한편으론 저런 자매들은 어디에도 없다고 자각하게 한다. 나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자매가 있는 사람들은 아마 공감할 것이다.   


세 자매 치카, 사치, 요시노


  일본 동쪽 가마쿠라의 바닷가 마을엔 세 자매가 산다. 사치(아야세 하루카)는 두 동생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치카(카호)와 함께 할머니가 남긴 전통 가옥을 이어받았다. 15년 전 아버지는 바람나서 집을 나갔고, 엄마 역시 재혼해 따로 산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에 간 세 자매는 홀로 남겨진 이복 여동생 스즈를 보자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스즈, 우리랑 같이 살래? 넷이서..."  


  촉촉한 큰 눈망울을 지닌 스즈는 큰 언니 사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게 네 자매는 가족이 된다.


  자매들의 일상은 평범하지만 다채롭다. 맏이 사치는 간호사로 유부남 의사와 연애 중이다. 불륜을 저지르고 집을 나간 아버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만큼 성숙하다.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다. 재혼한 엄마와는 편한 관계가 아니지만, 어릴 때 요리 솜씨 없는 엄마가 자주 해주던 해물 카레를 즐겨한다. 이복동생 스즈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감싸 안는다. 술을 좋아하는 은행원 요시노는 쉽게 연애하는 스타일이다. 할 말은 다 하며 가벼워 보이지만 나름 속이 깊다. 엉뚱한 치카는 부모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어릴 땐 할머니, 커서는 언니들에게 의지하며 사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막내 스즈에게 아빠 얘길 들으며 기억에 없는 아빠에 대한 추억을 새로 짓는다. 중학생 스즈는 늘 노심초사다. 불륜으로 태어난 자신의 존재가 언니들에게 상처가 될까 불안해한다. 자신의 생모와 아버지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언니들이 고아처럼 살진 않았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이복동생 스즈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자매들


  자매들을 한집에 살게 한 건 지금은 죽고 없는 아버지다.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을 크고 작게 흔든 것이다. 사실 복잡한 가정사에 비해 이들의 삶은 큰 굴곡이 없어 보인다. 동네 단골 식당에 전갱이 튀김을 먹으러 가고, 매실을 수확해 술을 담그며 매실에 이름을 새기는 일은 소소하지만 행복해 보인다. 엄마가 다른 막내 스즈와의 갈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서로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어울린다. 오랜 시간 부재중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소회는 각자 다르지만, 자매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아버지란 존재와 그의 불륜, 그리고 그 파장을 적절히 나누어 가진다. 자칫 막장으로 흐를 수 있는 부모 자식 간의 갈등, 이복동생과의 불화는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평온한 것도 아니다.


불꽃놀이하는 네 자매
요시노와 스즈


  이 영화는 소소한데 결코 평범하지 않아서 매력적이다. 잔잔해 보여도 파도가 끊임없이 치는 바다처럼, 네 자매의 삶은 크고 작은 파도에 부딪히며 한시도 고요하지 않다.


  사치의 불륜은 인생의 큰 사건이지만 일상이기도 하다. 유부남과의 연애는 이벤트가 아니라 삶이고, 같이 떠나자는 제안을 거절한 것도 일상의 한 순간이 된다. 사이가 안 좋은 엄마는 그녀를 어둡게 하지만, 매실주를 나누며 주고받는 이해와 용서는 담백하다. 사치 같은 언니라면 처음 본 배다른 여동생에게 같이 살자고 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을 듯싶다. 물론 쉬운 일도 아니겠지만.


유부남과 연애하는 사치


  과일을 사들고 들어오는 언니에게서 자매들은 연애의 쓴맛을 감지한다.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가 자주 만들었다는 잔멸치 토스트를 기어이 먹어보는 것도 배다른 동생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돌아가신 아빠가 자주 갔던 산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은 자매들이 사는 곳과 비슷하다. 이들이 함께 밥을 먹고, 청소하고, 매실을 따고, 술을 마시고, 주정을 받아주는 건 자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바닷가를 같이 거닐 수 있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바닷가를 거니는 네 자매


  자매들은 각자 개성대로 살면서도 함께 하는 삶을 선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엄마가 누구냐, 아빠가 무슨 짓을 했는가 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를 생각하고, 연민과 공감을 최우선에 뒀기에 가능한 일이다. 매우 현실적이지만, 매우 이상적인 판타지 같기도 한 바닷마을 네 자매의 일상은 선량하지만 조금은 쓸쓸하다.


  나와 나의 현실적인 자매님들이 이런 집에 살면서 매실을 딴다면 우린 매실주를 담글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현실 자매님들은 영화 속 자매들보다 더 끈끈하고 더 밉살스럽지만 더 막강하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영화 속 자매들이 매우 리얼하지만 영화 속 인물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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