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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Mar 10. 2019

샐리는 늙지도 않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못 봐 한이 된 영화가 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는 지금으로선 이해가 안 되지만 1989년 개봉 당시엔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였다.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마주 보고 서있는 해리와 샐리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는 굉장히 건전(?)하고 로맨틱해 보였는데, 의외로 야한 장면이 있나 싶었다. (개인적으로 청소년이 봐서는 안 될 장면은 없다고 생각한다) 스무 살이 되어 내가 이 영화를 합법적으로 볼 수 있을 때까지 몇 년 동안, 이 유명한 영화는 여기저기 회자되었고 온갖 영화잡지와 프로그램에 소개되고 패러디되어 웬만한 명장면은 안 봐도 본 것처럼 익숙해지고 말았다. 잊을 만하면 TV에서 방영해 처음부터 끝까지 작정하고 보진 못했어도 띄엄띄엄 되는 대로 본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결국 나에게 해리와 샐리는 정확히 어떤 경로로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는지 모호하지만, 20세기 말의 대표적인 로맨틱 커플로 각인되었다.


샐리와 해리


  최근에 처음으로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봤다. 맥락 없이 알고 있었던 몇몇 명장면과 대사를 한 흐름에 본 것이다.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와 감성이 톡톡 튀고 현실적이어서 30년 전 영화란 느낌은 별로 없었다. 친숙하지만 그러면서도 낯설고 신선했다. 등장인물들이 스마트폰 대신 커다란 전화기를 붙들고 잠들기 전에 통화하는 장면 정도만 빼고, 다소 촌스러운 맥 라이언의 화장과 헤어스타일도 그녀의 젊음 덕에 빛났다.


시대가 느껴지는 헤어 스타일과 의상 & 소품


  해리(빌리 크리스털 Billy Crystal)와 샐리(맥 라이언 Meg Ryan)는 무려 12년 동안 대도시 뉴욕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티격태격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와 달리 까탈스럽고 자기주장이 강한 도시 여자 샐리 올브라이트. 자상하기보다는 유니크하고 취향이 확실한 도시 남자 해리 번즈. 둘은 첫 만남부터 각자 20세기 말 미국 청춘남녀의 대표라도 되는 듯 성과 사랑, 연애와 남녀 사이의 우정에 대해 설전을 벌인다. 지금 보면 이들의 설전과 주장이 조금 진부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젊고 빛나는 대도시의 교양 있는 청춘남녀는 이전까지 있었던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연인들에서 빗겨 난 모습이다. 물론 이들이 친구에서 연인이 될 거란 강한 예감과 확신이 들긴 하지만.


12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해리와 샐리


  샐리는 샌드위치 주문하는 데 1시간이 걸릴 정도로 까다로운 여자다. 그런데 외모와 이미지는 (여자인 내가 봐도 홀딱 빠질 정도로) 사랑스럽고 귀엽다. 커다란 눈망울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입에선 어떤 독설이 나와도 밉지 않다. 이 영화를 세기의 로맨틱 코미디의 반열에 오르게 한 명장면, 식당에서 가짜 오르가슴을 시전 하는 장면도 맥 라이언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덕분에 코믹하고 귀엽게 승화(?)됐다.


뉴욕과 잘 어울리는 커플


  맥 라이언에 비해 빌리 크리스털이 좀 덜 멋있어서 (개인적으로) 아쉽기도 했다. 그가 재치 넘치는 유명한 코미디언이라는 건 알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회 보는 걸 먼저 본 나로서는 맥 라이언에 비해 늙고 그다지 잘 생기지 않은 그가 상대적으로 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너무 완벽한 남녀가 스크린을 장악하면 내용과 상관없이 비현실적인 판타지가 되어버린다. 조각미남과 세기의 미녀가 눈이 맞아 사랑에 빠지면 극에 몰입하긴 쉽지만, 나와 전혀 상관없는 남의 얘기를 보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샐리와 해리는 세월도 이기는 공감과 리얼리티로 소소한 재미를 준다. 둘이 티격태격하는 것만 보고 있어도 피식 웃음이 나오니까.


공식처럼 곁가지로 나오는 (주인공의) 친구 커플


  사실 난 까도남 까도녀의 설전과 현실 대사보다는 맥 라이언의 귀여운 표정과 사랑스러운 몸짓에 끌려 이 영화를 끝까지 봤다. 샐리가 퍼붓는 말과 토라지는 포인트는 여자로서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그게 아주 절묘하거나 '맞아, 나도 저래~' 할 정도는 아니다. 30년 전의 감성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이 영화는 앞으로 30년 후에 봐도 내가 입덕 하게 되는 포인트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까탈스럽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 '샐리'와 그 캐릭터의 매력을 뛰어넘는 맥 라이언이라는 배우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녀는 고전적인 미녀 배우의 아우라를 갖고 있진 않지만, 발랄하면서도 약간 귀엽게 느껴지는 백치미가 있다. 수다쟁이 샐리는 똑똑하지만 허점이 많다. 감정에 솔직하고 남자 앞에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울며 친구에게 전화해 하소연하는 등 애처럼 굴기도 한다.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사랑스럽고 인간적인 여주인공은 이렇게 20세기를 걸쳐 21세기를 사는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20세기에 건져 올린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 '샐리'


  1989년도 이후에 나온 드라마와 영화 여주인공들에게서 샐리의 모습을 한 조각씩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다. 물론 그 이전에도 사랑스럽고 현실적인 여주인공들은 많았다. 그래도 샐리처럼 로맨스와 코미디를 완벽하게 결합시켜 강렬하고 끈질기게 생존하는 캐릭터는 흔치 않다. 샐리는 아마 영원히 늙지 않을 것이다. 맥 라이언은 늙어도 샐리는 늙을 수가 없다. 나이 먹기엔 그녀는 (아직까지) 너무 생생하고 귀여운 매력덩어리다. 샐리를 알든 모르든, 어딘가에서 샌드위치를 까다롭게 주문하거나 남자 사람 친구와 수다 떠는 걸 즐기는 까탈스럽지만 우스꽝스러운 여자들이 있는 한, 샐리는 영원히 할머니가 되지 못할 것이다.       


완벽한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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