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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Mar 28. 2019

바이스, 악의 연대기

영화 <VICE> 2018년

*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에서 본 영화입니다.


  미국인들에게 이라크 전쟁은 어떤 의미일까. 물론 각자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다지 길지 않은 세계 최강국의 역사에서 지우고 싶지만 너무나 선명한 낙인일 수도 있고, 자랑스러운 승전보를 알린 거국적인 대 테러 전쟁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어쨌든 전쟁은 적군 아군 가리지 않고 많은 사상자를 내며 역사적 상처로 남는다. 이  '아픈 손가락' 같은 역사는 누가 기억하느냐에 따라, 또 누구를 주인공으로 서술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양상으로 세상에 실체를 드러낸다.




  최근 미국의 국뽕 취향은 이라크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이 담당했다. 그들의 엄숙하기까지 한 애국주의와 지겹고 집요한 수구 성향은 꼴통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많다. 반면, 전쟁을 일으킨 우파 보수주의를 신랄하게 까대며 일말의 양심선언을 하는 영화들도 있다. 「바이스 VICE」는 재임 시절,  '자신의 권력을 접이식 나이프처럼 휘둘렀던' 미국 부통령 딕 체니(Dick Cheney)를 신랄하고 유쾌하게 까는 영화(로 보인)다. 남의 나라 부통령의 막 돼먹은 일대기가 이제 와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그가 증거와 명분을 조작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대놓고 삿대질하는 화면 앞에선 좀처럼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유례없는 권력을 휘두른 부통령 '딕 체니'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이 술에 절어 사는 딕 체니(크리스천 베일 Christian Bale)는 아내 린(에이미 아담스 Amy Adams)의 빡센(?) 내조 덕에 정계에 진출한다.

  그는 도널드 럼즈펠드(스티브 카렐 Steve Carell) 의원의 보좌관이 되어 상관에 대한 침묵과 충성을 몸에 익히는데, 백악관 입성은 체니에게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 닉슨 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키신저가 캄보디아에 폭탄을 투하하는 계획을 은밀히 의논하는 것을 보며, 럼즈펠드에게 미국의 신념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만 해도 딕 체니는 그냥저냥 보통 정치인다웠다. 그때 마주한 럼즈펠드의 비웃음이 어떤 작용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후 체니의 행보는 정치인 하면 따라붙는, '권력과 부에 편승해 매우 계산적이고 속물적이지만 점잖은 척하는 이중인격자'의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는 미국 정계에 파란을 일으킨 워터게이트를 운 좋게 피해 간 공화당 당원으로,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를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백악관 수석이 된 체니는 심장마비로 쓰러지지만 불사조처럼 이겨낸다. (만일 그때 그가 못 일어났다면 세계사가 어찌 바뀌었을지...)
  동성애자 딸 때문에 대선도 포기하고 석유기업 핼리버튼의 CEO로 재직하는데, 대선에 출마한 조지 W. 부시(샘 록웰 Sam Rockwell)에게 러닝메이트 제안을 받는다. '부통령은 대통령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자리'라는 아내의 뼈 때리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시의 제안을 수락한다. 멍청한 부시를 야금야금 설득해 부통령의 권한을 유례없이 대폭 확장시킨 것이다.

  덩치는 산 만한데 속은 시커먼 능구렁이 같은 이 노회한 정치인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의 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황당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역사의 변곡점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새로 지정한다.
  911 테러가 발생하자, 적이 정확히 누군지도 모른 채 자르카위라는 무슬림을 지목,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의 근거지가 있다는 이라크를 테러 본거지로 정하고 막무가내로 전쟁을 일으킨다. 하지만 미군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 무기를 발견하지 못한다.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미국 내에선 딕 체니의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국민의 반 이상이 반대하는 전쟁을 확고한 명분도 없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 것은 허수아비 대통령 부시와 허약한 참모들도 한 몫했지만, 테러 증거를 조작하고, 전쟁 수행에 대한 행정 절차까지 무시하며 밀어붙인 딕 체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원래 미국의 부통령은 어떤 영향력도 존재감도 없는 직책이라고 한다. 혹시 모를 대통령 부재에 대비한 행정적 기능적 자리인데, 딕 체니는 유례없는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세계 역사를 바꿔놓는 만용을 부린다. 이 영화는 그의 정치 인생을 추적하며, 그가 한 수많은 선택들이 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체니는 부통령에 당선된 후 자신에게 유리한 인물들로 참모진을 구성, 행정부 전체가 공화당 서버를 이용하게 하고, 대통령의 이메일을 감시해 정책을 선수 치거나 삭제해 아무도 모르게 일을 처리한다. 부시와 체니 재임 시절 백악관 서버에서 사라진 이메일 수는 2천2백만 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 속의 결정들이 현대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부시의 러닝메이트 제안 수락 전 '핼리버튼'이라는 석유 기업의 CEO로 재임했는데, 부통령이 된 후 그 기업과 무관하다고 했지만 회사로부터 한화 113억 원에 달하는 스톡옵션과 거액의 연봉까지 받았다. 핼리버튼과의 긴밀한 관계는 체니가 국방, 에너지 자원 관리, 외교 정책까지 주무르며 권력의 실세로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게 분명하다. 직관적으로 단순하게 생각해도, 그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전쟁 때문에 죽은 이라크 양민들은 몇만을 헤아리고, 파병된 미군 사상자도 어마어마하다. 그 덕에 핼리버튼을 비롯한 방산업체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체니와 그의 아내. 그리고 도널드 럼즈펠드


  이 영화는 우리가 잘 모르는, 하지만 2001년 그날 이후(어쩌면 그전부터) 우리 일상에 파고든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미국 거물 정치인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싶을 정도로, 까발려진 딕 체니의 민낯은 추하고 뻔뻔하다. 그를 비꼬고 비난하는 수위가 높아질수록, 같은 심정을 가진 대중들은 공감과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될 게 이라크 전쟁이, 이유도 모르고 죽어간 수많은 목숨들과, 석유 가격이 폭등하고 물가가 올라 살기 힘들어진 우리의 일상이, 단지 그 거대한 양반 한 명의 소행이었을까 하는 점이다.


공화당 파티에 참석한 딕 체니 부부


  영화는 사실을 기반으로 했지만 어느 정도 가공된 이야기다. 아무리 멍청한 꼭두각시라 해도 전쟁을 명령하고 수행한 행정부 수반은 부시 대통령이다. 부시와 체니의 무지와 만용을 알고도 눈 감은 정치인들, 부화뇌동해 연합군을 파견한 다른 나라 수반들, 거기에 편승한 수구 언론들 모두 전쟁의 책임에 자유로울 수 없다. 테러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마음을 이용해 알카에다니, 탈레반이니, 무슬림 테러리스트니 하며 공포를 조장하고, 인권을 말살하며 고문을 자행한 건, 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미국의 아찔한 민낯이다. 이 영화의 폭로와 비난은 합당하지만,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몰아준 포화가 (명분 없는 전쟁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다른 이들에게 뜻밖의 면죄부를 주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을 우방국이라 여기며 그들의 정책에 (어쩔 수 없을지라도) 동조한 우리도 전쟁의 책임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다.


부시의 러닝메이트 수락 연설을 하는 체니


  미국은 종종 이런 영화를 만들어 과오를 반성하고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자국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인다. 국민에게 대 이라크 전쟁을 선포하는 방송을 할 때 집무실 책상 밑에서 다리를 떠는 부시 대통령과 폭탄이 떨어지는 이라크 가정집 식탁 밑에서 가족들과 웅크려 앉은 채 다리를 떠는 남자를 연이어 보여주는 장면은 이 영화를 신랄하지만 단순하게 만들기도 한다. 폭탄이 투하되는 이라크 시가지와 체니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을 교차로 보면서 공분하지 않는 사람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를 향한 공분이 단지 그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인공 옆에 있던 (실제 인물과 싱크로율이 매우 높은) 모든 인물들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널드 럼즈펠드


  매우 심각하고 통탄할 진실이 유쾌한 영상과 감각적인 편집으로 드러나는 건 좋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경쾌한 화면은 추악한 거물의 실체에 거리낌 없이 다가가게 하지만, 무거운 진실은 더 암울하게 느껴진다. 미국에서는 선거가 거대한 리얼리티 쇼이고, 정치인이 영화배우 못지않은 셀럽이지만, 딕 체니는 그런 엔터테인먼트에 어울리는 팝스타가 되기엔 매우 부도덕한 인물이다. 자꾸 멈추는 망가진 심장은 그의 망가진 양심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악취 나는 유명인사다. 마지막에 보이는 언론과 인터뷰하는 장면은 그가 자신의 행동에 일말의 자책도 없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당당함으로 끝을 맺는다. 정말 무서운 것은 그가 양심의 가책을 숨긴 게 아니라, 정말 잘못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그 확고부동함이다. 죽을 때까지, 새로 이식받은 심장이 멈출 때까지 그의 양심이 객관적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나마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냉소적 자학과 비아냥은 그럭저럭 볼만한데, 우리나라라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한때 가졌던 명예조차 지키지 못하는 부도덕한 인사들은 이 나라에도 차고 넘친다. 아무리 솜씨 좋은 감독이라도 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는 되도록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가공의 이야기라 해도 꼴도 보기 싫다. 비판과 공분은 뉴스만 봐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 이 영화의 감독 아담 맥케이(Adam McKay)가 딕 체니를 제대로 까는 것처럼 패기와 용기를 보여줄 수 없다면 (그들은) 아예 건들지 않았으면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딕 체니는 여러모로 우리와 우리의 처지를 자학하고 비꼬게 만든다. 역시 거물은 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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