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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l 11. 2019

죽고 싶어 하는 남자를 연기하는 살고 싶은 남자

책 <전락 THE HUMBLING>  by Philip Roth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해요.
전부 종잡을 수 없는 일이죠.
종잡을 수 없음이 지닌 무한한 힘.
반전 가능성. 그래요,
예측 불가한 반전과 그것이 지닌 위력이죠.


  무대에서 한 마디도 할 수 없게 된 노장 배우에게 정신과 의사는 무심하게 말한다. 연극계의 살아있는 전설, 배우 사이먼 액슬러는 어느 날 갑자기, 슬럼프라 하기에는 너무나 집요한 알 수 없는 심연에 빠진다. 65세의 거장은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무대에 올랐던 베테랑이자 예술 그 자체였다. 그는 자신의 생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제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수십 년을 함께 한 아내와는 이미 헤어진 후다.


  의사와 상담하고 치료에 최선을 다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는 불현듯 노년을 덮친 자신의 무능과 불구를 납득하지 못한 채 26일 동안 병원에 머문다. 그곳에서 시빌 밴 뷰런이라는 젊고 가냘픈 여인을 만난다. 남편이 어린 딸을 성폭행하는 걸 목격한 그녀는 액슬러에게 남편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그는 여인의 부탁을 거절한다.


  액슬러의 고질적인 슬럼프 상태는 죽음으로 이어질 듯 위태롭게 지속된다. 자살충동에 시달리지만 그는 선뜻 죽지 않고 이 기이한 고착 상태를 방관한다. 마치 '죽고 싶어 하는 남자를 연기하는 살고 싶은 남자'처럼.


  페긴 스테이플퍼드는 사이먼 액슬러의 오랜 친구인 에이서와 캐럴의 딸이다. 이 마흔 살 먹은 여자가 어느 날 홀연히 액슬러의 집에 나타나고, 그는 그녀와 연인 사이가 된다. 즉흥적이고 철이 없는 레즈비언 페긴은 17년 간 고수해온 성 정체성을 뒤집고 이성애자가 된다. 액슬러는 페긴과 동거하며 삶의 의욕을 되찾지만, 몹시 거슬리고 신경을 자극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페긴은 깔끔하게 끝내지 못한 전 (여자) 애인에게 스토킹 당한다. 또한 부모에게서 액슬러와의 관계에 대해 걱정스러운 조언을 지속적으로 들으며 갈팡질팡한다. 게다 그녀의 별난 성적 취향과 자극을 찾아 헤매는 기질은 액슬러를 불안하게 한다.


  재능이 죽긴 했지만 이미 성공을 거둔 늙은 남자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젊은 여자와 아이를 낳고 살며 다시 무대에 오르는 삶을 상상한다. 그녀를 위해 돈을 쓰고, 무심한 척하며 눈치를 보고, 역겨움을 숨기며 비위를 맞추지만 결국 페긴은 또 다른 모험을 찾아 떠난다.


  남자가 가는 길에는 수많은 덫이 깔려 있었는데, 페긴이 그 마지막 덫이었다. 그는 허겁지겁 그 덫에 발을 들였고,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포로처럼 미끼를 물었다. 파국 외에 다른 길은 없다는 사실을 그는 마지막에야 알았다. 있을 법하지 않았다고? 아니, 예측 가능했다. 한참 후에 버림받았다고? 분명 그녀에겐 그가 느꼈던 것만큼 긴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를 매혹했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고, 때가 되자 그것은 그녀가 “이제 끝내요”라고 말하게 만들었으며, 그는 살고자 하는 욕심도 비운 채 혼자 그 막대 여섯 개만 지니고 그의 굴로 들어갈 운명에 처했다.
  페긴은 차를 몰고 떠났다. 붕괴 과정은 채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 자초한 몰락으로 인한, 이제 결코 회복할 길 없다는 사실로 인한 붕괴.


  액슬러는 다락방에 올라가 산탄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가 생의 마지막 연기를 충실하게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시빌 밴 뷰런이다. 그녀가 별거 중인 남편을 찾아가 총으로 쏴버렸다는 기사는 사이먼에게 다락방으로 올라갈 에너지로 작용한다.


  사이먼 액슬러의 무대공포증과 슬럼프, 시빌과의 만남, 페긴과 함께한 시간, 그리고 이별과 자살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된 생의 필연 같지만 사실 인과관계가 없다. 시빌의 살인과 액슬러의 자살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그녀가 용기를 내어 죽어 마땅한 남편을 응징한 게 액슬러가 생을 끝내야 할 이유가 되는가. 페긴의 성적 취향이 그의 노력으로 바뀔 성질의 것인가. 불안정한 노년의 한때를 무대 위 연극처럼 리얼하게 살다 간 배우가 남긴 자취는 그저 종잡을 수 없는 우연과 이유 없는 사건들 뿐이다.


  액슬러의 슬럼프와 죽음 사이에는 충격과 격정, 슬픔과 환희가 골고루 스며있다. 누구의 인생을 골라잡아 단면을 절단해 봐도 비슷하지 않을까. 극단적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연극배우가 아니더라도, 한 인간이 체감하는 자신의 주관적 생은 무척 다채롭고 격정적일 것이다. 생을 기습하는 우연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남다르게 예민하고 섬세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그도 예측할 수 없는 무한함에 굴복한 것뿐이다.


  작가가 76세에 발표했다는 이 소설은 노인이 사유하고 통찰한 '노년'의 실체를 조금은 가혹하게 보여준다. 따분한 생의 말년일 것 같지만, 노년은 당사자에겐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격정적이고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지의 나날이다. 노년이야 말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가도 삶에 대한 애착과 오기로 몸부림치게 만드는 시간이 아닐까. 사이먼 액슬러가 보여준 말년의 나날은 죽고 싶어 하면서도, 죽을 수 없다는 조바심과 강박에 감정의 극단을 오가는 예민한 시간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격정적이고 싶어 한 배우의 집착은 자신의 생에 들이닥치는 우연을 스스로 끊으며 막을 내린다. 그가 연극배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생을 스스로 태우고자 한 노인이라서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영화 속 페긴과 사이먼 액슬러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필립 로스(Philip Roth)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노년의 주인공은 작가를 연상시킨다. 이 소설은 알 파치노(Al Pacino)와 그레타 거윅(Greta Gerwig)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글에 묘사된 2미터에 가까운 거구의 사이먼 액슬러와는 동떨어졌지만, 알 파치노는 격정의 시간을 사는 연극배우 사이먼 액슬러와 잘 어울린다. 원작보다 열 살 이상 나이가 많은 액슬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그레타 거윅도 원작의 마흔 살 보다 젊긴 하지만, 즉흥적이고 경박한 페긴으로 나쁘지 않을 듯싶다. 영화를 보고 싶긴 한데, 혹시 실망하게 될까 봐 망설여지기도 한다. 베리 레빈슨(Barry Levinson) 감독이라니 믿고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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