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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ug 24. 2019

백년을 살아보니

책 <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지음, Denstory, 2016년

                                                                                                                                                                                                                      

  TV에서 본 100세 철학자는 단아(?)하고 점잖아 보였다. 말과 행동이 거침없으면서도 온화하고, 일상은 분주하면서도 안정되어 보였다. 본인도 지팡이 짚지 않고 걸어 다니고, 아직도 찾아주는 이들이 있어 강연하고 글 쓰는 생활이 흡족하다고 하신다. 도와주는 이가 있긴 하지만 자식과 떨어져 독립적으로 사는 100세 노인은 축복받은 분임에 틀림없다.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이렇게 양질의 생활을 하는 노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꼭 이분처럼 사회생활을 분주하게 하지 않더라도,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맑은 정신으로 일상을 사는 100세는 누구나 바라는 미래 아닐까.


  연세대 명예교수인 철학자 김형석 선생님은 1920년 생이시니, 우리 나이로 올해 꼭 100세가 되셨다. 이 책이 나온 건 3년 전이니, '백 년을 살아보니'보다는  '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보니'가 적확할 것이다. 사실 이 분의 저명한 철학 저서와 에세이는 아직 읽지 못했다. 이 분을 알게 된 것도 불과 2,3년 전이다. 신문에 연재하는 칼럼을 쓰시는 철학자 정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저명한 저자인지 몰랐다.


  몇 년 전, 선생님을 인터뷰한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선생님의 부인께선 20년 가까이 투병하시다 먼저 떠나셨다. 선생님의 일상을 담은 글에선 홀로 사는 게 적적하지만 그럭저럭 지낼만하다는 소회가 자주 드러난다. 연세도 있는데 왜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냐는 말도 많이 들으셨을 텐데, 적막한 자유를 즐기시는 듯했다.


  그런데 인터뷰 중간에 아들에 대한 섭섭함을 살짝 드러내신 것이 눈에 띄었다. 이 분의 성정상 노골적으로 아들 며느리를 원망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90이 넘어도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걸 뿌듯해하시면서도, 가까이 사는 아들을 의외로 자주 만나지 못한다고 하셨다. 부자지간이지만 서로 조심하고 예의를 다하는 느낌이었다. 그 아드님조차 지금은 70이 넘어 은퇴한 노인이다.


  모르긴 몰라도, 선생님은 함께 살자는 아들의 권유를 수차례 거절했을 것이다. 아직 건강하고 살림을 봐주는 도우미도 있으니 이렇게 따로 사는 게 서로에게 좋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이런 생활이 최선이라 여기지만, 자식에 대한 섭섭함은 감춰지지 않은 듯싶다. 90세가 넘은 분의 남다르고 활기찬 일상적 소회도 좋지만, 이렇게 섭섭함을 내비친 모습도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건강도, 홀로 생활할 여건도, 찾아주는 이가 많은 것도 선생님이 살아온 세월의 반영일 것이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노년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도 드러나지만, 선생님의 인생은 그대로 한국 근현대사 100년이다. 이북에서 태어나 해방과 전쟁을 겪고 남한으로 내려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자식들을 키우는 세월은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매우 지난하고 고달픈 시절이었을 것이다. 다시 그대로 살라면 과연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김형석 선생님은  '사랑이 있는 고생이 기쁨'이라고 말한다. 내가 본 대부분의 노인들은 지나간 세월을 한탄하고, 늙고 약해진 자신의 몸을 끔찍해하며 부정하거나 원망한다. 간간이 그때가 좋았지,라고 말하긴 해도 전반적으로 후회와 한탄이 끊이지 않는다. 옆에 있는 사람도 울적해진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나보다 한 살이라도 어린 사람에게 울적함을 퍼뜨리며 나이 먹고 싶진 않다. 주위에 사람이 모이는 존경받는 어른은 겸손하고 유쾌하다.  '겸손하고 유쾌한' 노인은 생각보다 만나기 쉽지 않다. 원한다고 그렇게 나이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젊은이들을 따라잡거나 가르치려는 만용은 접어두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배우려는 의지를 잃지 않아야 가능하다.


  세상의 훌륭한 철학자나 어른을 찾아 헤매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묻고 싶어서일 것이다. 비교적 성공적으로 살아온 타인의 생은 늘 경외의 대상이다. 고생과 시련은 이미 지나간 과거고, 현재의 영광은 매우 빛나 보인다. 그들의 회한조차 낭만적으로 들린다. 개인적으론 100년의 시간보다 평생 철학자로 살았던 저자의 업이 더 부럽다.


  몇십 년을 함께 했던 오랜 친구들 얘기엔 가슴이 뭉클해진다. 김형석 선생님은 아마 먼저 떠난 친구들과의 추억으로 시간을 견디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 얘기보다는 친구들과의 소회를 담은 글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런 친구를 가진 것 또한 이분의 남다른 행운일 것이다. 반대로, 먼저 가신 친구분들도 김형석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어서 생이 즐겁지 않았을까 싶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좋은 인생은 가슴에 품고 갈 좋은 친구 하나 얻어가는 삶이 아닐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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