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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ug 11. 2019

고등어

책 <고등어> 공지영 장편소설, 웅진출판, 1994년

  예전에 읽은 소설을 한 번 더 읽었다. 딱히 인상적이어서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분명 읽었는데, 홀랑 잊어버리고 어떤 내용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희한한 건,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은데 여주인공 이름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노은림이다.


  1994년에 나온 장편소설 『고등어』는 숨 가쁘지만 때론 지리멸렬하게 살아가는 30대 남녀가 자신들이 뜨겁게 보낸 20대를 반추하며 시작한다. 러브 스토리의 외연을 하고 있지만 결코 말랑말랑하거나 달달하지 않다. 제목처럼 푸른 바다를 힘차게 유영하는 등 푸른 생선의 생명력을 감지하기도 힘들다. 소금에 절여진 죽은 생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뜨거운 과거의 후일담은 풀이 죽은 듯 답답하고 조금은 안타깝다.  


  민주화 시위와 혁명의 기운이 격렬했던 1980년대, 대한민국의 20대들은 선택해야 했다. 시대와 불화하느냐 외면하느냐. 사실 어느 시대건 젊은 피는 늘 격렬하게 끓었다. 나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관통하는 이 시절의 후일담은 그래서 매우 가깝지만 아득히 먼 과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혁명전사로 사는 남자와 여자에게 이성 간의 사랑은 나른한 사치다. 당시엔 그랬다고 한다. 딱히 운동권이라 아니더라도 여자는 남자 선배를 '형'이라 부르던 시절이었다. 그들에게 사랑은 동지애의 다른 이름이고, 결혼은 혁명적 결합에 가까웠다. 명우는 운동권 후배의 여동생 노은림을 사랑한다. 그녀는 이미 운동권 동지와 결혼한 유부녀다. 사랑도 기가 찬데 불륜이다. 두 남녀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사랑의 도피를 꿈꾸지만, 남자가 여자를 배신한다. 그리고 얼마 후, 명우는 노동 운동을 위해 취업한 공장에서 만난 여공과 혁명적인(?) 결혼을 한다.

  7년의 시간이 지나고, 30대가 된 노은림이 병든 몸으로 명우를 찾아온다. 이미 이혼한 명우에겐 세련되고 발랄한 20대 애인이 있다. 명우는 혼란스럽다. 혁명은 실패했고, 과거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동지들을 죽거나 미치게 했다. 그토록 경멸했던 자본가들의 자서전을 대필해 먹고사는 명우에게 노은림은 그저 옛사랑이 아니다. 시대와 불화했던 과거의 모든 것이자, 현재까지 손을 뻗는 설레는 절망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은 바뀌었다. 민주화 혁명에 투신해 청춘을 바친, 30대가 된 아직은 젊은 그들은 열병처럼 앓았던 20대의 후유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바뀐 세상은 그들이 꿈꾸었던 모습이 아니다. 젊음과 사랑을 사치라 여기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죄스러워하면서 그들은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싸웠다. 투쟁이 격렬했던 만큼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개인을 좌절하게 한다.


"뭐가 그렇게 절망스럽나요, 뭐가 그렇게 어리석었나요? 연애도 제대로 못해 보고, 운전면허 하나 따지 못하고, 고시공부 한 번 하지 못하고 보낸 젊은 날이 그래서, 이제 와서 그렇게 안타까운 건가요? 그래서, 이제 와서 우린 어리석었다고, 우린 다 잃어버렸다고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건가요? 고작 형의 회한이라는 게 이런 건가요? 우리가 애썼던 날들하고 바꿀 수 있는 게 고작 운전면허예요? 아니요,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잊지 않은 사람들, 죽어간 친구와 미쳐간 친구와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는 이들... "


  신파처럼 들리는 노은림의 원망은 절절하고 안타깝다. 90년도에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혹은 할 수 있었던 그들은 더 나이 먹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혁명은 실패한 건가? 혁명은 늘 진행 중이다. 그들이 격렬한 역사에서 비껴 난 90년대나, 그때에서 2,30년쯤 더 지난 지금이나 혁명이 멈춘 적은 없다. 혁명의 방법과 목적은 변했지만 본질은 늘 같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가는 것.  


  90년 대는 나에게도 비교적 생생한 과거이지만 참 가깝고도 먼 시절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주인공이 스마트폰이 아닌 앤서링 머신을 사용하고, 차에서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어서가 아니다. 명우를 비롯해 은림과 명우의 여동생 명희, 애인 여경과 전처 연숙까지, 남녀 할 거 없이 모두 당연하다는 듯 담배를 피운다. 특히 명우와 은림은 골초다. 흡연 자체가 문제 될 건 없지만, 원룸인 명우의 오피스텔에서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고, 심지어 어린아이가 자고 있는데도 환풍기를 틀어놓고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지금 보니 좀 기이하다.


  요즘 건물은 대부분 금연 구역이라 실내 흡연은 미개하고 이기적인 범법 행위로 취급받는다. 더욱이 어린아이와 한 공간에 있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동 학대나 다름없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애연가여서 그런지, 유독 담배 피우는 묘사가 많이 나오는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이렇게 나는 이 시대와 불화하는 것도 모자라 과거와도 불화하는 건가. 가만 생각해보면, 어릴 땐 남자 어른이 방 안에서 담배 피우는 게 그리 이상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다른 사람 생각 안 하고 실내에서 담배 피우는 것들은 폐가 다 썩어야 한다고 저주에 가까운 경멸을 하게 된다.


  오래전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서 예기치 않게 시대와 불화하고, 격세지감을 느끼다가, 주인공의 최후에 센티해져 책장을 덮었다. 나도 살아낸 90년대는 참 생생하면서도 아득하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결코 보여줄 수 없는 풍경에 가슴이 서늘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낭만이 가득한 회고보다 냉정하고 가슴 아픈 후일담이 더 개운하게 와 닿는다. 이 책 어느 구석에 묘사된 것처럼, 노은림과 같이 나도 가장 추울 때 태어나 이성이 발달하고 신랄한 비판력을 가진 '물병자리'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사실 별자리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나이 먹을수록 더 너그러워지는 것 못지않게 더 냉철하게 깨어있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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