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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May 24. 2018

포기한 사람에겐  호랑이보다 무서운 세상

영화 <호랑이 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 (2018)

  가끔 영화 한 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있다. 재미를 떠나서 예고 없이 폐부를 찌르는 기습적인 공격을 품은 서사가 그렇다.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은 서늘한 바람이 부는 영화다. 추운 겨울에 동거녀 집에서 쫓겨난 남자 '경유'에겐 겨울 칼바람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울 것이다. 그가 포기한 사람이기에 그렇다. 경유는 능력은 없어 보이지만 나름 염치도 있고 예의도 있다. 한때는 촉망받는 소설가 지망생이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싶을 정도로 애처로운 겨울 손님이 됐다. 본의 아니게 친구와 동거녀와 그리고 세상에.


동거녀 집에서 쫓겨나오는 경유

  그 또한 세상의 냉정한 겨울 손님들에게 부대낀다. 알바 자리 면접에서 무시당하고, 진상 콜택시 손님들에게 멸시당한다. 전 여자 친구 유정은 그중 최고다. 과거의 연애가 끄집어낸 애정인 줄 알았던 관계가 그가 예전에 써놓은 소설을 노린 '수작'임이 밝혀지면서 그의 처지는 한없이 초라해진다. 그가 포기한 재능은 정말 포기할 정도였을까. 포기 안 하고 지금껏 해왔다면, 이런 비참한 세상의 '겨울 손님'이 되는 신세는 면했을까. 모른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 그 누가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가 소설을 포기할 수밖에 없던 합리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정이 그가 습작한 소설을 노릴 정도고, <노인과 바다>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순수한 꿈이 있었던 사람이 너무 빨리 포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재회한 경유와 유정

  누군들 세상에 민폐 끼치는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살고 싶을까.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자신을 용납 못하고 자괴감에 빠질 것이다. '겨울 손님'을 맞닥뜨리고 싶지도 않지만, 내가 누군가의 '겨울 손님'이 된다는 건 정말 참을 수 없는 비애다. 차라리 우리를 탈출한 호랑이와 마주치는 게 낫지.


  포기를 했든 실패를 했든, 두 발을 세상에 단단히 디디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을 차가운 세상은 너무 쉽게 부담스러운 손님으로 전락시킨다. 세상의 에너지만 축내는 잉여인간, 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 민폐 덩어리로.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경유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런 취급을 받는다. 그는 우연히 한 목숨을 살리며 '겨울 손님'답지 않게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한다. 그리고 노트와 펜을 사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집어 든다. 그는 다시 글을 쓰는 순간 마주친 호랑이를 보며 잠시나마 세상의 비애를 잊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호랑이에게 순식간에 잡아먹히거나.


  가진 것 없고 잃을 것 없는 경유에게 두려움은 없을 것 같다. 유정의 집에 두고 온 트렁크만큼 그의 마음의 무게가 덜어졌다고 믿고 싶다. 반면, 경유의 트렁크를 열어본 유정은 표절 시비를 풀고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알코올에 찌든 그녀의 일상도 그리 생산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녀에게도 한방에 정신 차리게 할 호랑이가 필요한 것 같다. 세상의 '겨울 손님들'을 진상과 민폐스러운 정체성에서 탈출시킬 수 있는 건, 진정 호랑이밖에 없는 건가. 개인적으로 호랑이를 만나고 싶기도 하고 영영 피하고 싶기도 하다. 포기한 인생이라는 자괴감과 호랑이에 대한 아찔한 공포 중 어느 게 더 두려운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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