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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n 01. 2018

눈을 뜬 디케(Dike)를 꿈꾸며

책 <판사 문유석의 일상 유감 개인주의자 선언>

  현직 부장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판사님의 커밍아웃'이라는 점에서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나는 개인주의자라고 하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대부분일 테지만, 이 책의 저자는 '판사님'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한 주의를 끈다. 저자는 그런 영향력을 충분히 의식하고, 신중하고 지혜롭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한국 사회의 고위 공직자가 '패거리 문화가 싫다, 남 눈치 보는 것도 싫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도발적인 고백을 했지만, 그 어조는 과격하지 않고 합리적이며 심지어 어떤 면에선 따뜻하다. 현직 판사라는 지위는 너무 신랄한 목소리를 내기도 좀 그렇고,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의 한 마디가 다른 이들의 백 마디보다 무게 있고 중요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니까. 그런 영향력을 부인하는 위악을 떨지 않아서 이 책은 편안하게 읽힌다.


  집단 내 무한 경쟁과 서열 싸움 속에서 개인의 행복은 존중되지 않는
불행한 사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이민'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으며
감히 합리적 개인주의 자들의 사회를 꿈꾼다.


  저자는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꾸며, 이기주의와 확연히 다른 개인주의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과 오해부터 불식하자고 설득한다. 이 사회에서 부당하게 취급하는 '개인'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가 아닌, 합리적인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수행하는 존재다. '개인주의'야 말로 르네상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이었고, 저자는 본인이 몸소 그렇게 살아가며 엘리트 갑으로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모색하면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저자의 글을 보면, 법정에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가 개인적인 견해로 쓴 글이라도 판사라는 정체성과 직업적 소명을 분리해서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글을 판사의 입장에서 쓴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 교육제도의 문제, 좌우 이념 대립의 폐해 등, 세상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써내려간 문장에선 엄정한 판사님의 목소리가 환성처럼 들린다.       


정의의 여신 디케

  디케는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디케의 눈이 가려진 것은 정의를 실현할 때 사건 관련자의 지위나 신분, 사적인 관계 등을 떠나 법 앞에서의 평등을 유지해야 함을 의미한다. 저울은 엄정한 정의의 기준을 상징하고, 심판을 내릴 때 상반되는 두 개의 입장을 충실히 듣고 엄밀하게 판단하라는 의미다. 칼은 법을 어긴 자에게 강제로 공권력의 처벌을 엄중하게 가한다는 의미다. 결국, 법적 정의는 사사로움을 떠나 공정하게 재판하고, 이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의 글에서 합리적이고 따뜻한 시선을 감지한 나는, 디케의 화신으로 법정에 서는 판사님께, 눈을 감은 디케가 마땅하지만 가끔은 눈을 뜬 디케가 되셨으면 좋겠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사회의 아직도 아주 많은 이들에게 법이란 미지의 공포에 가깝다.
법조인들이 약자를 돕기 위해 자기 일을 포기해야 하는 대단한 희생은 필요 없다. 월급 받고 일하고 자기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자기 일에서 5분만 더 고민하고, 말 한마디만 더 따뜻하게 해주어도
큰 고난의 한가운데서 두려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부분이 유독 인상적이었던 건, 법조계 종사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법이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법이 약자의 편에서 집행되어야 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법이라는 것 자체가 기득권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는 걸 부인할 수 없기에, 눈을 뜬 디케가 사회적 약자를 보며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판결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판사님이 말한 '미지의 공포'가 되는 법은 이 사회의 가진 자보다 약자에게 더 악랄하고 거대한 공포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판사님이 더 상세히 그리고 뼈 저리게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판사인 저자가 쓴 책이 합리적이고 따뜻한 것과, 그의 직업윤리는 별개의 것이지만, 이 책을 읽고 마음이 훈훈해진 한 '개인주의자'는 미지의 판사님을 눈을 뜬 디케로 상상하고 싶은 욕망을 멈추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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