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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n 03. 2018

동화에서 튀어나온 21세기 판 요정

영화 <소공녀> (2017)


  그녀, '미소'의 하루는 단순하지만 충만하다. 가사도우미를 해서 번 돈으로 하루치의 소비를 하며 기록한다. 방세나 약값을 모으지만 내일을 위한 저축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녀가 자본주의 시대에 미래를 담보하는 삶을 산다면, 담배값과 위스키 값과 방값을 그런 식으로 배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루만큼의 담배와 위스키는 그날을 살기 위한 일용할 양식이자 포기할 수 없는 취향이다. 대신 따뜻한 방도, 맛집 데이트도, 결혼과 취미와 사유 재산 등 그 무엇도 원하지 않는다. 남자 친구에게도 '너만 있으면 된다'라고 하지, 결혼을 하자거나 같이 살 방을 구하라고 닦달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싶으면 헌혈을 하고, 식사는 주머니 사정에 맞게 떡볶이나 핫도그로 만족한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지만 결코 막살거나 인생을 포기한 건 아니다.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고, 꺾을 수 없는 취향이 있다. 백발이 되어가는 머리 때문에 평생 약을 먹고, 가사도우미라는 직업에 충실하며 담담하게 살아간다. 어쩌면 그녀는 20세기 초에 창조된 '소공녀'보다 더 비현실적인, 판타지 동화에서 튀어나온 21세기 판 요정일지도 모른다.


가사도우미를 하는 미소

  가사 도우미 일당 빼고 모든 가격이 오르자 미소는 깔끔하게 집을 포기한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오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다. 대부분 현실 세계의 사람들은 그 모든 걸 포기하더라도 집(or 방)을 사수하는 게 상식이고 개념이라 여기니까. 그렇다고 그녀가 노숙자의 삶을 택한 것도 아니다. 찜질방을 전전하려나 싶었는데, 미소는 내 예상 밖의 행보를 한다. 예전에 가까웠던 밴드 동아리 멤버들의 집을 차례로 방문하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도, 남의 집에서 하룻밤 재워달라고 하는 것은,  24시간 여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보다 쉽지 않다. 더구나 미소가 달걀 한판을 들고 염치 있게 찾아간 사람들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멤버들이다. 시간의 간극만큼 달라진 그들의 처지는 미소에겐 낯선 모험의 세계가 된다. 이 여정 또한 동화 속의 순례자와 비슷하다. 그러나 백발 요정이 부딪히는 세상은 더 이상 동화가 아닌 남루한 현실이다.


미소가 찾아가는 대학시절 동아리 멤버들


  집이 없는 미소를 동정하지만 하룻밤도 재워줄 수 없다는 친구, 고된 시집살이에 눈물이 헤퍼진 친구, 20년 동안 대출을 갚아야 하는 아파트에 갇혀 사는 이혼남, 부모에게 얹혀살며 결혼을 거래하는 노총각, 호화로운 집에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사모님 등. 집이 없는 미소의 여정은, 집이 있는 자들의 불행과 고난의 시리즈 같다. 현실의 팩트 폭력이 멈추지 않는 이 행군에서 혹시 미소가 위험에 빠지거나 삶을 포기하고 취향을 바꾸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나에게 미소처럼 살라고 하면 못 살겠지만, 제발 그녀가 찬바람 맞으며 피는 담배와 빈속에 마시는 위스키 한 잔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녀는 21세기 동화의 마지막 주인공이어야 하니까. 적어도 막판까지 몰리다 젊은 여자의 성을 팔아 집을 구하거나, 남자 친구를 졸라 결혼에 안착하는 걸로 절박한 삶을 구원했다고 여기지 않길 바랬다. 이기적인 나의 바람은 그녀가 순례한 여자 동료들의 삶이, 우리가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예외 없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삶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의 남자 친구조차 그녀를 책임지겠다는 명목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다. 2년 동안 5천만 원을 모아서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요정에겐 허무한 메아리일 뿐이다. 백발 요정이 원하는 건 남자 친구와 공유하는 시간과 체온인데, 현실의 인간에겐 절박한 것이 너무 많다.


결국 미소를 떠나는 남자친구


  아무에게도 피해 주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민폐가 될 수밖에 없는 미소의 여정은 어두컴컴한 세상의 작은 불빛으로 보이는 텐트에서 끝난다. 사실 세상은 결코 어두컴컴하지 않다. 숨이 막힐 듯 높고 빽빽한 아파트 불빛은 밤에 더 선명하고 폭력적일 만큼 눈이 부시다. 그 불빛을 구원으로 여기며 사는 삶 또한 가치 없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나의 구원이 너의 구원과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은연중에 폭력을 행사하는 건 아닌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미소의 선배인 부잣집 사모님이 쏘아대는 현실적 충고는 틀린 게 아니라 폭력적이라는 게 문제다.) 미소는 여전히 집이 없지만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실 것이다. 미소를 아는 사람들은, 그녀가 없는 자리에서 그녀를 낭만적으로 회상한다. 내 집에만 안 머무르면, 그녀는 아름다운 추억과 독특한 취향을 가진 그리운 친구인 것이다. 그녀가 현실 세계의 사람들에게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백발이 된 머리로 그녀는 어디선가 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을 것이다. 이 마지막 요정이 현실 세계를 어떻게 견딜지 걱정된다. 우리가 너무 신속하고 쉽게 그녀를 동화 속으로 내쫓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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