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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n 22. 2018

아버지와 돈의 상관관계

명작 탄생의 비화를 그린 두 영화를 보고..


  아버지와 돈, 이 둘만큼 이질적이지만 유기적으로 밀착된 말이 또 있을까. 둘 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고 소중하다. 우리를 먹여 살리고 많은 것을 주지만, 가끔 피도 눈물도 없다. 격하게 사랑하지만,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는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돈은 아버지 생을 저당 잡아 숨을 갉아먹는다. 없으면 없는 대로 고달프고, 있으면 예기치 않게 불화의 씨앗이 된다.




<위니 더 푸우>의 작가 A.A. 밀른


  교외 숲 속 집에 사는 어린 소년은 곁을 주지 않는 아버지가 어색하고 낯설다. 엄마는 부재중이고, 유모마저 집을 비우자 소년은 아버지와 단둘이 지내게 된다. 참전 트라우마로 예민한 아버지에게 어린 아들은 어찌 대해야 할지 막막한 작은 생명체일 뿐이다. 소년은 어색한 아빠 대신 엄마가 사준 동물 인형들에게 이름을 붙여 숲 속에서 놀고, 아버지는 아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영감을 받아 책을 쓴다.


  곰돌이 푸우로 알려진 『위니 더 푸우』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 책은 전 세계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사로잡았다. 작가 앨런 알프레드 밀른은, 책 속 소년의 실제 모델인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을 책 프로모션과 인터뷰에 데리고 다닌다. 아이는 순식간에 유명세를 치르며 어린 셀럽이 되지만, 아버지의 부와 명성이 올라갈수록 지치고 생기를 잃는다.


엄마가 사준 동물 인형과 놀고 있는 빌리문


  너무 바쁜 부모는 아들 생일에 브라스 밴드를 보내 생일 축하 연주를 들려줄 망정 함께 하지 않는다. 아빠의 잘 자라는 전화도 라디오 생방송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소년은 실망한다. 소년은 길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제대로 못 먹고, 어딜 가나 사진을 찍어야 하며, 낯선 이가 이름 부르며 아는 척하는 걸 힘들어한다. 심지어 동물원의 곰 옆에서 사진까지 찍는다. 소년은 책에 있는 크리스토퍼 로빈이란 자신의 본명마저 싫어한다. 집에서 불리던 빌리문으로 살고 싶어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유명하다.


유명세를 타는 작가의 가족


  학교에서도 이야기책의 실제 모델이란 이유만으로 괴롭힘 당하며 끔찍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성장한 크리스토퍼는 부모의 만류에도 곰돌이 푸우가 없는 전장으로 자원입대한다. 그는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진심 어린 원망을 쏟아낸다.

  "그 곰은 제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어요."

  그 책의 아이라는 게 알려지는 순간, 소년은 현실에 발을 붙일 수 없었다. 자신이 빌리문이었을 때는 아빠와 같이 숲 속에서 놀았지만, 아빠가 책을 쓰면서 모든 게 멈췄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그때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며, 소년의 부탁으로 책을 쓴 거라 하지만, 아들은 차갑게 반박한다.

 “절 위한 책을 원했어요, 저에 대한 책이 아니라.”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영감을 받아 본업인 작가의 본분에 충실했고, 그로 인해 얻은 부와 명성으로 가족들을 풍족하게 부양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의 어린 시절은 상처투성이가 됐고 씻을 수 없는 원망만 남았다. 아버지가 잘못한 것인가. 그때 책을 쓰지 않고, 부와 명성을 포기했더라면 아들의 삶은 더 행복했을까.  




  오스트레일리아의 척박한 개척지에 사는 소녀에게도 아버지가 있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상주의자인 아버지는 딸에게 꿈꾸는 걸 멈추지 말라고, 넌 뭐든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은행원이지만 무능한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자살시도까지 하는 걸 본 소녀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

 

메리 포핀스의 모델이 된 엘리 이모


  『메리 포핀즈』는 소녀의 어린 시절이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무능하고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인 아버지 때문에 서풍이 불던 날 집에 나타난 소녀의 이모 엘리가 괴짜 유모 메리 포핀즈의 모델이다.

  “돈에 사로잡히지 말아라, 언젠가 걸려 넘어지고 말 거야.”

  어린 시절, 돈벌이를 제대로 못한 아버지가 한 말은 작가를 평생 지배했고, 자신의 작품을 상업영화로 만들려는 디즈니에게 냉소하며 반발한다.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고 술에 쩔어 엉망진창인 그때의 아버지는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애증 덩어리로 그녀의 가슴속에 살아 있다. 『메리 포핀스』속 아이들 아빠인 은행원 뱅크스 씨를 통해 아버지를 부활시켰지만, 그를 밉살맞게만 그리는 디즈니사 각본가들에게 작가는 분통을 터뜨린다.

  “왜 그리 밉상으로 그리죠? 괴물이라도 되나요? 왜 비참해야 하나요?”

  가족에게 고통만 남기고 간 무능한 아버지를, 작가는 또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디즈니와 <메리 포핀스>의 원작자 트래버스 부인

  영화 <굿바이 크리스토퍼 로빈>의 크리스토퍼는 우아하고 멋지게 아버지에게 복수한다. 『위니 더 푸우』가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인세를 한 푼도 차지하지 않고, 동네에 작은 서점을 열어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영화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 속 작가는 뮤지컬 <메리 포핀스>에서 아이들에게 연을 고쳐주며 즐겁게 노래하는 뱅크스 씨를 보며, 어린 자신과 젊은 아버지를 화해시킨다. 더불어 무능한 아버지가 하늘에서 주는 선물 같은 어마어마한 저작권료도 얻었을 것이다.




  돈이 많은 아버지도 자식을 불행하게 할 수 있고, 돈이 없는 아버지도 자식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 살고 있는 아버지는 어쩜 돈과 관계없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돈과 관계없을 수 있지만, 돈이 아버지를 가만 두지 않을 때가 많다. 가족 부양이란 어마어마한 이데올로기는 아버지를 관통해 자식들의 삶을 쥐고 흔든다. 정말 어렵고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만, 아버지에게서 돈벌이로 대변되는 가족 부양 능력을 빼고 자연인 아버지로만 본다면, 세상의 많은 순박하지만 무능한 아버지들이 존경스러운 존재로 자식들의 마음속에 부활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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