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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n 25. 2018

너를 보면 뼈가 시린다!

영화 <To The Bone>  (2018)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처음으로 다이어트라는 걸 했다. 이제 대학생이 됐으니 날씬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작정 굶었다. 치수가 한참 작은 바지를 사놓고 저 바지가 낙낙하게 맞을 때 이 허기진 생활을 멈추리라 결심했다. 생각보다 살이 금방 빠졌다. 2주 동안 7kg 넘게 뺐다. 어려서 그랬는지 배고픔도 견딜만했다. 대신, 단식을 끝낼 그날을 위한 보상을 차곡차곡 비축하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과자를 하나씩 샀다. 평소 즐겨 먹지도 않으면서 책상 서랍에 쌓이는 과자 봉지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하루 종일 굶고, 저녁은 크래커 세 개로 때웠다.

  그날도 저녁으로 크래커를 씹던 나는, 세 개를 다 먹었는데도 손을 멈추지 못했다. 정말 한 순간이었다. 별다른 계기가 있던 것도 아니다. 2주 넘게 힘겹게 단속해온 식욕은 그렇게 한방에 폭발했다. 앉은자리에서 과자 다섯 봉지를 해치운 후 멈췄다. 미친 여자가 따로 없었다. 내 몸의 생명 유지 메커니즘은, 나를 미친 여자로 만들어서라도 극단적인 절식을 멈추게 했다. 태어난 지 20년도 안 된 내 몸엔 태워 없애도 될 지방이 충분했지만, 몇만 년 동안 진화해온 내 유전자는 식욕 호르몬을 분비하고 뇌의 신경중추를 자극해, 비상체제로 깜빡이는 내 몸의 경고등을 그런 식으로 꺼버렸다. 2주 천하로 끝난 극단적인 절식은 그 후 간헐적으로 되풀이됐다.



뼛속까지(to the bone) 앙상한 엘런

 

 엘런은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거식증 환자다. 음식의 맛과 냄새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고, 죽기 전날 좋아하는 초콜릿 과자 한 상자를 다 먹어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음식에 대한 집념과 불안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음식 먹는 걸 생각만 해도 세상이 두 동강 날 것 같다며, 제어하지 못할까 봐 아무것도 삼키질 못한다. 몇만 년 동안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해온 유전자까지 이겨낸 그 거부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녀를 지배하는 건 두려움다. 음식도, 사랑도, 사는 것도, 용기를 내는 것도, 죽음도. 엘런은 세상 모든 걸 두려움 속에 파묻고 꺼내 볼 엄두를 못 낸다. 이제 스물을 갓 넘긴 재능 있는 아이가,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그러나 본의 아니게 생을 위태롭게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엘런은 미술에 재능 있지만 아버진 먹고살기 좋은 직업을 갖길 원한다. 엄마는 아빠와 불화하다 레즈비언이 되어 떠났다. 새엄마와는 맞지 않고, 늘 바쁜 아빠는 얼굴 보기도 힘들다. 결정적인 이유는, 그녀가 블로그에 올린 그림을 좋아하던 거식증 소녀가 자살하며 편지를 남겼는데, 소녀의 부모는 엘런에게 '네가 한 짓'을 깨달으라며 그녀에게 죽은 딸의 사진을 보냈다.


섭식장애 전문의와 상담하는 엘런


  엘런은 말한다. 사람들은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사랑하면서 느끼는 그 기분 자체를 좋아하는 것뿐이라고. 아니면 사랑의 대가로 빼앗을 것을 사랑한다고.

  엘런의 가족은 그녀를 걱정하고 사랑하지만 그녀의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킨다. 재활시설에서 섭식 장애를 치료하지만, 그곳의 다양한 환자들을 보며 더 큰 혼란을 겪는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몸에 비정상적으로 털이 많이 나고, 신진대사 활동은 지방과 근육을 태우다 못해 장기까지 손상시킨다. 영양공급관을 꽂아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태까지 가자 주치의는 단호하게 말한다.


  "누군가 나타나서 구해주길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용기를 내는 건 석탄을 삼키는 것만큼 힘들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용기를 내는 것은 석탄을 삼키는 것만큼 힘들다'


  이제 엘런의 차례다. 음식이건 석탄이건 그녀 스스로 씹어 삼키지 못하면 곧 죽을 것이다. 살고 싶다면 석탄을 삼키겠다는 각오로 음식도 삼켜야 한다. 사실 그녀에겐 석탄이나 음식이나 삼키기 힘든 건 매한가지다. 엘런은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죽음의 그림자를 달고 엄마를 찾아간다. 삶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딸을 어쩌지 못하는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네가 죽는 걸 바란다면 그것마저 이해하겠다고 말한다. 이젠 지쳐서 딸을 포기하겠다는 것처럼 들리는 이 말에, 엘런은 오히려 꿈틀거린다. 엄마가 아기처럼 안고 먹여주는 우유를 먹은 그날 밤, 드디어 그녀는 석탄을 삼키는 데 성공한다. 비록 꿈이긴 하지만, 그녀가 용기를 내는 상징적 행위인 석탄을 삼키는 장면은 기괴하면서도 아름답다. 꿈에서 미리 본 뼈만 남은 시신이 아닌, 밝고 건강한 엘런은 말 그대로 빛이 난다. 보기만 해도 뼈가 시린 그녀의 앙상한 몰골은, 살아가는데 (우리가 보기엔) 너무 당연하고 사소한 용기를 못 낼 때 인간이 어디까지 처참하고 지독해질 수 있는지 온 몸으로 보여준다.




  누구든 석탄을 삼켜야 하는 지독한 시기를 맞닥뜨리지만, 누구나 석탄을 삼키진 못할 것이다. 석탄을 삼키는 고통으로 뼈저리게 (to the bone) 아픈 통증이 치유된다면 용기를 안 낼 이유가 없다. 그래도 석탄을 삼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석탄이 젤리로 느껴진다면, 나에게 꼭 필요하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용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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