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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n 27. 2018

이 또한 지나가리...

영화 <Every Thing Will Be Fine> (2015)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삶에 불시에 끼어든 사건 사고는 무슨 의미일까? 무슨 일이 날 때마다 뭔가 깨닫고 삶을 반추해야 할 것 같은데, 그때만 반짝 곤두섰다가 담담하게 흘려버린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사고라도 시간을 밀어내고 살아가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체념도 든다.




  작가 토마스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뒤바뀐 건, 눈이 많이 내린 그날의 사고 때문이다. 눈이 쌓인 한적한 도로에서 아이를 치었다(고 생각했다). 식겁해서 내려보니 본네트 앞에서 넋이 나간 아이는 그래도 무사하다. 안도의 숨이 절로 나온다. 아이를 집에 데려다 줄 때까지만 해도 그는 몰랐다. 10초 후에 그의 인생이 뒤집어질 것이라는 걸. 아이 엄마는 같이 있었던 다른 아이의 행방을 묻는다. 이어서 정신 나간 듯 눈 속을 달려간다. 토마스도 뒤따른다. 아이를 치는 장면 없이 이렇게 충격적으로 교통사고를 보여주는 연출은 빔 벤더스 감독이라 가능했던 걸까.


작가 토마스


  이 사고로 관련된 모든 사람의 생이 크고 작게 변한다. 토마스는 괴로움과 죄책감에 방황한다. 당연히 글도 못 쓴다. 아이를 갖길 원하는 조강지처와도 소원해진다. 목숨을 끊으려고까지 한다. 다행히 살아나지만, 어려울 때 옆에 있어준 아내와 헤어진다. 토마스는 자신이 죽인 아이 엄마를 찾아가 죄책감을 내비친다. 사고였다며 오히려 담담하게 대하는 여자. 그러나 상실감과 어쩔 수 없는 죄책감은 두 사람을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피해자와 가해자인 두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아이로 인해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할 수 없는 인연으로 상실과 치유를 주고받는다.


죽은 아이의 엄마와 토마스


  세월이 흐르고, 토마스는 사고를 극복하고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인생을 뒤바꾸어 놓은 그 사고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조강지처와 헤어지고 새로 만난 여자와 그녀의 딸과 가정을 꾸린다. 어느 날, 새 가족과 함께 간 놀이공원에서 총기 사고가 나고,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토마스는 침착하게 대처한다. 그의 아내는 그런 토마스에게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 있냐며, 무섭고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토마스는 그 어떤 사건이나 사고도 자신을 더 이상 흔들지 못하는 듯 덤덤한 얼굴이다. 눈 오는 날의 그 사고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인생이 그날 이전과 이후로 나뉜 것만은 분명하다.


  다시 세월에 흐르고, 그날 살아남은 아이는 10대가 되어 토마스를 찾아온다. 그의 작품을 다 읽었다며, 그날 사고를 소재로 쓴 것 아니냐고 따져 묻는다.


첫 번째 아내와 토마스


  토마스에게 그날의 사고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 사고가 없었으면 그는 성공한 작가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사고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 인정받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만 보면 그날의 사고는 더 이상 우연한 사고가 아닌 필연적인 사건으로 그의 인생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 의도했건 아니건, 토마스의 과실과 죄책감과 성공은 모두 그날 사고를 중심으로 생의 단락에서 맴돈다. 더 가난해진 아이 엄마, 10대가 된 위태로워 보이는 아이, 남편과 헤어진 토마스의 조강지처, 나약해진 토마스의 아버지, 그리고 새 가족. 이 모든 게 알게 모르게 토마스와 그가 저지른 사고의 영향에 지배받는다. 토마스가 사고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성공의 발판으로 삼은 건 다행인 건가, 야비한 기회주의자의 행태인가. 그가 세상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고 덤덤해지는 건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상실과 치유를 주고받는 피해자와 가해자


  이 영화의 타이틀은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 한다. 아마 토마스는 그렇게 과오를 저지른 과거와 빛나는 현재를 이어 놓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어 놓았다. 진짜 괜찮아서라기 보다는, 그래야만 시간을 밀어내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 아닐까. 한 아이의 죽음의 파장을 긍정으로 수렴시키는 건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사고 당사자 토마스는 죄책감을 포기한 대신 덤덤함을 받아들였다. 그가 어떤 충격에도 예전만큼 흔들리지 않는 건, 이 또한 지나간다는 것을 강렬하게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지나갈 수밖에 없다. 살아보니까, 그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여있는 시간은 고여있는 물만큼 해롭다. 뭐든 지나가야 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토마스의 과오는 지나갔고 성공은 다가왔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건 '이 또한 지나간다’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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