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이스 Jun 30. 2018

이 토끼들 미쳤다!!

영화 <피터래빗 PETER RABBIT> (2018)

동물 vs 인간


  귀엽고 약한 동물들은 꼭 인간을 적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작지만 결코 어리지 않은 토끼 피터는 귀여운 외모와 달리 꾀가 말짱한 성인 토끼다. 부모님의 원수인 맥그리거 씨를 증오하며, 그의 텃밭에서 농작물을 훔치는 게 삶의 목적이자 이유다. 그의 분노와 복수심은 이해한다. 어린 시절, 아빠가 사악한(?) 인간에 의해 눈앞에서 토끼 파이가 되는 걸 봤는데 눈이 안 뒤집힐 자식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굳이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닌데 집요하게 남의 텃밭을 침범하며 도둑질을 감행한다. 피터의 식구, 즉 다섯 마리 토끼가 먹으면 얼마나 먹겠냐 싶지만, 이건 훔친 농작물의 양이 문제가 아니다. 야생 토끼의 침범을 극히 싫어하는 맥그리거 씨를 자극하고 기어이 토끼 덫을 놓게 한다는 게 문제다. 물론 영리한 피터는 덫을 요리조리 피해가지만, 어느 한 편이 사라지기 전엔 끝나지 않을 이 집요하고 잔인한 복수극은 잘잘못을 떠나 쌍방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

  아빠 대신 가장이 된 피터가 복수심을 누그러뜨리고, 맥그리거 씨의 텃밭을 제외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에서 삶을 만끽하며 살면 좋을 텐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아빠를 죽인 노인을 자신이 죽여야 직성이 풀리기라도 할 것처럼 덤비지 말고 말이다.

피터(가운데 청색 재킷)와 그의 가족


인간 vs 인간


  자기 텃밭을 들락거리는 토끼들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노인이 공공의 적이라면, 이웃집 화가 아가씨 비는 토끼들에게 애정을 주는 아군이자 친구다.

(시대가 안 맞긴 하지만) 베아트릭스 포터라 짐작되는 이 여자 앞에서는 영악하고 잽싼 토끼들도 순하고 귀여운 야생 동물로 변신한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사랑해주는 타자에게 잘 보이고 싶고 애정을 표현하는 건 본능이다. 더구나 비는 토끼들에겐 엄마 대신이고, 그들의 그림을 그리기까지 한다. 이런 소중한 인간 친구의 애정에도 불구하고 피터가 인간에 대한 원천적인 증오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토끼들을 돌봐주는 화가 비


완벽한 생물 vs 불완전한 인간

  

  맥그리거 씨가 죽자 피터는 환호하며 그의 집을 점거한다. 원수의 죽음을 반기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엄연한 불법 점거다. 그는 어째서 그 집이 제 집이라도 되는 양, 부모님 그림 액자까지 걸어놓고 방종을 떠는 걸까. 맥그리거 씨의 조카 토마스가 오자, 피터는 전투 모드로 돌입한다. 결벽증이 있는 토마스가 다소 요란하게 동물들을 내쫓고, 비마저 토마스에게 호감을 보여 심사가 뒤틀린 모양이다. 또다시 텃밭의 농작물을 맘껏 훔쳐 먹을 수 없게 되자 피터는 빡친다. 그는 왜 집요하게 남의 텃밭을 노리는 걸까. 굳이 그 집 작물이 아니더라도 안전하게 먹을 방법이 있다는 건, 앞에서 맹꽁이 비슷한 생물이 이미 대사로 알려줬다. 부모님의 원수 맥그리거 씨를 괴롭힐 목적으로 들락거리는 건 이해되지만, 토마스까지 괴롭히는 건 너그럽게 넘어갈 수 없다.


결벽증이 있는 토마스


  토마스 역시 젠틀하고 배려심 많은 인간은 아니다. 심한 결벽증이 있고 선입견에 지배당하기 쉬운, 어떻게 보면 나약한 인간이다. 비는 토마스에게 토끼가 완벽한 생물이라며, 관대하고 정직하고 순수하다고 한다. 솔직히 그녀가 착각하고 있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피터를 비롯한 토끼들은 결코 관대하고 순진하지 않다. 그들이 토마스가 엄연히 상속받은 집에서 그를 몰아내기 위해 집요하고 잔인하게 괴롭히는 걸 보면, 누가 작고 약한 동물인지 혼란스럽다. 물론 토마스도 만만치 않게 대응하지만, 그 와중에 비와 사랑에 빠져, 토끼들을 아끼는 그녀의 눈치까지 본다.

  사실 비도 정상은 아니다. 토끼들 눈엔 천사인지 모르겠지만, 화가라고 그리는 그림은 수준 이하고 하는 짓도 다소 엉뚱하다. 토끼들과 인간들을 굳이 나누어 본다면, 여러 면에서 토끼 쪽이 우세하다. 더 잽싸고 더 지능적이고 더 잔인하다. 반면 인간은 피터와 전면전을 벌이는 토마스나, 그것도 모르고 토마스를 사랑하는 비나 살짝 덜 떨어져 보이고 나사 하나 빠진 듯 우둔하다.


세쌍둥이 자매


인간을 위한 변명


  피터의 새로운 적 토마스는 결코 처음부터 악당은 아니었다. 깔끔 떠는 까칠한 성격은 단점이지만,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위탁가정에서 자란 아픔을 갖고 있다. 이건 피터와도 동변상련 할 만한 전사다. 그도 아빠의 죽음을 목격하고 엄마마저 잃고 일찍 가장이 됐다. 토마스는 장난감 가게를 열어, 아이들을 기쁘게 하려는 어른들을 돕고 싶어 한다. 그가 다소 엉뚱하고 천진한 비와 사랑에 빠진 것도 이런 기질이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피터는 엄마가 죽은 후 나타난 비를 엄마처럼 누나처럼 따르다 이제는 여자로 좋아한다. 그녀가 어떤 남자와 사랑에 빠져도 질투할 게 뻔한데 하필 토마스라니, 피터가 증오심을 키우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 전쟁을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따져보면, 토끼 쪽이 선방을 날렸다. 토마스를 악당으로 만든 건 피터다. 먼저 그의 집에 불법 침입해 개판으로 만들고, 토마스의 침실에 덫과 함정을 놓고, 전기 울타리로 토마스를 감전시키고, 블랙베리 공격으로 (알레르기가 있는) 그를 죽일 뻔했다. 토마스가 토끼굴을 폭파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끔 이 싸움을 주도적으로 끌고 간 것도 피터다. 그리고 결국 토끼굴을 폭파하고 비의 집까지 부순 것도 피터다.


겁에 질린 건 토끼가 아니라 인간이다!


  다행히 피터는 괴로워하는 인간들을 보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런던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토마스를 찾아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 바로 이것이다! 피터는 영악하고 인간의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토끼다. 인간의 보살핌이 필요한 작고 연약한 동물이 결코 아니다. 자신이 시작한 일을 자신이 해결한다. 인간은 거기에 끌려다닌다.


  이런 동물 하나쯤 있는 게 나쁘진 않다. 하지만 귀여운 외모와 달리 성인 남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인간 남자와 전면전을 벌이는 영악한 피터는 베아트릭스 포터의 그림으로 상상했던 그 토끼가 아니었다. 피터의 형제들 또한 유머러스하지만, 너무 말이 많아서 피곤했다. 세 쌍둥이 토끼 자매들의 개성 있는 캐릭터는 돋보였지만 사랑스럽지는 않았다. 토끼들이 나를 불편하게 한 게 아니라, 나의 선입견이 나를 불편하게 한 것 같다. 어쨌든 살짝 미친 것 같은 이 영악한 토끼들이 조금 얄밉고 불편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또한 지나가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