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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l 14. 2018

'믿음'을 믿을 수 있는가?

영화 <독전> (2018)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한치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아마 '믿음' 그 자체일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세상과 신앙 그리고 나 자신조차 의심해도 '믿음'이란 실체 없는 관념은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 되는 절대적인 것일 때가 많다. 사람들은 믿으니까 사랑하고, 믿으니까 복수하고, 믿으니까 죽는다. 세상의 많은 연인들이 서로를 믿지 않았다면 인류는 번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치정과 복수는 깨진 믿음에 대한 배신과 울분의 단짝이다. 순교자들의 죽음도 절대자만 바라본 믿음에 따른 용기있는 행위다. 나를 믿으라는 말은, 나 이외의 세상을 등지라는 말이 되기도 한다. 믿음의 절대적 권위와 영험한 힘은, 파괴와 몰락이라는 저주로 증명되기도 한다.


이선생을 쫓는 형사 원호


  영화 <독전>은 진짜 약 빨고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독한 이야기(독전)'다. 마약을 중심으로 얽힌 인간 군상들은 약에 취해서 독한 게 아니라 믿음에 몰입해서 지독하다. 원호(조진웅)는 아시아 최대 마약대부 '이선생'을 잡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형사다. 이름도 성별도 나이도 모르는 신기루 같은 존재 '이선생'을 추적하는 것만이 그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가 이선생을 잡기 위해 하는 짓을 보면, 이선생이란 절대적 존재의 아우라가 그의 몸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약 조직 끄나풀이자 원호의 파트너 락


  마약 조직 끄나풀 락(류준열)은 어릴 때 부모가 죽은 후 마약 제조공장의 외국인 노동자 손에서 자랐다. 다른 이의 정체성으로 살아온 그에겐 생의 뿌리와 믿음이 없다. 완전무결한 믿음의 부재는 오히려 그를 믿음의 실체로 만들어 버린다. 그가 공장 폭발 사고로 우연히 파트너가 된 형사 원호에게 자신을 믿느냐고 묻는 건, 믿음을 시험하는 절대자 코스프레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은 의외의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는 간증을 종종한다. 가장 누추한 곳에 가장 가난한 자로 나타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테스트하는 신은 고약한 에고이스트다. 락이 '이선생을 잡고 싶어 하는' 원호의 손을 잡아 구해주고, 수많은 사람들을 무심히 죽이면서도 자기 개의 상처에 움찔하는 건, 사이코패스여서가 아니라 자신을 신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이비 목사 브라이언


  '이선생'이 되고 싶었으나 되지 못한 브라이언(차승원)은 사이비 목사다. 자신도 믿지 않는 신념을 거짓으로 전도하다 결국 가짜 신이 될 기회를 목숨과 맞바꾸는 어리석은 자다. 진하림(김주혁)은 아무도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중국 마약상이다. 믿음이 희박한 그는 '이선생'이란 절대자를 믿지 못해 결국 죽음을 자초한다.   


  이들이 믿고 배신하는 건 무엇인가. 절대자인가 그가 생산하는 마약과 돈인가. 아니면 이 모든 걸 뭉뜨그려 구현해낸 악의 실체인가. 독한 이야기에 따르면 믿는 자와 믿지 않은 자, 믿음을 가장해 거짓을 행한 자는 각각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 초반부터 의심의 여지가 없긴 했지만, 마지막에 온전히 드러난 '믿음'의 실체는 허무하다. 반전 같지 않은 반전 때문이라기 보다, 너무나 신을 닮은 얼굴로 절대자 행세를 하는 '이선생'이 세상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신이 아니라 그냥 개를 사랑한 청년이었다는 게 의외로 작위적이다.  


중국 마약상 진하림과 애인 보령


  이 영화에 대한 나의 '믿음'은 스토리보다 배우들의 연기에 기인한다. 모든 배우들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어두운 서사를 그럴듯하게 표현해 충격적으로 극대화시켰다. 특히 진짜 약 빤 것처럼 연기한 김주혁 배우와 진서연 배우는 말문이 막힐 정도로 섬찟한 약쟁이를 보여줬다. 이 아름다운 섬찟함이라니.  


  마지막으로, 절대자와 믿음에 대한 신념을 마약에 버무린 이 이야기가 한 형사가 자살로 구원을 얻었다는 결론이 아니길 믿고 싶다. 그것보다는 좀 더 온전한(?) 결말을 원한다. 영화를 다 본 후에도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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