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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l 15. 2018

영화는 변한 게 없는데

영화 <Fried Green Tomatoes> (1992)


  영화를 정성스럽게 보던 시기가 있었다. 웬만하면 영화관에서 보고, 배우와 감독 이름은 스치기만 해도 다 외우며, 라디오 영화 음악 프로그램의 열혈 청취자였던 시절이 그랬다.


  90년대에 개봉한 영화는 빼어난 수작이 차고 넘치게 많았다. 작가 정신이 투철한 비장한 서사가 즐비했고, 독특한 미장센이 눈길을 끄는 실험적인 작품도 쏟아져 나왔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였고, 디즈니에선 블록버스터급 애니메이티드 필름을 연중행사로 개봉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도 나왔다. <보디가드> <사랑의 블랙홀> <드라큘라> <중경삼림> <퐁네프의 연인> <쉰들러 리스트>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어 퓨 굿맨> <다이 하드> <동방불패> <쥐라기 공원> <파 앤 어웨이> <인어공주> <라이온 킹> <포레스트 검프>

<굿 윌 헌팅> <덤 앤 더머> <펄프픽션> <레옹>

<돌로레스 크레이븐> <가위손> <유주얼 서스펙트> <트루먼 쇼> <쇼생크 탈출> 등. 내 인생의 주옥같은 영화는 모두 90년대에 개봉한 영화다. 그때를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로 기억하는 건 다분히 주관적이고 의도적인 착각이다. 90년대가 유례없는 영화의 전성기였던 게 아니라, 내가 예민하고 감상적인 새파란 나이였을 뿐이다.



  1999년에 개봉한 영화 <식스 센스>는 밀레니엄의 상징 같은 영화가 되어 나에게 세기말 서프라이즈를 했다.  '부르스 윌리스가 귀신이래~' 이 말은, 이제 내 인생에서 이런 기발하고 깜찍한(?) 반전을 담은 인생 작은 없을 거라는 예고처럼 들렸다. 한 세기가 다시 시작된 이후엔 영화관에 가기보다 비디오로, 그러다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이제는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본다. 인생 작은 쉽게 나오지 않고 나와도 금방 잊힌다.   




  <Fried Green Tomatoes>는 90년대에 패싱 한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다. 포스터에 잘 생긴 남자 주인공이 없었고, 여자들의 우정과 연대를 노골적으로 강조한 주제라 딱히 내키지 않았다. 굳이 여자들 얘기를 봐야 한다면 <델마와 루이즈> 쪽이 더 끌렸고, 그런 노골적인 메시지는 스무 살도 안 된 나에게 굳이 주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니니와 에블린


  이 영화는 아닌 척 하지만 명백한 레즈비언 이야기다. 원작 소설엔 확실히 동성애를 담고 있지만, 영화에선 그냥 여자들의 끈끈한 우정으로 수위 조절을 한 듯하다.  


  자신이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에블린은 남편 밥이나 하며 자존감 없이 사는 중년 주부다. 남편의 숙모 때문에 간 요양 병원에서 80대인 니니를 만나고, 그녀가 들려주는 50년 전, 1930년대 미국 남부 앨라배마의 휘슬 스탑(Whistle stop) 카페 얘기를 들으면서 차츰 생기를 찾아간다.


잇지와 루스


  사내처럼 하고 다니는 독특한 소녀 잇지는 오빠가 불의의 사고로 죽자 충격으로 방황한다. 몇 년 후, 오빠의 애인이었던 루스와 다시 만나게 되고 둘은 붙어 다니며 서로에게 끌린다. 우정 이상의 감정은 루스가 결혼한 후에도 이어진다. 잇지는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루스를 데리고 나와 휘슬 스탑이란 카페를 차려 함께 생활한다. 인종차별이 심한 당시 남부에서, 카페는 흑인과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삶을 나누는 공동체가 된다. 잇지는 인종 차별을 종용하는 삐딱한 백인들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흑인 친구들과 식구처럼 지내며 카페를 운영한다. 잇지와 루스의 일상은 분주하고 유쾌해 보이지만, 그들이 몸소 부딪히고 헤쳐나간 현실은 수많은 편견과 압박과 굴욕으로 가득 차있다. 남편에게 도망쳐 아이를 낳은 루스는 미혼모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거침없는 잇지 역시 루스에 대한 사랑과 인종차별 압박에 편할 날이 없다.


서로 소통하는 80년대 두 여자


  루스의 남편이 루스가 낳은 아이를 무력으로 빼앗아가려 하자, 카페에서 일하는 흑인들은 저항하며 아이를 지켜낸다. 얼마 후, 루스의 남편이 실종되자 잇지와 흑인들에게 살인 용의자라는 딱지가 붙고, 잇지는 사랑하는 루스와 가족 같은 흑인들을 위해 당당하게 맞선다.   


  니니가 들려주는 '잇지와 루스 이야기'는 한 여자의 인생을 바꿔 놓는다. 살찐 몸을 움츠린 채 지리멸렬한 일상을 부부관계 개선으로 극복하려던 에블린은 시녀 같은 아내가 아닌, 주체적 인간으로 자신이 원하는 걸 요구하는 사람이 된다. 진정한 공감과 연대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따뜻한 영화인데, 솔직히 에블린의 변화가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 니니와 소통한 에블린이 그녀와 함께 살겠다고 하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나 같아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사랑과 연대를 몸소 보여준 30년대 두 여자


  이 영화를 끝까지 보기 전엔 에블린과 니니가 휘슬 스탑 카페를 재건해서 함께 운영하는 결말을 기대했는데, 너무 전형적인 예상을 한 것 같다. 니니가 '때론 진실이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라고 말한 건 50년 전에 은폐한 (루스 남편) 살인사건과 잇지와 루스의 드러내 놓을 수 없었던 사랑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낭만과 격정, 따뜻함과 분노가 교차하는 이 영화를 90년대에 봤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더 새파랗고 감성적인 어린 여자가 보고 느꼈을 감상이 궁금해진다. 너무 늦게 봤다. 영화는 변한 게 없는데 내가 너무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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