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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ug 18. 2018

절망적이거나 짜릿하거나

영화 <JURASSIC WORLD Fallen Kingdom>(2018)

  25년 만이다. 1993년 7월. <JURASSIC PARK>를 개봉관에서 하루 종일 보고 또다시 공룡들과 조우한 것이. 그 사이에 쥬라기 공원 2와 3을 보긴 했지만, 출연진이 바뀌고 전편을 요리조리 변조한 그 영화들은 솔직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오리지널의 감동과 환희를 빛바랜 추억으로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3년 전 개봉한 <JURASSIC WORLD>도 어마어마한 스펙터클과 비약적으로 발전한 공룡들(CG) 덕분에 서늘하고 흥분됐지만, 오리지널을 더 그립게 만들었다. 테마파크에서 군중들 사이를 질주하는 공룡과 바다 위를 시원하게 날아다니는 익룡들, 힐을 신고도 잘 달리는 여자 주인공과 공룡과 교감하는 남자 주인공 그리고 아이들이 양념처럼 낀 재난 상황에선,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간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오만한 창조주에게 자연의 섭리를 경고한 원작의 서스펜스를 느낄 수 없었다.  


탐욕스런 인간의 대표 밀스


  <Fallen Kingdom>은 대놓고 1993년의 원작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이 점이 호불호를 가를 수 있겠지만, <JURASSIC PARK>의 한 장면 한 장면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극의 완성도나 영화의 주제와는 별도로 눈물 날 정도로 반가웠다. 극의 구조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 원작은 테마 파크 개장을 앞두고 공룡들의 창조주 해먼드가 손주들과 고생물학 전문가들을 공룡들 서식지로 초대해 체험하게 한다. 인간의 욕심과 예상하지 못한 자연의 변수 때문에 재난 상황이 되고, 목숨 걸고 탈출한 이들 뒤로 티렉스(티라노사우러스)가 울부짖으며 '쥬라기 공원' 휘장이 떨어진다. <Fallen Kingdom>도 비슷한 전개로 진행된다. 록우드 재단의 밀스는 화산 폭발이 진행 중인 이슬라 누블라에 공룡들의 멸종을 막고자 하는 전문가들을 보낸다. 예상대로 그는 전문가들을 속여 공룡들을 데려와 상업적 군사적으로 이용할 계획이다. 록우드 저택으로 옮겨진 공룡들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그리고 역시 예상 못한 변수로 카오스에 휘말리다 세상 밖으로 나온다. '웰컴 투 쥬라기 월드'가 아니라, 공룡 입장에서 '웰컴 투 인간 세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블루와 교감하는 오웬


  노골적으로 원작에 대한 오마주를 보여주는 장면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슬라 누블라에 처음 도착한 공룡 수의사 지아가 브라키오사우르스를 경외의 눈으로 보는 장면, 섬에서 공룡 무리 속을 떠밀리듯 달리다 나무 뒤 전기차 뒤에 숨는 장면, 블루를 보러 가는 오웬 시야에 들어온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쓰인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글귀, 메이지가 인도랩터를 피해 탈출구 문을 내리닫는 장면, 마지막에 인도랩터와 블루가 싸우다 물어뜯으며 동반 추락하는 시퀀스는 원작의 렉스와 벨로시렙터의 대결 장면을 그대로 갖다 붙인 듯했다. 원작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장면들을 보며 느꼈을 아련한 감상과 흥분이 짐작된다. 나 역시 인도랩터가 그림자로 먼저 존재감을 뽐내며 위협하는 씬이나 차 밑에 깔린 악인의 최후 같은 클리세에도 열광했다. 원작과 유사한 시퀀스는 지루한 게 아니라 반가웠고, 인물들의 예상 가능한 동선은 이 심장 쫄깃해지는 서스펜스를 보면서 잠깐이나마 안도의 숨을 쉬게 해주었다. 예언자처럼 묵시록을 들려주는 나이 든 이언 말콤 박사와 여전히 이용당하는 헨리 우 박사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언 말콤 박사


공룡 보호에 앞장서는 클레어


  사실 이 영화는 원작을 제대로 답습해서 크게 새롭지는 않다. 궁극적 메시지는 변함없지만 주제를 전달하는 에피소드와 목소리는 한층 강화되고 심각해졌다. 인간의 탐욕이 심해진 만큼 그에 따른 파국과 문제의식도 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군사용으로 유전자 조작된 인도랩터는 가공할 살상용 무기로 대량 유통을 앞두고 있다. 가뜩이나 살벌한 공룡이 대량 살상 무기로 개조되었을 때 보여줄 파괴력과 재난 상황은 지체 없이 재현된다. 이슬라 누블라에 남아 죽어가는 브라키오사우르스의 모습은 인간이 저지른 짓에 대한 뼈아픈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유전자를 복제해 부활시킨 멸종되었던 생명체를 인간이 또다시 멸종시켜도 되는가 하는 물음엔 영화의 맨 끝에 어린 소녀가 답한다.


메이지 록우드


  생명의 문제는 생명의 창조자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윤리적 딜레마가 있다. 이 영화는 인간이 어디까지 탐욕스럽고 추악해질 수 있는지 다른 생명체의 응징과 파괴를 통해 보여준다. 살상 무기가 된 육식 공룡이라도 생명체이니 살려야 한다는 의견과 인간의 오만함을 반성하며 멸종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는 의견은, 실제 상황이라면 답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갈등은 잠깐이고 이 영화는 시리즈의 존속을 위해 그들을 아주 간단하게 살려준다. 이제 세상에 나온 공룡들이 인간에게 어떻게 보복할 것이며, 인간은 또 그들과 어떻게 화합하며 공존을 모색할지 2,3년만 기다리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빠져나온 인도랩터의 공격에 대항하는 인간들


군사용 무기로 유전자가 변형된 인도랩터


  카오스 이론에 의하면, 인간이 아무리 치밀하고 정교하게 계획하고 창조해도 자연의 변수는 늘 인간의 예상 밖에 존재하며 또 다른 생명 현상을 만들어낸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제 공룡과 더불어 사는 가상현실은 우리의 진짜 현실이 됐다. 다음 시리즈에 애완 공룡, 반려 공룡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미 이 영화에서 공룡은 케이지에 갇혀 인간을 위한 경매품으로 모델처럼 런웨이에 등장했다. 케이지의 빗장이 열리는 변수는 인간의 계획 밖에 늘 존재한다. 인간이 25년 전, 호박 속 모기의 피에서 공룡의 DNA를 추출한 순간 이미 자멸을 초래하고 있다고 이언 박사는 말한다. '삶의 질서 밖의 일'에 대한 그의 경고는 유전공학의 가공할 힘이 불러올  파국을 예언한다. 그래도 똑똑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은 공룡과 함께 하는 삶을 모색할 것이다. 삶 속의 변화가 우리 삶 속에 침투하는 상상도를 이 영화의 다음 시리즈가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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