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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ug 29. 2018

True Love

영화 <달링 Breathe> (2017)

  거의 20년 전, 엘튼 존이 여러 가수들과 듀엣으로 부른 노래만 모아 정규 앨범으로 낸 《DUETS》CD를 샀는데, 몇 번 듣지 않고 잃어버렸다. 좋은 노래가 많았지만 유독 한 노래에 꽂혀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했지만 왠지 찾을 수 없었다. 엘튼 존과 듀엣으로 부른 여자 가수 음성도 생생하고 제목도 아는데 어째서 그 노래를 찾을 수 없는지 의문이었다. 그렇게 그 노래를 10년 넘게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본 영화 마지막에 그 노래가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엘튼 존(Elton John)과 키키 디(Kiki Dee)가 부른 'True Love'는 1950년대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으로 한 번 들어도 멜로디가 귀에 착 감길 만큼 감미롭고 아름다운 사랑 노래다. 내가 왜 20여 년 전에 이 노래를 찾을 수 없었는지 의문이 풀렸다. 난 여가수가 키키 디가 아닌 케이디 랭(K.D.Lang)인 줄 알고 그 이름으로만 검색했었다. 듀엣 앨범에 케이디 랭과 엘튼 존이 함께 부른 곡도 있어서, 늘 다른 곡이 나오니 돌아버릴 것 같았다. 영화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곡은 원곡인 듯 하지만, 제목을 검색하자 엘튼 존과 키키 디가 부른 노래 동영상이 바로 뜬다. 2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시원하면서도 가슴 한켠이 아련하다.  



신혼 시절의 로빈과 다이애너


  <달링>의 원제는 'Breathe'다. 매 순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쉬는(아니 저절로 쉬어지는) 호흡이 이렇게 절실하고 눈물겨운 사랑 행위가 될 수 있다니, 놀랍고 감동적이다. 자가 호흡을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 남자와 그 가족, 친구들의 사랑과 모험이 충만한 여정을 그린 이 영화는 제작자 조나단 캐번디시(Jonathan Cavendish) 부모님의 삶을 그린 실화다.


로빈이 한 눈에 반한 다이애너


건강한 시절의 로빈


  젊고 아름다운 부부 로빈(앤드류 가필드 Andrew Garfield)과 다이애너(클레어 포이 Claire Foy)는 아프리카에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던 중 뜻밖의 불행에 직면한다. 로빈이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돼 전신마비 중증 장애인이 된 것이다. 영국으로 돌아와 병원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누워있는 로빈은 아내에게 자신을 죽게 내버려두라고 한다. 다이애너는 갓 태어난 아들이 크는 걸 같이 보자며, 남편을 병원에서 퇴원시킨다. 의학 발달이 지금 같지 않고, 중증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처우가 열악했던 1960년대 영국에서는 평생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 환자를 집에서 돌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내에게 죽게 내버려두라고 하는 로빈

 

  로빈의 친구가 만든 휠체어 비슷한 이동기구로 힘겹게 로빈을 집까지 데려왔지만, 자가 호흡을 못하는 그를 돌보는 일은 정성과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자칫 인공호흡기 전원이 차단되면 로빈은 2분 내에 사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이애너는 작은 희망의 끈도 놓지 않는다. 친구들은 이동식 휠체어를 점점 업그레이드시키고, 간신히 머리만 움직일 수 있는 그를 위해 이마 옆에 종도 달아준다. 휠체어에 인공호흡기와 휴대용 발전기까지 싣고 어디든 다닐 수 있게 된 로빈은 병원에서 누워만 지내는 장애인 환우들 생각에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가 마당을 돌아다니고 차로 이동하며 심지어 스페인 여행까지 할 수 있었던 건 가족과 친구들의 헌신과 노력 덕분이다. 숨 쉬는 것조차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 하는 로빈은, 자신이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과 헌신의 증거라는 걸 자각한다. 그는 자신의 삶이 중증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중증장애인 학회에 참석하고, 후원을 받아 이동식 휠체어를 제작한다. 그리고 평생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누워있어야 하는 전신마비 환우들에게 자신이 누리는 인간다운 삶을 나누어 준다.


가족과 친구들 덕분에 휠체어로 이동하는 로빈


  포기를 모르는 아내의 사랑과 헌신,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로빈 캐번디시는 중증 장애인으로는 드물게 20년 넘게 생존하며 아들이 성년이 되는 걸 보고 여행도 한다. 그는 장시간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폐가 망가져 더 이상 삶을 이어가기 힘들어지자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죽음을 택한다. 로빈이 쓰러진 날부터 지금까지 손발이 되어주고 숨결을 불어넣어준 아내는 그의 결정을 조용히 따른다. 남편과 함께 한 다이애너의 삶을 설명하기에 사랑과 헌신이라는 말은 너무 초라하고 얄팍하다. 이 부부의 20년 남짓한 시간은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 증명될 수 없다. 몸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아내를 사랑하는 것만은 멈추지 않았던 로빈이 숨을 거두기 전에 하는 말이 그나마 다이애너의 용기와 사랑을 가장 타당하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나만큼 당신을 사랑하진 못했을 거야. 당신과 함께여서 멋진 삶이었어.
 Your life is my life~



  그들의 젊고 건강했던 모습에서 디졸브 되어, 실제 캐번디시 부부의 모습이 보이며 이 노래가 흐른다.

True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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