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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Sep 01. 2018

마성의 남자 '오베'

영화 <오베라는 남자 A Man Called Ove> (2015)

  이 남자의 첫인상은 불평불만 가득한 까칠함과 세상 혼자 사는 것 같은 무례함으로 똘똘 뭉친 꼰대다. 쳐다만 봐도 싸우자고 덤빌 것 같은 이런 노인은 누구에게라도 반갑지 않은 존재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기저기서 이 남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름에 주술을 걸어놓은 듯, 새로 이사 온 이웃과 아내의 옛 제자, 심지어 길고양이까지 이 까칠한 남자의 마법에 걸린 듯 그를 찾는다. '오베'라고 불리는 이 남자에겐 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매일 아내의 무덤을 찾는 오베


  평생 일하던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자 오베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생동안 한 브랜드의 자동차만 고집하고, 흰 셔츠 입은 공무원들을 증오하며, 상점에서 잔소리와 불만을 쏟아내는 고집불통 노인은 줄기차게 자살 시도를 하지만 죽음에 영 소질이 없는지 번번이 실패한다. 그가 죽음의 문턱에 들어설 때마다 되돌아보는 과거는 한 사람의 생이 얼마나 다양하고 기이한 우연과 필연으로 이루어지며, 아름답고 경이로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젊은 시절 오베와 아내 소냐


  고지식한 청년일 때 만난 꿈같은 사랑 소냐, 그 사랑이 이루어져 행복의 절정에 다다랐을 때 맞은 불행, 그리고 휠체어를 타게 된 아내를 위한 헌신까지, 오베의 외골수 인생은 성실한 사랑과 믿음, 지치지 않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본 어떤 남자보다 진실한 사랑을 할 줄 아는 능력자이며, 한 여자를 위해 세상과 맞서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는 아내 없는 세상에 남아있고 싶지 않지만, 이웃들과 길고양이는 그를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베라는 남자에게 자꾸 살아야 할 이유를 보탠다.


  이란 출신 이웃 여자 파르바네는 오베에게 끊임없이 이것저것 요구한다. 싫다는데도 음식을 갖다 주고, 급하게 병원에 태워달라 하더니 이젠 운전 교습까지 요청한다. 운전에 겁먹은 파르바네에게 오베가 날린 돌직구는 그의 거침없는 성정과 배려를 동시에 보여준다. "애도 셋이나 가졌고, 복잡한 이란을 탈출해 먼 나라 와서 언어도 배우고 공부도 해서 직업까지 얻었잖아. 머저리랑 결혼도 하고. 운전 배우는 건 일도 아니야. 복잡한 뇌수술을 하라는 것도 아니잖아." 결국 그의 사려 깊고 강인한(?) 지도 덕분에 파르바네는 운전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늘 이런 식이다. 아내 옛 제자에게 동성애자냐고 대놓고 물어보지만 그를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니다. 아동 병동의 어릿광대를 당황하게 하지만 단지 마술공연에 빌려준 동전을 되찾으려는 것뿐이다. 사람 목숨을 구하고도 어쩌다 한 짓이라며 인터뷰를 피해 다닌다.


파르바네와 오베


  공치사나 생색은 관심 밖이고, 툴툴대도 이웃의 딱한 사정이나 부탁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다른 이들은 살아갈 힘이 되어주고, 투박하고 서툰 그의 진심에 고마워한다. 이제 오베는 죽으려는 시도 대신 매일 아내 무덤에 찾아가 조금 늦게 당신 곁에 갈 것 같다 얘기하고, 동네 주차위반을 단속하고 시설물을 살핀다. 길고양이를 거두고, 절교했던 친구 루네의 집을 방문한다. 철도에 떨어진 남자를 우연히 구한 일로 자꾸 찾아오는 신문기자를 까칠하게 내치지만, 그녀의 도움으로 공무원에 맞서 루네가 사설 요양원에 가는 걸 막는다. 파르바네의 아이들이 다가오면 이 무뚝뚝한 노인은 기겁하면서도 넓은 품 안에 받아들인다. 아내의 옛 제자가 동성애를 용납 못하는 아버지를 피해 찾아오자 기꺼이 침대를 내준다. 남들보다 조금 더 큰 심장을 갖고 있는 오베는 이웃의 진정한 이웃으로, 병든 친구의 마지막 남은 친구로, 먼저 간 아내의 영원한 사랑으로 남은 생을 살아간다.




  프레드릭 베크만 작가의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책을 읽었을 때 못지않은 소소한 재미와 감동으로 또 한 번 눈시울을 촉촉하게 한다. 3년 전 겨울, 왠지 찬기운이 돌 것 같은 북유럽 스웨덴의 어느 작은 동네를 상상하며 읽었는데, 배경과 달리 내용이 훈훈해서 인상적이었다. 책의 글자를 그대로 형상화한 듯 오베를 연기한 배우는, 책에서 느꼈던 것보다 좀 더 체구가 크긴 했지만 탁월한 선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오베' 그 자체다. 오베가 장애인이 된 아내를 위해, 교사가 꿈인 그녀의 소망을 이루어 주기 위해, 숱하게 탄원서를 쓰고 공무원들과 투쟁하다 학교에 휠체어 통로까지 직접 만드는 장면에선 울컥했다.

 '우리 아기를 대신해 모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한 소냐.' 오베는 사고로 뱃속의 아이를 잃은 아내가 교사로 일하며 보여준 헌신을 이렇게 말한다. 그 아내의 남편답다. 오베가 소냐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소냐가 오베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평생 사랑하고 믿고 배려하며 서로를 위해 살았다. 죽는 데 영 소질이 없는 무뚝뚝하지만 뜨거운 사랑꾼 오베는 그답게 자는 동안 조용히 아내 곁으로 간다.



오베와 이웃들


  사람들은 이번 생은 망했다고 곧잘 말하지만, 그래도 이왕 세상에 나왔으니 내가 있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건 웬만큼 살아보면 안다. 더 나은 세상은 고사하고 나라는 생물로 인한 자연 파괴에 대한 자괴감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먼지 같은 존재로 살다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는 존재론적 불안과 허무가 생의 대부분을 지배한다. 작은 지역사회에서 한정된 관계를 맺으며 같은 일을 수십 년 반복하다 어느 날 소멸한다고 생각하면 진짜 허탈하다. 그렇다고 전 세계를 누비며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을 찾아 하기도 쉽지 않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누군가를 진정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생은 결코 망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한하다는 걸, 이 까칠하고 무뚝뚝한 남자가 몸소 보여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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