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이스 Sep 03. 2018

내 안목이야말로 쓰레기 섬에 버려야 하나?

영화 <개들의 섬 Isle of Dogs> (2018)

  모두가 '예쓰'라 할 때 혼자 '노우'하는 건 소신을 떠나 용기이고 만용일 때가 있다. 그도 아니면 안목이 떨어지거나 편향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어쨌든 모두가 극찬하는 콘텐츠를 지루했다고 말하기가 얼마나 난감한지 알지만 그래도 입이 근질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웨스 엔더슨(Wes Anderson) 감독은 훌륭한 비주얼과 미장센을 보여주는 영화 천재다. 이건 인정!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나 스탑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Mr. 폭스>의 독특한 색감과 디자인은 내 눈을 번쩍이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문제는, 유려하고 아름다운 화면을 본 기억은 충만한데 정작 영화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나의 집중력과 이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것도 인정! 그래도 그렇지, 눈은 실컷 호강하는데 왜 뇌는 가수면 상태를 전전하는 것인지. 평이하지 않은 독특한 비주얼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선호하고, 그보다 더 독특한 서사엔 열광한다고 자부하는데, 어째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 눈과 뇌는 따로 노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의 배경은 20년 후다. 정해진 때가 있는 게 아니라, 이 영화를 2018년에 보건 10년 후에 보건 무조건 보는 시점에서 20년 후가 배경이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 판타지가 결코 현실일 수 없지만, 왠지 섬뜩하게 느껴지는 부분에 대한 (개인적으로) 안전장치로 느껴진다.


  일본 가상 도시 메가사키에 개 독감이 퍼지자 고바야시 시장은 개들을 쓰레기 섬으로 추방시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운다. 반대 의견을 주장하는 과학당 와타나베 교수가 개 독감 치료법을 제시하지만 공포에 휩쓸린 우매한 대중은 힘의 논리에 굴복한다. 그리고 얼마 후 와타나베는 살해당한다. 매우 단순하고 섬뜩한 대중과 정치 논리가 한방에 보이고, 개들은 잔인하게 추방당한다.



  인간은 영어 통역이 있는 일본어를, 개들은 영어(자막)를 하는 이 서사는 관객이 어떤 존재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해야 하는지 은연중에 지시한다. 고바야시의 입양된 조카 아타리는 자신의 애견 스파츠를 찾아 쓰레기 섬에 온다. 그곳에서 만난 다섯 마리 개는 인간 못지않게 사연이 충만한 개성 강한 존재들이다. 고바야시를 비롯해 그의 비서, 외국인 교환학생 트레이시와 통역사까지 인간들은 단순하고 미니멀하게 보이지만, 개들의 외모와 캐릭터는 매우 섬세하며 과거 이력은 인간 못지않게 구구절절하다. 인간은 악인과 그 반대 편, 외국인과 일본인, 기득권과 나머지들, 어른과 아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뉜다. 반면 쓰레기 섬의 개들은 다양한 개성으로 존재감이 충만하고, 아타리와 만나면서 변화하고 발전하며 과거의 비밀까지 드러난다. 스칼렛 요한슨이 더빙한 넛메그라는 쇼독은 몇 장면 나오지 않는데도 정말 존재감 쩐다. 개별적 성격을 지닌 주체적인 개들이 이끄는 데로 따라가다 보면 나쁜 인간들은 몰락하고 아타리는 소년 영웅이 되는데 이 역시 개들의 맹활약 덕분이다.



  이 영화가 개들을 의인화하지 않은 채 인간보다 더 개성 강한 존재로 보여주는 건 신비로울 정도다. 일본 옛 설화(고바야시가 소년 장수에 의해 목이 베어진다는)를 차용한 점도 특이하다. (진짜 이런 설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년 아타리가 개들을 구하고 고바야시 시장을 내친 후, (직계 가족이 직위를 승계한다는 법에 따라) 시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은 서사 자체로 보면 그다지 특이하진 않지만, 이 단순한 설화를 모티브로 이런 상상력을 만개시킨 감독의 재능은 놀랍다. 이 모든 놀람과 신선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난 이 영화가 그다지 재밌지 않았다.



  깔끔한(?) 쓰레기 더미와 화려한 색채를 환상적인 캐미로 배합한 세트의 비주얼은 압도적이었고, 와타나베 교수가 배달받는 초밥이 만들어지는 시퀀스는 문어와 대게 등 해산물의 비린 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실사 못지않은 화면이었다. 이렇게 인상적인 장면은 많지만, 전체적인 서사는 그저 그랬다. 아무래도 나의 편향적 취향을 고백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왜색이 짙은 이 영화는 일본 영화가 아니고 개들의 영화이지만 이야기 자체의 집중력은 좀 떨어졌다. 소년과 개의 우정은 아름답지만, 그걸 풀어가는 과정은 호전적이고 섬뜩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 어떻게 섬뜩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전체적으로 군국주의 색채가 짙었다고 할까. 소년이 타고 온 경비행기는 왠지 가미카제가 연상되고, 그의 우주복 같은 의상은 일본의 새로운 군국주의 상징 같았다. (의상 디자이너가 그럴 의도가 1도 없었다고 한다면 개인적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배경 음악으로 들리는 휘파람과 북같은 타악기 소리는 묘하게 긴장감을 유발한다. 개인적 선입견과 편향된 취향일 수 있지만, 솔직히 그렇게 느껴졌고 영화 보는 내내 기분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비주얼과 서사의 괴리감은 이 영화가 나에게 선사한 가장 큰 충격이다. 영화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깊이 생각하지 않는 탓일 수 있지만, 이 영화에 대한 나의 편향된 인상을 지우기 위해 한 번 더 보고 싶진 않다. 그러기엔 이 영화는 너무 호전적이고 지루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성의 남자 '오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