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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Sep 03. 2018

클래식과 록을 함께 즐긴다는 건.. 체실 비치에서

영화 <체실 비치에서 On Chesil Beach> (2017)

*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에서 본 영화입니다.


  남자는 록을, 여자는 클래식을 좋아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그래도 척 베리(Chuck Berry)는 흥미롭고 통통 튄다며 상대의 취향을 존중하고, 남자는 여자의 바이올린 연주가 아름답다고 추켜 세운다. 다른 장르의 음악을 선호하는 남녀가 사랑하며 공존하는 방법은, 각자 취향을 존중하면서 음악이라는 커다란 취미의 테두리는 공유하는 것이다. 쉬워 보이지만, 평생 지속하려면 극도로 까다롭고 세심한 애정이 필요하다. 어쩌면 서로의 상처를 감싸 안을 수 있을 정도의 깊은 배려가 절실할 수도 있다.     



  1962년. 자유주의가 넘실대지만 아직은 보수적인 시절, 바이올리니스트 플로렌스(시얼샤 로넌 Saoirse Ronan)와 역사학도 에드워드(빌리 하울 Billy Howle)는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다. 둘은 결혼해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간다. 그들이 지낼 호텔방은 갓 결혼한 남녀가 내뿜는 긴장과 열기로 가득하다. 친근하면서도 어색한 신혼부부가 이른 저녁식사를 하다 말고 침대로 가기까지, 중간중간 이들의 과거가 플래시백으로 보인다.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 플로렌스와 에드워드


  뇌손상을 입은 엄마 때문에 늘 불안하고 초조한 에드워드와 보수적이고 경직된 가정 분위기에 숨이 막히는 플로렌스. 둘은 서로에게서 척박한 현실을 함께 할 믿음을 발견하고, 순수하게 사랑을 키워간다. 플로렌스는 에드워드 엄마를 보듬어주고, 에드워드는 강압적인 플로렌스 아빠를 받아들인다.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이 커플은, 신혼여행 첫날에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한다. 왠지 강하게 성적 거부감을 드러내는 플로렌스와, 이에 자존심이 상한 에드워드는 격렬하게 싸운다. 에드워드는 자신을 뿌리친 플로렌스가 부부로 함께 살되 다른 여자와 자도 된다고 말하자 상처받고 돌아선다. 그는 아내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그렇게라도 함께 하고픈 마음이었다는 걸 알기엔 너무 젊고 미숙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플로렌스


순수한 청년 에드워드


  언뜻 드러나긴 하지만, 플로렌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고 그로 인해 부부관계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연인이라도 말하기 쉽지 않은 사실을 숨긴 채 결혼했고, 순수하지만 모든 게 서툴고 열정만 앞섰던 에드워드는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결혼한 지 여섯 시간 만에 각자 돌아와 평생 안 본 채 살아간다.  


  시간이 흘러 에드워드는 플로렌스가 결혼해 낳은 딸을 우연히 마주치고 회한에 젖는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그녀의 4중주 악단 고별 음악회에 참석해 연애 시절 약속했던 자리에 앉아 마지막으로 그녀를 지켜본다. 신혼여행에서 헤어진 후 45년이 지나, 무대와 객석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흘린 눈물은 후회와 안타까움과 미련이 섞인 복잡한 눈물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저 한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가련하고 순수한 연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름답고 순수한 연인


  젊은 연인들은 순수하고 열정적이지만 이해심이 부족하다. 사려 깊고 생각이 많았다면 열정만으로 덥석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연인의 안타까운 인연은 시간도, 각자 집안 사정도, 현실 탓도 아니다. 순수함은 직진밖에 모르는 길 잃은 아이처럼 변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통으로 변질되고, 열정은 자존심에 쉽게 꺾인다. 무모하고 잔인한 젊음이 그들의 운명을 이렇게 바꿔놓은 것이다. 사실, 그들이 신혼여행의 불화를 극복해 결혼생활을 했으면 어땠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가상현실이다.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지 불행했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결별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화면엔 아름다운 음악이 끊임없이 흐른다. 에드워드 시점의 장면엔 록 비트가 박동하고, 플로렌스의 시퀀스에선 클래식이 유려하게 들린다. 클래식과 록이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둘을 같이 좋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설사 어느 한쪽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위해 참고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록과 클래식을 동시에 즐길 정도의 소양과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상대의 록을 배척하고 나의 클래식만 강요한다면, 가장 행복한 순간 헤어지는 불행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클래식과 록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즐겼음에도, 결혼한 지 여섯 시간만에 헤어지고 45년 만에 해후한 이 연인은 그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한 번의 실수를 운명으로 바꾸는 재주를 부린 무모한 자존심과 순진한 젊음을 탓하는 수밖에.


연애시절의 두 사람


  왠지 이 이야기는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원작 소설을 읽으면 느낌이 좀 다를 듯 싶다. 영화에선 미처 담지 못했던 두 남녀의 내밀한 심리가 글자로 빼곡히 드러날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영화와는 또다른 체실 비치의 그날이 궁금하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대체 왜 헤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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