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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Sep 06. 2018

즐거운 일기

책 <즐거운 일기> 최승자 시집, 문학과지성사, 1984년

  1984년, 내가 초등학생이 아닌 국민학생일 때 한 시인은 시집을 엮어냈다. 『즐거운 일기』2008년 초판 23쇄로 발행된 시집은 초판 발행 때의 글자체 그대로였다. 다시 10년이 지나서 보니, 낯익지만 오랜만인 글자체가 시어보다 먼저 눈에 띈다. 그렇다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아니, 시를 가독성으로 읽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우울하고 비극적이다. 구체적으로 내용이 어떻다기보다 시집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암울하다. 시인이 30대 초반에 엮은 시집이니, 적어도 20대 후반부터 써왔던 시를 모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생의 기대가 가득할 법한 젊은 여인이 낳은 시어들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긍정보다는 부정의 심상이 강하다.



많은 사람들이 흘러갔다.

욕망과 욕망의 찌꺼기인 슬픔을 등에 얹고

그들은 나의 창가를 스쳐 흘러갔다.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열망과 허망과 버무려

나는 하루를 생산했고

일년을 생산했고

죽음의 월부금을 꼬박꼬박 지불했다.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중」  




  가끔 너무 밝고 희망찬 글이 버거울 때가 있다. 오히려 거짓말 같고 와 닿지 않은 감정은 둥둥 떠나기만 한다. 그런 위선 없는 시어들은 어두워서 편안하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동굴처럼.  


  1984년, 이 땅에 사는 뇌와 심장을 가진 어른이라면 마음 편히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 안간힘 쓰는 조국의 부국강병을 즐길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나라 국민이라는 집단 트라우마는 3,4년 안에 사라질 것이 아니다. 300년이 지나도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시 창작 과정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시대에 당한 시인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비어져 나온 시어가 아닐까 눈 먼 독자는 상상해본다.  



만리동 다리 위에서 삼십 세의 인생은 눈이 멀어 헤맨다.

지하도에서 빠지고 육교 위로 불려 가고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랑은

어질어질하므로 황홀하다. 철새는 날아가고 사회적 문화적 애인은 비명횡사한다. 개새끼 잘 죽었다, 너 죽을 줄 내 알았다.  

                                                                                                            「'고요한 사막의 나라' 중」



  정치적 경제적 사랑... 사회적 문화적 애인... 시인의 젊은 날은 치열하고 비장하고 약간 비루했던가 보다. 사랑의 수식어와 애인의 수식어가 남다르면서도 슬프다. 결국 시인의 마음에서 죽어버린 한 시절의 인연이었겠지만.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시를 읽으면 아득해지는데, 아득해지기 위해서 일부러 읽을 때도 있다. 내가 바보라는 걸 깨달으면 절망 속에서도 편안하다. '즐거운 일기'를 '시대의 일기'로 읽는 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이 시집의 시어들은 1984년과 매칭 되면서 나는 살아보지 못한 그 시절 30대의 절망과 한숨을 잠시나마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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